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정말 녹차같구나

주제어 '7월'의 글쓰기

by 김윤

‘이 시국에 굳이 결혼식을 하나보네. 난 못 가겠다.’ ‘하필 더운 날에 결혼식을 한다고?’ 결혼식 날짜는 7월의 정확한 중간 즈음의 토요일이었다. 10시 쉬는 시간에 맞추어 사무실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궁시렁대며 계단을 내려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려왔던지 계단이 큰 진동과 함께 쿵쾅거렸다. 처음 회사 건물을 올릴 때 나름 신경 쓴다고 우드 컬러로 특별히 맞춘 계단이었다. 회사를 방문한 고객들이 특이하고 예쁘다며 좋아한 그 계단에 한 발 올린 순간, 2층 출입문이 활짝 열렸다. 불과 30분 전, 청첩장을 돌린 주인공 P차장이었다. 그의 결혼 소식은 이상하리만큼 이 작은 회사를 들썩이게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평생을 깔끔한 신사로 늙으리라 예상했던 50대 중반의 나이였다.


“아기 줄만한 게 있는지 찾아봤는데, 사올 게 이것 밖에 없었어요.” 고급 초콜릿이었다. 주로 유럽 출장을 다녔던 P차장은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는 3구짜리 초콜릿을 종종 사오곤 했었는데 그 날은 꽤 큼지막한 초콜릿 박스를 들고 왔다. 나는 두 손을 한 데 모아 감동한 표정을 지었고, 곧장 카톡창을 열어 “너무 감사해요, 출장으로 바쁘실 텐데 아기 선물 생각도 해주시고 정말 감동받았어요.” 호들갑을 있는 대로 떨었다. 스위스 공항 면세점 몇 바퀴를 돌아봤는데도 괜찮은 게 없어서 무난히 초콜릿을 샀다는 그의 답장이 날아왔다. 내 마음은 완벽히 초콜릿이었다.


선물을 계기로 한층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P와 나 사이 서서히 틈이 생긴 일이 있었는데, 목요일마다 열리는 차장 회의가 화근이었다. 회의가 시작되기 10분 전 여직원이 곱게 커피나 녹차를 타서 회의실에 착석한 남직원 앞에 놓아두어야했기에 나는 목요일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마지막 직원의 차를 놓아두고 회의실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은 해방감을 느낄 정도였다.


초콜릿을 선물한 그 즈음인 것 같다. P는 탕비실에서 차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찾아와 “저는 따뜻한 녹차 한 잔 주세요” 카페에서 주문하듯 말했다. 능글맞은 눈빛과 어거지로 올린 입꼬리. 얼굴 근육은 옅게 웃고 있었지만 P가 웃고 있지 않다는 확신 같은 게 들었다. 곧 뒤돌아서며 미소를 싹 걷어는 P를 본 순간 나는 동작을 멈추었다. 등골이 싸했다. 늘 녹차를 마셔왔던 그였는데, 방금 전 그건 뭐였을까?


그 날 이후로도 목요일만 되면 P는 굳이 나를 찾아와 녹차를 주문했다. 나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불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음 출장에서 초콜릿 상자를 들고 와도 카톡을 열어 감동받았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을 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P는 언제나 말끔한 차림새, 정중한 말솜씨, 친절한 매너남이었으니까. 앞에선 웃고 뒤돌아서면 감추는 P의 속마음이 궁금했지만 전혀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아니, P와는 어떤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목요일만 되면 내 신경은 곤두섰다. 해가 바뀌고 난 뒤로는 녹차를 달라는 P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입을 다문 나에게 P는 목요일마다 다가와 다정스러운 듯 말을 건넸다. “저는 따뜻한 녹차 한 잔주세요”


결혼식이 있던 날은 정말 더웠다. P와 나 사이에 어떤 기류가 흐르고 있든 미래웨딩 그랜드홀을 찾아갔다. 길일을 축하한다는 마음에 슬쩍 들뜨기도 했다. 신부 대기실에서 P를 마주했다. 반가워해줄 줄 알았던 P는 “아 왔네요. 고마워요”라는 말을 내뱉고는 내 곁을 쌩하니 지나쳐 갔다. 눈빛과 입꼬리, 익숙한 목요일의 풍경. 마침 아이보리 턱시도를 입은 그를 뒤에서 바라보니 꼭 녹차 티백 생겼네, 이 상황에서 녹차티백이라니. 팔팔 끓는 물에 빠진 녹차 티백을 상상하자 에어컨이 한창인데도 열이 훅 끼쳐 뻗친다. 그 날은 정말이지 무더운 7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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