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 Jan 05. 2021

돈도 주고 과자도 주잖아

어린이집 휴원을 선언한 다섯 살과 친정 엄마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어린이집 휴원입니다. 긴급 보육 필요한 원아는 오후 4시까지 확인 바랍니다.” 문자 메시지를 받자마자 고개를 떨구었다. 하아, 또 시작이겠구나. 당장 내일부터 코로나로 인한 두 번째 휴원이 시작이다.      

 처음 어린이집이 휴원 했던 시기, 아이도 자체적으로 휴원을 선언했다. 며칠 등원을 하고 오더니 어린이집 내에서 시행하는 까다로운 거리두기를 못 견뎌했다. 친구들을 만나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고 미용실 놀이, 병원 놀이마저 제지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평소 등하원을 도와주시는 친정 부모님이 계셨지만 하루 온종일 손녀딸 돌봄을 부탁드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삼십 대 중반인 우리 부부에게도 5살 돌봄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나 내일부터 어린이집 안 갈 거야.” 아이의 휴원 선언 다음 날. 무거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정 엄마와 딸아이는 만나자마자 서로의 얼굴을 부비대며 아침 인사를 했다. “일단 등원하는 방향으로 하면 어떨까 어차피 긴급 보육은 가능하잖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에게 말했다. 조금 다정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목소리는 그저 무뚝뚝하게 흘러나왔다. “안 간다고 하면 내가 보고 있으면 되지 뭐가 걱정이니. 운전 조심하거라.” 엄마는 늘 그렇듯 운전하는 나를 걱정했고, 나는 돌봄을 책임지게 될 엄마를 걱정했다. 고작 아침 7시가 넘었을 뿐인데, 우리는 서로의 걱정으로 고단했다.           


 그런 나날이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하고, 엄마는 온종일 손녀를 돌보는 나날. 백일도 채 안 된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회사로 복직하던 날, 하나밖에 없는 손녀를 셋째라 생각하고 키우겠다고 하던 엄마의 말이 무덤덤하게 떠올랐고 그래서 슬퍼졌다. 아이가 주는 좋은 에너지와는 별개로 엄마의 어깨는 더 주저앉을 것이고 무릎과 손목은 쑤실 것이다. 5년 전 그날과 비교하여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 이 상황들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코로나로 인한 돌봄 공백은 나를 고단하고 슬프고 무기력하게 했다.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나를 짓누르고 말았다.      


 9년 직장 생활 동안 이토록 퇴근을 바라고, 주말이 오기를 고대한 적이 또 있을까. 막상 퇴근을 해도 당장 내일 출근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나날이 속절없이 지속되고 있다. 연차, 반차, 조퇴를 가늠하느라 달력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기 일쑤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이렇게 보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괴롭다.

         

 엄마는 종종 아파트 놀이터에서 비슷한 나이 때의 할머니들을 만나 육아의 고단함을 풀어낸다고 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나의 외할머니도 돌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친정을 찾았다. 돌봄 노동을 떠안은 여자의 삶이란 무엇일까. 몇 세대를 거슬러 내려와도 끊임없이 제자리에 서 있는 엄마라는 자리를 떠올려본다. 안팎으로 여자의 손을 거쳐야만 자라나는 인간들과 그렇게 여자의 사랑을 먹고 자라나 다시금 돌봄 걱정을 하는 여자들. 내가 아는 여자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할머니, 엄마, 딸이라는 이름의 그녀들을.



 엄마는 어느 날인가부터 사진을 보내왔다. 동네 횟집 수족관 앞, 엄마가 다니는 성당, 집 근처 연못가, 예쁜 꽃밭. 그곳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이를 앞세워 찍은 사진들.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보며 나도 조금씩 웃었다. 개구지고 천진난만한 그 미소를 보고 있으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것 같기도 했다. 거짓말처럼 바이러스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마저 했다. 그러고 보니 사진 속 아이는 카메라를 보고 웃는 게 아니라 자신을 찍는 할머니를 보며 웃고 있다. 분명 할머니도, 그러니까 나의 엄마도 카메라 밖에서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엄마가 웃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웃게 만들었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지만 자꾸 파스를 찾는 엄마가 웃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할머니가 돈도 주고 과자도 주잖아, 나 어린이집 안 가도 재밌거든.”

아이의 말에 온 가족이 푸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할머니 손을 잡고 나선 길에서 마주친 지인들이 용돈을 주신 모양이다. 맛있는 과자도 손에 들려주며 “아이고 예뻐라” 덕담도 분명 잊지 않으셨을 거다. 언제나 그렇듯 5살의 세계는 쉽고 간단하다. 코로나로 생겨난 약간의 불편함 따위는 과자로 잊을 수 있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 흉흉한 세상이 너에게만큼은 돈도 나오고 과자도 나오는 재미난 세상인 점은 참 다행이다. 적어도 울지 않고 웃어 주어서 고맙다.          


 여전히 어린이집은 휴원 상태이고, 아이는 할머니 품에서 논다. 오늘도 엄마는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햇살이 좋아서 놀기에 딱 좋은 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진 속 아이는 신나 보이고 어쨌든 엄마도 놀기 좋은 날이라니 내 마음은 조금 누그러진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없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아이는 언제 기관에 복귀할지 모르겠다. 끝이 있는지조차 미지수인 이 시절을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 웃고 있는 아이를 두고 고단했다가 웃었다가 되풀이하는 이 시절을 말이다. 오늘은 나도 엄마에게 사진을 한 장 보내고 싶다. 그리고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아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