헬스장에 들어서는데 저쪽 맞은편에서 눈인사를 건네는 분이 있습니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분에게 나도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어느날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나에게 먼저 다가온 분이었습니다.
"운동하면서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
헬스장에서는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드뭅니다. 특히 이 센터는 조용히 개인운동만 하고 가는 그야말로 mz세대들이 많습니다. 그런 조용한 센터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분이라 낯설고도 신선했습니다.
"어려보여서 내가 반말했는데 혹시 몇살이에요? 내가 실수한거 아닌가 해서요."
서로 나이를 말하고는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나보다 10살 가까이 많은 언니였는데 거리낌없이 사람에게 다가오는게 멋져보였습니다. 평소 패션 스타일이나 매너도 좋았기에 호감이 갔지요.
'어쩜. 저렇게 고상하실까. 나이에 비해서 몸도 유연하고 운동도 잘하시네. 사람도 좋아하시고. 저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스스럼없이 사람에게 다가오는지 그것도 대단하고 예쁘기까지 해. 사람에게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사모님 같아.'
호감의 마음이 생기니 그분과의 인사가 더욱 반가웠지요.
"김장했어? "
"아니요. 김장은 엄마나 시어머니가 해주시죠."
"나는 주말에 김장했어. 배추김치, 파김치, 열무김치 다 담았어."
"그걸 직접 하세요? "
"그럼 다 하지. 사먹이기 싫어서 내가 다해. 31살부터 내가 옷가게를 했거든. 그래서 새벽시장 다녀와서도 애들 밥은 꼭 해먹였거든. 우리 큰애가 여섯살때부터 동생을 챙겼으니까 애들도 고생많이 해서 늘 미안해서 음식이라도 해먹이고 싶었어. 애들 아무에게도 안 맡기고 나 혼자 전전긍긍 키웠거든 그래서 이 나이에 번아웃이 온거야.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옷가게도 접다시피 하고 있어. 이제 지쳤어"
눈가에 눈물이 맺힌채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 전혀 고생 안하신 분 같은데. 사모님 이미지세요. 저에게 인사하시는거 보고 사람에게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분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무슨. 나는 사람이 돈이랑 연관되어있다는거 너무 잘알지. 그래서 사람한테 기대안해. 믿을 건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그랫 너무 나를 갈아넣고 살아서 46살에 폐경이 된거야.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내가 사람 좋아하니까 자기한테 말도 시키고 한거지. 장사하면서 만난 사람들하고는 기운이 다르니까. 운동하는게 너무 좋아."
한사람의 일생의 희노애락을 순식간에 들었습니다. 순간 내가 보고 있는 것과 실제 사이에 얼마나 많은 오해가 있었나 싶었지요. 나 나름대로 촉이라 생각하고 믿었던 눈에 보이는 것들이 부질없었구나 싶었습니다.
아비스 고사리는 고사리 과 중에서 잎이 두툼한 것이 아주 늠름합니다. 고사리들이 잘 죽고 가정에서 키우기 어렵다는 편견이 많은데요. 아비스는 잎이 두꺼운 만큼 정말 튼튼합니다. 보기에도 눈이 시원해지는데 키우다보면 더 속이 시원합니다. 잘 죽지 않고 건조에도 잘 견디는 편이라 건조한 겨울도 잘 견뎌냅니다. 과습에도 예민하지 않지요. 보기에만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보는것보다 잘 자라는 몇 안되는 식물중에 하나입니다. 과연 저렇게 멋진 식물을 내가 잘 키울수 있을까 곧 죽이고 말겠지 했던 나의 생각을 뒤엎기 딱입니다.
내 눈이 보는 것, 내가 눈으로 보고 생각한 것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요. 겉으로 보기엔 사모님같이 곱게 산것같은 헬스장의 언니에게는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고된 세월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연과 세월을 짐작도 못했겠지요. 비로소 언니와 이야기를 나눠보아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비스 고사리를 키워보기 전에 그 녀석의 성질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요.
보이는 것을 믿기보다 보이지 않는 깊은 곳을 깨달을 수 있는 혜안이 생기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면 내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실수를 좀 줄여나가봐야겠습니다. 그래야 내 멋대로 사람이나 사물을 판단해서 실수하는 일이 줄어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