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식당에서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나는 커피맛 아이스크림을 하나 골라 맛있게 까먹으며 자리로 돌아온 후, 점심시간에 늘상 도착해있는 남편의 카톡을 확인했다.
“밥 많이 먹었어? 맛있게 먹었어? 책 읽고 푹 쉬어” 주로 위의 세 가지 의미가 담긴 다정한 메시지이다. 그날은 아이스크림 챙겨 먹었냐는 디저트 이야기가 더해졌다.
“응. 지금 먹고 있어. 자기는 무슨 맛 골랐어? 난 커피맛.”
“나는 빠삐코 우유맛이야.”
빠삐코 우유맛이라는 카톡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풋하고 웃음이 났다. 곰처럼 큰 덩치의 남편이 자신의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핸드폰 자판으로 ‘빠삐코 우유맛’이라는 귀여운 단어를 두드리는 모습이 상상되어서 귀여웠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가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마다 어떤 맛을 먹고 있는지 카톡으로 적어줬으면 좋겠다. 귀엽고 깜찍한 아이스크림 이름을 알려주는 남편의 카톡을 읽으면 언제 어디서든 기분이 좋아질 것 같으니까.
사소한 것을 궁금해하고 사소한 것을 알려주는 사이. 매일 반복되는 무심한 일상이 별사탕 같아지는 순간이 매순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우리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카톡방은 그런 우리의 대화를 정직하게 담아내준다.
결혼 생활의 무탈함은 ‘대화가 통하는 힘’이 8할 이상 차지하는 것 같다. 나는 남편과 대화를 나눌 때 가장 큰 편안함을 느낀다. 나의 말이 근사하게 들리도록 그 어떤 조미료를 더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대방이자, 나의 어제를 가장 잘 알기에 나의 오늘을 가장 궁금해 해주는 단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가장 괜찮은 대화자는 나의 말을 언제나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상대방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이야기라도 서스럼없이 터놓을 수 있는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는 리액션을 주지 않아도, 내 말에 대꾸가 없어도,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주절주절 거릴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존재. 내게는 거리감이 없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나 어제 꿈속에서 북한 다녀왔어. 내가 거기서 되게 중요한 위치의 인물인거야. 이 꿈 무슨 뜻일까?”
“내가 언젠가 한 번은 연금복권에 당첨될 것 같아. 그런 느낌 들지 않아? 그면 자기 용돈은 100만원 줄게.”
남편에게는 다소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까지 주절거린다. “정신 좀 차려라.”는 구박을 받더라도 편하게 내 속의 모든 말들을 할 수 있기에 마냥 든든하고 좋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만일 로또에 당첨된다면”이라는 주제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면서 키득거리는데, 각자 부모님께 얼마씩의 용돈을 드린 후에, 자동차를 구입할 지, 부동산을 구입할 지에 대해 의견을 낸다. 그 상상 속의 일을 진지하게 의논하고 있노라면 별안간 막 웃음이 터진다. 어쩌면 우리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난 건 아닐까. 서로의 흐트러진 모습을 받아주기 위해 함께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셈이다. 남편과의 카톡 메시지를 들여다보면, 회사에서 점심은 많이 먹었는지, 외근은 잘 다녀왔는지, 가는 길에 커피를 사먹었다던지, 티타임에 무슨 간식을 먹었는지, 주말에는 어디를 가보면 좋을지, 핫딜 정보, 블로그 공유 등등 이런 사소한 이야깃거리들로 빼곡하다. 아이의 사진이 오고 가는 것을 제외하면 결혼 전이나 후나 우리의 대화 수준은 거기서 거기다. 너무 사소하고 시시콜콜해서 누가 볼까봐 겁이 날 정도이다. 그래도 이 공간에는 우리를 증명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시간이 꽤 지난 일들을 기억해내야 할 때 카톡창에서 검색을 해보면 대부분의 일들을 찾아낼 수 있다.
“아! 나 두달 전에 창원에 외근 나간 날 기억해? 지금 날짜가 필요한데. 그때 우리 무슨 얘기 했더라?” 식으로 카톡의 대화를 거슬러 가면서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찾기도 한다. 영양가 없이 시시콜콜한 얘기만 하는 것 같지만 이렇게 종종 쓸모 있기도 하다. 매일매일 쌓여가는 대화를 보고 있자면 우리 둘만의 일기장 혹은 펜팔장을 가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남편은 생각보다 꽤 섬세한 사람이라 핸드폰을 바꿀 때 우리의 카톡을 백업시켜 놓는다. 물론 나에 대한 사랑이 커서라기보다는 본인의 일상을 보관한다는 느낌이 더 강하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대화를 저장해놓는 그의 습관이 싫지 않다. 노트북에 저장된 카톡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세상 어딘가에 우리가 만나온 시간 동안 나누었던 글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하다. 사랑이 실체로써 존재하는 기분이랄까. 이래서 사람들이 일기를 쓰고 무엇이든 기록하고 싶은 것 같다.
하루를 마감한 시각, 오늘은 남편이 또 어떤 이야기를 담아 집으로 퇴근하는지, 어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낼지 궁금하고, 그의 입에서 흐르는 말들에 집중하게 된다. 대화가 끊이지 않기에 결국에는 서로에 대한 관심도 사랑도 끊이지 않고 샘솟는다는 것을 느낀다.
[스물일곱에 만나 여든일곱까지 대화를 나누다 잠들다]와 같은 묘비명도 꽤 근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