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링
메신저가 도착했습니다. 3학년 부장님의 메시지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3학년이 영어마을 현장학습을 가려합니다. 특수학급 학생들 참여 여부 궁금합니다.'
현장학습 시즌입니다. 봄가을 수시로 학년별 현장학습이 있습니다. 현장학습이 실시되려면 논의해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일단 아이 쪽을 해결해야 합니다. 아이의 의사를 묻습니다. 아이들은 성향에 따라 대답이 달라집니다. 원반에서 조용히 활동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도 있지만 특수학급의 활동을 더 편해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원반에서 함께 활동하려면 기본적으로 스스로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해야 합니다. 함께 갈만한 낯익거나 잘 챙겨주는 친구가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챙겨줄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원반 친구들과 함께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합니다. 나는 이번에도 가장 먼저 아이들의 의사를 물었습니다. 3학년에 소속된 두 아이 모두 특수학급에서 따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고 합니다. 같이 어울릴 법도 한대요. 무조건 싫다고 합니다.
"이유가 뭔데?"
"영어마을. 영어 못해요. 땡큐밖에 못하는데 못가요."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나로서는 단번에 이해가 되는 대답입니다. 원어민들과 대화를 해야하는 상황이 오면 부담스러울수 있지요. 하지만 학교에서 함께 이동하는 프로그램이니 영어를 좀 못해도 괜찮습니다. 우리 말로 말한다한들 아이를 비난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현우는 일단 부담스러운 모양입니다. 반 친구들이랑 함께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라 무척 아까운데요. 그럼에도 본인 고집과 생각이 대단합니다.
학생의 생각을 물었으면 2단계는 부모님의 의견을 묻는 겁니다. 이는 담임선생님의 생각을 묻는 것과 함께 이뤄집니다. 학생 본인의 생각은 이러한데 엄마나 선생님의 판단은 어떠신지를 물어야하지요.
자가 통학이 안되거나 친구들과 다툼이 있을 법한 학생은 엄마와 담임선생님의 의견이 엇갈리기도 합니다. 한명만 통솔하는게 아니기에 담임선생님의 부담이 커지지요. 특수교사가 분신술로 모든 반을 따라가서 지원해준다면 모를까요. 아이들끼리 모둠을 나눠서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하는 중학교에서 우리반 친구를 함께 데리고 가달라는 부탁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지난번 에버랜드 갈때 부탁했다가 거절을 당한 김선생님의 경우는 더 그렇지요. 엄마는 원반 친구들과 공부시간 아니고 이때 안어울리면 언제 함께 하느냐고 하시지만요.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모둠이 만들어진 상태여서 그 모둠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아이가 알아서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다면 걱정없지만 어른인 선생님이 개입하여 짝을 지어주는 것을 아이들은 정말 싫어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김선생님네 아이는 지원이 없으면 함께까기 어렵다는 답변을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민우도 나와 함께 활동하는 걸 원하니 어머니를 설득해 보지요. 원칙대로 하자면 나는 원적학급에서 우리반 친구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옳습니다만 아이들이 이렇게 따로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거나 각자 다른 곳으로 흩어질 경우는 예외입니다. 내가 따로 프로그램을 만들수 밖에 없지요. 게다가 내가 3학년 현장학습을 지원가면 1.2학년은 꼼짝없이 교실에서만 수업을 해야 하니까요.
두 아이와 부모님, 선생님과의 의견 조율이 끝났습니다. 이번에는 영어마을의 부담감이 있으니 특수학급 현장학습 프로그램을 따로 진행하기로 한 것입니다. 현우는 친구들과 함께 가도 좋을듯 하지만 절대 생각을 바꾸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분명히 원반 친구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우리 반 프로그램에 합류시키기로 하였지요.
모두들 아침부터 부산합니다. 영어마을에 가기 위해 버스를 대절했으니까요. 학교앞이 북적거립니다. 우리는 복잡한 학교에서 벗어나 저만치 떨어진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고 고른 만화카페에 가기로 했거든요. 만화카페에 갔다가 아이들에게 필요한 직업교육인 반찬만들기 실습을 할 것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아이들의 얼굴이 상기되었습니다. 오늘이야말로 답답한 학교 공부에서 벗어나 신나게 활동만 하면 되니까요.
아이들은 특수학급의 현장학습을 참 좋아합니다. 반 친구들 눈치 볼것도 없고 못한다는 소리도 안들으니까요. 게다가 특수학급 친구들과는 친하고 말도 잘 통합니다. 서로 웃고 떠들며 버스를 기다리다 자연스럽게 둘씩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꽂으며 버스에서 신나게 음악을 듣고 현장학습 장으로 갑니다.
"선생님 너무 기대되요. 너무 좋아요."
연신 오늘의 활동에 대한 기대를 내비칩니다. 통합교육이니 원반에서 하는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면서 친구와 함께 하는 기회도 갖고 친해지는 시간도 가질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도움을 주고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지원해줘야할 친구들이 학년별로 있습니다. 특수교사가 여럿이 아니니 그 지원을 모두 해줄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한가지 프로그램을 짜서 특수학급 아이들을 다 데려가는 거지요. 아이들도 나도 그게 마음이 편하기는 한데 그래도 이게 맞는건가 싶은 자괴감이 순간 순간 올라옵니다. 제대로 된 통합교육을 위해선 더 많은 지원과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니까요.
학교 단톡방에 영어마을 아이들 활동 사진이 올라옵니다. 우리 아이들이 열심히 만화를 읽고 반찬을 만든 모습도 공유할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함께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활동을 못하는 모습이 속상했거든요. 오늘 우리가 하는 활동이 영어마을에서의 체험보다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고 유익하다고는 해도요. 함께 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머리에서 한참을 맴돕니다.
"진우야. 다음에는 혼자라도 꼭 반 친구들이랑 활동해야 해. 약속~!!"
오늘 특수학급 현장학습이 너무 만족스러웠다는 진우에게 새끼 손가락 걸어 약속을 했습니다. 친구들과 활발하게 대화하거나 주도하지는 않더라도 친구들과 자꾸 어울리는 연습이 진우에겐 분명히 필요하니까요.
네명이면 4인 4색. 일곱명이면 7인 7색을 가진 아이에게 맞는 지원을 하기 위해서 나는 이게 맞았던 걸까 무거운 질문을 가슴에 앉고 돌아왔습니다. 만족도 높게 행복해하는 아이들 웃음따라 해맑게 웃기가 어려운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