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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쌤 Apr 08. 2024

쪽방촌의 삶을 들여다보다

집이 아닌 삶이었다

(사진 출처: 조선일보)


쪽방: 방을 여러 개의 작은 크기로 나누어서 한두 사람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 놓은 방. 6제곱미터 전후의 작은 방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빈민촌이나 달동네 등에 가면 이런 식의 주거형태를 쉽게 볼 수 있다.
- 출처: 나무위키-


2024년 2월 18일, 서울엔 차가운 비가 내리다 말았다.

바닥은 축축했고 바람은 차가웠지만 공기는 미적지근했다. 이런 꿉꿉한 날씨에 새벽부터 일어난 나를 대견해한다. 그래서 지방러가 서울까지 무슨 연유냐고 묻노라면 바쁘다며 핑계 댈 비겁한 내가 싫었다고 대답하겠다. 서울, 그중에 용산구다. 용산구면 떠오르는 닉값은 재개발, 대장 아파트, 한강뷰. 난다긴다하는 부자들이 사는 으리으리한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어딘가 빈약한 쪽방촌과 가깝다. 코 닿을 거리만큼. 그들이 잘못한 건 아니지만 괜히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아 적대적으로까지 보이기 한다. 오늘은 시선을 위로 거두지 않기로 했다.


오늘 나는 이 쪽방촌에 도시락을 배달하러 왔다.





시선을 아래로 향해 전을 부친다.

오래간만에 하는 단순노동이 흥에 겹다. 이럴 때 꼭 하는 말은 ‘사람 안 만나는 직업하고 싶다!’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실없는 농담이 그저 재밌다. 노동의 희열이 기름진 공기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허리 좀 펴고 오라며, 못 이기는 척 한 번 나갔다 오는데. 이 상쾌함 뭐냐며 그만 하늘을 봐버렸다. 위를 안 보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배달의 기억이 참 선명한데, 구역에 따라 1조부터 4조로 나누었다.  조별로 남성을 분배하고 도시락을 차로 옮긴다. 경차 한 대도 지나가기 힘든 길을 슝슝 운전하신다. 과감한 운전 실력에 한 번 감탄하고 이런 좁은 길바닥에 주차된 대형 벤츠에 또 한 번 감탄한다.



그들은 어슬렁거렸다.

슬슬 눈치를 보더니 결국 하나만 달라고 구걸한다. 줘야 하나?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들을 위해 열심히 준비한 밥인데 냉큼 줘서는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안 주자니 좀생이 같고. 돕자고 온 건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아니나 다를까, 정해진 구역 안에, 집에 계신 사람에게 배분하는 방식이란다. 쪽방촌의 실체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집이 월세 30만 원이라는데 물음표가 절로 나오는 비참한 공간이다. 남루했던 과거의 명함은 내밀지도 못한다. 유니세프 채널만 나와도 가슴 아프다며 못 보겠다고 채널 돌리는 나는 시선을 헤매기 시작했다. 아래로. 복도를 통과하며 문을 지그재그로 두드린다. 도시락 왔다는 소식에 문이 열리며 손을 내민다. 처음엔 단순 호기심으로 그들의 집을 엿보곤 이내 보지 않게 됐다. 집이 아닌 삶이었다. 속이 허해질 때쯤 배달은 끝이 났다. 언젠가 다른 지인과 함께 오고 싶었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적은 흥미롭다.



선한 인간성의 상실과 도덕성의 붕괴는 사회의 위험신호로서 개인들의 이기적인 발상과 집단이기주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것을 극복하고 건전한 사회를 이룰 수 있는 방향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가치관을 정착시키는 일이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한 마디로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에 있다. 봉사의 의지와 신념을 갖추지 못한 교육은 인간성 회복과 성취에 이바지할 수 없다.

- 신자원봉사론 中, 정하성 -





개인주의가 끝없이 깊어지는 세상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직면하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봉사활동 문화는 확장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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