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진영이와 수진이가 숨바꼭질을 합니다. 진영이가 수진이를 따라다닙니다. 둘은 요즘 아주 사이가 좋습니다. 한녀석이 노래를 부르면 다른 녀석이 따라 부릅니다. 둘이 가장 꽂힌 것이 바로 브레드 이발소입니다. 유튜브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 인 것 같은데 함께 로고송을 부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진영이가 수진이에게 노래를 자주 시킵니다. 진영이가 "브래드" 하면 수진이가 뒤이어 바로 "이발소"라고 하면서 합을 맞추지요. 오늘도 그 놀이가 한참 인가 봅니다. 진영이 손에는 프린트 해온 종이가 들려줘 있습니다. 수진이에게 그 종이를 자꾸 가지라고 하는데요. 무엇인가 궁금해서 나도 쳐다보았습니다. 종이에는 브래드 이발소의 주요 캐릭터인 윌크가 그려져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래쪽에 '윌크를 멋지게 색칠해 주세요."라고 씌여있었지요. 중학교 2학년과 3학년 아이들입니다. 색칠공부와는 거리가 먼 청소년인데요. 그래도 그걸 뽑아서 수진이에게 주고 싶은 진영이입니다.
"너 윌크 좋아하잖아."
수진이가 종이를 받으려다가 슬쩍 내 눈치를 살핍니다.
"안받아. 싫어. 나는 색칠공부하는 아기가 아니야. 중학교 2학년 언니라구."
그동안 나에게서 수없이 들었던 말을 내뱉습니다.
"수진아. 너 윌크 좋아하잖아."
하지만 진영이는 그 종이를 거둘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진이에게 주려고 집에서 프린트 해왔기 때문이지요.
나이는 중학생이 되었지만 취향은 아직 유치원생에 머물러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직도 핑크퐁이나 구름빵 노래를 부르면서 좋아합니다. 하지만 친구들 앞에서 그런 노래를 불렀다가는 정말 어린 아이취급을 받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노래 말고 아이돌 노래를 추천해줍니다. 하지만 아이돌 노래는 영어도 많이 섞여있고 템포도 빨라서 따라부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워낙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들인지라 음악을 듣기는 해야겠는데요. 아직 초등저학년 동요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코딱지를 아무 책상에나 바르는 건 어린 아이나 하는 행동이지. 그럼 수진이 초등학생이야. 수진이 안되겠다. 초등학교로 다시 돌아가자."
아이는 질색을 합니다. 마음 속에는 아직 초등학생의 취향이 남아있지만 다시 돌아가기는 싫으니까요. 자신은 엄연히 중학생인데 초등학교로 돌아간다는 걸 용납할수는 없는 겁니다. 아이들은 여기서 혼란을 겪습니다. 취향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자란 것 처럼 연기를 해야하니까요. 나는 그 자리에 중학생의 취향을 넣어주고자 애를 씁니다. 중학생이 관심있는 패션과 이야기,대화주제와 아이돌, sns 영상을 공유하며 아이들 취향을 바꿔주려 노력하는데요.잘 바뀌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요.
진영이와 수진이의 실랑이는 한참동안 이어졌습니다. 가지라는 진영이와 싫다는 수진이를 보며 나도 유심히 종이를 보았습니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정성스럽게 프린트되어있었습니다.
"수진아 이게 뭔데 ? 이 아이가 윌크야? 우유인데 이름이 윌크구나. 이 아이는 누구야?"
"키키핑이에요."
나는 아무 생각없이 캐릭터그림 옆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아. 키키퐁"
"아니요.키키핑이요. 키키퐁은 핑크퐁할때구요. 키키핑."
키키핑이라고 불렀는데 키키퐁이라고 적은 쪽지를 보며 수진이와 나는 웃음이 터졌습니다.
"분명히 키키핑이라고 했는데 왜 키키퐁이라고 적은걸까. 선생님도 초등학교로 다시 가야겠다."
수진이를 보며 웃었습니다. 키키퐁이라 적은 내 모습이 우스운건지 수진이는 한참동안 즐거워했습니다. 키키핑이라 분명히 들어놓고도 키키퐁이라 적은 내 모습이 어린이 캐릭터를 좋아하는 수진이나 진영이와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더군요.
"앞을 보지 못하거나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며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장애를 경험하고 장애를 안고 살아갑니다. 어린이들에게 거대한 유리문은 열리지 않는 장벽이며 노인들에게 계단은 버거운 비탈이고 중장년들에게 작은 글씨는 애써도 읽을 수 없는 불편입니다. 안경을 쓴 사람과 보청기를 단 사람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모두는 서로 다른 불편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은 장애인을 타자화하거나 따뜻한 기술로 치료해야할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고 (물론 치료의 노력도 절실합니다.) '장애가 불편이 되지 않는 사회'여야 합니다."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님의 글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느 부분에서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그 부분이 나와는 다른 상이한 부분으로만 취급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내 곁에 가까이 머물지만 무언가의 도움의 아직 겪지 않은것일 뿐이지요. 장애를 타자화 하거나 이상한 것으로 취급하기 보다는 나와 다른 점을 인정하는 자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겠지요.
수진이와 진영이의 윌크와 나의 키키퐁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두 아이가 윌크를 외치며 동요를 부를때마다 아이돌 사진과 노래를 들이밀며 이걸 좋아해보라고 강요하던 내가 떠오릅니다. 중학생 나이가 되었으니 친구들이 좋아하는 세상을 함께 느껴보라며 성숙함을 강요하곤 했는데요.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아이를 조금더 의젓하게 만들고 문제행동을 없애며 친구와 대화할 거리를 주긴 하겠지만요. 아이의 취향과 좋아하는 것까지 바꿔가며 아이를 맞춰야지만 할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렇게 까지 나를 버리면서까지 적응해야하는 세상이 아니라 그아이의 조금은 유치한 취향이라도 존중하고 인정하며 친구가 되어주는 곳이 되었으면 싶은건 나만의 욕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