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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Nov 13. 2023

이걸 가장 중요하게 가르칩니다.

교실에 들어서는 찬형이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합니다. 

의기양양해서 들어오는 걸 보니 미션성공인 듯 한대요.

 저렇게 만족한 얼굴을 보기 위해서 녀석을 압박? 했던 지난 시간이 스치듯 니자갑니다. 

'녀석 그렇게 잘해낼꺼면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찬형이에게 다가섰습니다.

"찬형아 어제 선생님하고 한 약속 지켰어?"

찬형이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 어제는 한지형 한테 인사했어요. 오늘은 김윤하에게 인사했어요."

"진짜? 어제만 한게 아니고 오늘도 했다고?"

"안녕이라고 했어요."

"친구들한테 인사하니까 기분이 어땠어?

"좋았어."

"그럼 다음주에도 매일 매일 인사할 수 있겠어?"

"네"

찬형이는 우리반 모범생입니다. 엄마는 찬형이를 특수학급의 연세대 클라스라고 부를 정도지요. 바른 생활 사나이인 찬형이는 반듯 반듯 잘 그어진 격자무늬 같습니다. 원칙을 중요시하고규칙을 지키려고 하지요. 그래서 원반에서도 큰 문제 없이 잘 지냅니다. 공개수업할 때 찬형이 교실에 가보니 그 누구보다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집중하며 선생님 말을 듣고 교과서에 밑줄도 긋곤 했습니다. 수업에 참여한 찬형이의 표정이 어찌나 의연한지 모릅니다. 찬형이의 수업에 대한 의지가 느껴져 대견할 정도였지요.찬형이는 스스로 규칙을 세워 지켜야할 게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교실에서 모범생처럼 선생님의 지시에는 잘 따르지만 경직되어 있습니다. 늘 긴장하고 있으니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도 없지요. 속으로는 누구보다 친구를 원했지만 반응없고 소극적인 찬형이에게 먼저 다가가는 친구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별수 없지요. 찬형이의 틀을 깨는 수밖에요. 

"찬형아. 너 몇번이나 약속했잖아. 친구에게 인사하기로. 그런데 약속 한번도 안 지켰지. 찬형이 정말 모범생이잖아. 반에서 뭐든지 친구들이랑 함께 할 수 있어. 공부는 어렵긴 하지만 못해도 괜찮아. 뭐든 다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대신 이번엔 핑계대지 말고 친구랑 꼭 인사하고오는 거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단호하게 찬형이에게 말했습니다. 찬형이의 눈동자가 떨렸어요. 한번도 자기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늘 칭찬만 하고 잘한다고 추켜세우던 내가 무섭게 말하자 찬형이도 잔뜩 긴장한 듯 보였습니다. 

"인사안하면 친구 없어. 그럼 고등학교도 친구 하나 없는 먼 학교로 가야 돼."

찬형이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면서 찬형이도 마음을 다잡는 것처럼 보였지요. 어렵더라도 한번은 해야할 일입니다. 그래야 친구들과 관계가 시작되고 찬형이도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한번더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늘 친구에게 꼭 인사하고 와. 그리고 말해줘. 누구랑 인사했는지. 선생님이 내일 꼭 체크할 거야."

어제와 오늘 찬형이는 그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기회를 발판으로 한발 더 나아가야했지요. 

"찬형아. 친구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니 기분 좋았잖아. 그런데 매번 안녕이라는 인사만 할 수는 없어. 이제 친구들이랑 어떤 말을 할지 선생님이랑 함께 생각해 볼까?"


 찬형이와 나는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적어보았습니다. 빈 종이 한장이 가득찰 정도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소리내어 연습할 필요가 있었기에 찬형이에게 한문장 한문장 읽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주제에 대해 대화를 이어나가는 방법을 함께 연습했지요. 내가 찬형이 친구가 되어 대화를 주고 받으며 이어갈 대화들을 귀뜸해 주었습니다. 

"이제 다음주부터 여기서 한가지씩 주제 정해서 반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오는 거다. 할 수 있지. 우리 찬형이."

찬형이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안녕이라고 첫 인사를 꺼낸 것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모양입니다. 다음주에는 우리 반 친구들앞에서 찬형이에게 이 인사말들을 소개하는 시간도 가질 겁니다. 친구들 앞에서 자신이 쓴 이 문장들을 자랑하다보면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될테니까요.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주제 하나를 정해 이야기를 늘려나가는 연습도 할 겁니다. 그러면 여러번 연습한 찬형이가 친구들앞에서 더 쉽게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으니까요. 나는 어머니께 이 소식을 전하며 집에서도 무한 칭찬을 해주십사 했습니다. 그래야 기분 좋아서 이 행동을 계속 이어나갈수 있지요. 어머니는 기뻐하시며 집에서도 계속 연습시켜 보겠노라고 하셨습니다. 

특수학급 친구들은 우리반에서는 정말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냅니다. 하지만 반에 돌아가면 기가 죽어 한마디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릴때 몇번 대화를 시도했을 텐데 그때 실패한 경험 때문에 더 그렇지요. 자신없이 작게 말하고 정확하게 소리내지 않고 주제도 공통점이 없었겠죠. 대화를 오래 이어나가기가 쉽지않았을 겁니다. 몇번 대화해 보면 우리 아이들의 말의 패턴과 조음법을 이해해서 더 대화를 잘 이어나갈 수 있는데요. 그만큼의 참을성이 친구들에게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말을 해도 못알아듣는 친구들 때문에 아이들은 원반에서 친구와 대화하려는 자신감을 잃었을 겁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매년 다른 방식으로 대화의 문을 여는 교육을 시킵니다. 특히 찬형이처럼 그것만 채워지면 우리반에 오지 않고도 잘 지낼 수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 교육이 시급하지요. 아이와 함께 대화 연습을 하며 부디 찬형이에게도 친구가 생기길 바라게 되지요. 

찬형이는 자신이 적은 인사말들을 보며 방긋 미소를 짓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인사말을 적었다는게 무척 자랑스러운 모양입니다. 이 문장들이 찬형이에게 날개를 달아주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찬형이가 어느 날 친구들과 스스름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래요. 이것이 가르쳐야할 많고 많은 것중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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