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의 재량휴업일입니다. 엄마가 쉬는 날이면 무조건 아이들도 쉽니다.
중학교 2학년인 첫째는 수능 재량휴업을 나와 같이 하게 되었구요. 둘째만 체험학습 신청을 냈습니다. 쉬는 날은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맛이지요. 아이들은 곤하게 자지만 나는 출근하던 시간에 잠이 깨고 말았습니다. 이눔의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가 내 나이를 한탄하며 유튜브를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출근한 남편에게 띠링 카톡이 왔습니다.
"오늘 뭐할거에요? 엄마 오랫만에 쉬는데 아이들 뷔페 데려가세요."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랐습니다. 아이들을 깨워서 뷔페까지 데리고 가려면 그야말로 일입니다. 쉬는 날은 아이들도 도통 움직이려고를 안하니까요. 생각만해도 그 과정들이 그려져 머리가 아픕니다. 아무 생각없이 쉬고 싶은 나에게 미션을 주는 남편이 얄미웠지요.
"당신은 왜 나를 가스라이팅 하는 거에요.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쉬고 싶다구."
괜히 남편에게 신경질을 냈습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도 너무나 쉽게 했을 말이었는데요.이러다간 괜히 일찍 일어난 것도 남편 탓을 할 노릇이지요.
암튼 남편에게 미션을 전달 받았으니 또 엄마역할을 해야만 하겠다 싶었습니다. 열한시까지 기다려 아이들을 깨워 앉혀 하고 싶은 것을 물었습니다. 간만의 평일의 휴일 아이들은 집에서 뒹굴뒹굴 하고 싶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침대에 붙박이처럼 누워 휴대폰만 들여다볼 생각을 하니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몇번을 하고 싶은게 뭐냐고 물었지만 아이들은 의지가 없어보였습니다. 그 다그치는 와중에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지요. 나도 귀찮은데 뭔가를 해주려 했는데 그것마저 안 받아 먹는 아이들이 얄미웠습니다. 갑자기 화살이 공부와 생활쪽으로 돌아갔지요.
"그렇게 인생의 의지가 없으니 뭐가 되겠어. 안되겠다. 내가 너희들을 너무 편하게 놔뒀어. 이제부터는 공부 의지가 생길때까지 어려운 일들을 직접 해봐야겠어. 그러다 공부가 길이 아니고 진짜 네 길을 찾을수도 있으니까. 어때. 일단 너희들이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그래 사람들에게 물건을 한번 팔아보자. 어차피 낯가려서 말하는거 어려워하니까 그게 담력 기르는데도 도움이 되겠어."
아이들은 나의 성화에 마지못해 핫팩을 팔기로 결정했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이거면 팔리겠다 싶었던 게지요. 아이들은 종이가방에 핫팩을 각자 열개씩 넣고 집을 나섰습니다. 위치추적 어플로 보니 몇번 나와 가봤던 번화가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더군요. 거기서 한참을 아이들은 멈춰서 있었습니다. 행여 나쁜 사람들이 해꽂이 하는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갔습니다. 전화해서 그만 들어오라고 해야하나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려면 내가 이 시간을 견뎌내야해. 그래야 아이들이 단단해질 수 있어. 이제껏 유약하게 키운게 바로 나잖아. 아이들이 스스로 어려움을 겪어 내려면 그 아픔을 부모인 내가 먼저 인내해야하는거야.'
몇번이나 신경이 쓰였지만 누르고 싶은 전화를 누르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두시간쯤 지나자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핫팩을 다 팔기 전에는 집에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었는데요. 설마 벌써 집으로 돌아올까 싶었지요. 하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쉽사리 변할꺼라는 내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요. 이내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 팔았어?'
"아니 이건 도저히 불가능해. 오십분 넘게 한 자리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다들 무시해. 쳐다보지도 않아. 백원을 줘도 십원에 팔아도 이건 정말 안돼."
결국 아이들은 하나도 팔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다시 내보내려고 하니 귓볼이 빨개진 초등생 아들이 안쓰러웠습니다.이제껏 스스로 해볼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은건 나입니다. 어떻게든 내가 도와주고 고생 안시키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아쉬운 것이 있을리도 공부가 절실할 필요도 없었겠지요. 내가 농사일과 농산물 판매를 하며 다짐했던 공부의 절실함이 있을리 만무했습니다. 편안하게 해 놓고 왜 너는 절실하지 않느냐고 원망만 한 내 잘못이 컸습니다. 이제부터는 진짜 달라져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스무살이 넘어도 서른살이 되어도 부모에게 독립하지 못하고 여전히 부모등골브레이커인 조카들을 보며 느꼈습니다. 나도 저렇게 키우면 아이에게 삶의 동기를 전혀 만들어주지 못하겠다구요. 내가시간을 견디고 그 외로움을 이겨내는 아이들을 지켜볼 강단이 있어야 아이도 강단있게 자란다는걸 알면서도 비겁하게 외면해 왔습니다.
"오늘 미션은 실패야.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을거야. 일단 오늘 다녀온 소감을 써. 그리고 오늘저녁은 너희들이 해. 안 친한 친구에게 연락해서 주말 약속도 잡아봐. 이참에 친해지는 기회를 만들게. 너희들이 제 길을 찾았다 할때까지 할 수 있는 도전들을 멈추지 않을거야. 공부가 결코 인생의 오로지 한길은 아니니까."
아이들은 따뜻한 집에 돌아온 것만도 만족스러운 얼굴이었습니다. 소감을 적은걸 보니 처음엔 날씨가 추우니 핫팩이 팔릴 줄 알았는데 무시만 당해서 기분이 나빴다고 씌어있었습니다.
"따뜻하게 차려준 밥 먹고 공부만 하니 그게 쉬운 줄 모르잖아. 알때까지 체험은 계속 해야해."
보글보글 끓여낸 아이들의 된장국을 먹으며 내일은 또 다른 어떤 세상알기 체험을 할까 아이들과 의논하였습니다. 은근히 누나와의 도전 컨셉을 즐기는 아들과 공부가 쉬운건 알겠는데 아직은 절실하지 않다는 첫째에게 어떤 미션을 주어야 단단하게 자랄까요. 나는 알수 없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자 도전해 보려 합니다. 엄마의 도전은 아이의 성장으로 연결된다는것을 믿어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