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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Nov 22. 2023

억지 생일 축하

아침에 일어나 번쩍 눈을 떴습니다. 

아이의 편지가 살포시 나를 기다릴 것이라는 기대감에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뜬 겁니다. 

식탁위를 살펴봤습니다. 없습니다. 집안 구석 구석 서프라이즈로 숨겨있나 보았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 책상위를 보니 빈 a4용지가 한장 놓여있는데요. 설마 저것일 거라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제가 내 생일이었는데 오늘 아침까지 빈 종이에 편지를 한자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젯밤 학원에서 터덜 터덜 빈 손으로 돌아오는 아이를 보면서 내 행복은 깨졌습니다. 

"엄마 편지는?"

"이제 써야지. 쓸꺼야."

10시반이 넘었습니다. 지금부터 씻고 밥먹고 나면 12시. 내 생일 안에 과연 편지를 써낼수 있을지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무조건 오늘 넘기지 말고 편지 써. 엄마 생일날 편지는 써줘야지. 그리고 선물은 어떻게 할거야? 네 동생은 엄마한테 편지랑 5만원 선물로 줬는데 너는?"

아이는 이내 곤란한 표정을 짓습니다. 

"나 현금 2만원 밖에 없는데."

그때 남편이 나섰습니다.

"너 지난번에 용돈 받은거 저금한다고 나에게 맡겼잖아. 그거 아직 입금 안했거든. 거기서 5만원 빼면 되겠네."

아이는 그 결정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것 같았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1000만원 만들기위해서 모아두는 건데. 청바지 사고 싶은데 그것도 못하고 저금하려고 한거라고. "

"그래서 엄마 생일 선물 주려니 아깝다는 거야? 엄마가 괜히 태어났네. 저금도 못하게 하고. 내가 잘못 태어나서 민폐네 민폐야."

가뜩이나 편지도 조르고 졸라서 써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선물까지 꺼리니 나는 기분이 상했습니다. 아이가 돈을 아껴서 저금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앨범을 7만원이나주고 사와선 까보지 조차 않은 아이입니다. 빈티지 스티커를 사는데 몇만원을 아끼지 않지만 엄마 선물 주는게 아깝다는 아이를 그냥 놔두고 볼수는 없었습니다. 

"여보 그냥 받지 마라. 기분 나빠서 어디 받겠어.마음 상하는데 뭐하러 받으려고 그래. 그만둬"

남편이 나를 말렸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아니 나는 기분 같아서는 10만원이라도 받아낼 생각이야. 엄마 생일인데 그걸 아낀다고. 그럼 안되지."

편지와 함께 5만원을 생일이 지나기 전에 꼭 챙겨주라고 한번더 못을 박았지요.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지갑안에서 현금을 정리하던 딸아이가 돈이 없어졌다며 야단이 난 겁니다. 

"분명히 책상위에 5천원을 놨는데 없어졌어. 누가 가져간거야?"

아이는 방안을 뒤지며 크게 떠들었습니다.우리는 모두 어이가 없었지요. 

"지금 우리를 도둑으로 의심하는 거야? 돈 잃어버린 건 돈을 함부로 둔 사람이 잘못한거지. 기분나쁘게 왜 우리를 의심해. 누가 네 돈에 손을 대니. 돈개념이 확실한 네 동생이겠어. 엄마아빠겠어. 어이가 없네 정말."

돈관리를 잘못하고 주위 사람을 의심하는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 우리는 한참을 아이에게 설명했습니다. 아이는 알아들었는지 모르는지 뾰루퉁 한채 자신의 5천원을 찾는데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일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 돈관리에 대한 잔소리를 한참동안 늘어놓았습니다. 

"다시는 돈관리 못하고 사람의심하는 일 없도록 해."

그렇게 사라진 5천원때문에 시끌벅적 하느라 시간은 12시가 가까워졌지요. 

"분명히 말해. 내일 아침에 눈을 떴을때 편지가 남겨져 있어야 할꺼야."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한참을 부시럭거리는 통에 자다가 잠이 깼습니다. 

아이가 거실 불을 켜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눈을 뜨니 한시가 강ㅏ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너 이 시간까지 안자고 뭐해. 편지는 썼어?"

"아직 다 못썼어. 사회 숙제가 있어서 그거 하느라."

나는 한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 편지를 쓰지 않은 아이에게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여 마무리 하고 자. 시간이 몇시니 지금."

하지만 아침에 책상위에 놓인 하얀 백지를 본 순간 나는 더이상 참을수가 없었지요. 

나는 어젯밤 아이가 자고있는 나를 신경도 쓰지않은채 거실불을 켠 것처럼 똑같이 아이 방 불을 켰습니다. 

입에 가글을 물고 있었기에 아이 다리를 두드려 깨운후 빈종이를 흔들어 보였지요. 

아이는 말귀를 알아들은 듯 침대에서 일어났습니다. 

한 참 뒤 아이가 편지와 5만원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편지에는 두서없이 쓴말또쓰고 또쓴 말들이 오늘 아침 나의 기분처럼 빙빙 제자리를 

돌고 있었습니다. 

이른아침 알람이 울립니다. 5분만 더 뒤로 알람을 맞춥니다. 5분뒤 다시 알람이 울립니다. 

마지못해 몸을 일으키며 생각합니다. 

"아 직장 그만 두고 싶다. 이대로 쓰러져서 더 자고 싶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매일 아침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준비를 할 수밖에 없지요. 

엄마 노릇도 그렇습니다. 아이에게는 공부 말고도 가르쳐 줄 것이 참 많습니다. 

생활하면서 하나하나 에티켓을 차분히 가르쳐 주지 않으면 사회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수 있으니까요. 소위 가정교육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가르쳐 주는 일이 때로는 고단합니다. 아이에게 자신에게 중요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은 미리 챙겨서 꼭 마음을 표현하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어제 오늘 이 야단을 겪은 것입니다. 

"생일 지나고 편지와 선물을 마지못해 내미는 행동은 아니야. 다음 달 아빠 생일에는 어떻게 하는지 보겠어."

나는 아이에게 마지막 경고를 날리며 마지못해 내미는 편지와 선물을 옆구리 찔려 겨우 받을수 있었습니다. 

이를 닦을때 혀클리너를 준비합니다. 혀클리너를 혀에 갖다 대기 전 마음의준비를 합니다. 괜찮다 괜찮다 생각해도 혀를 긁어내는 순간 헛구역질이 납니다. 구역질로 눈물 콧물 다 빼고 나서야 혀를 닦아낼수 있습니다. 엄마 노릇도 누군가 예고를 해줬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랬다면 조금 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이를 낳을 수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백번 천번 마음의 준비를 해도 헛구역질을 참아낼수 없는 혀닦기 처럼 엄마 노릇도 그렇겠지요. 오늘도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 나도 아프고 아이도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 매일 매일 가르쳐야할 것이 많습니다. 그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아이라는 한 사람을 만들테니까요. 섣불리 할수도 없는 엄마노릇. 생일 다음날 억지 편지를 받은 사춘기 엄마는 오늘왠지 더 노곤해 지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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