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준비물 단 하나, 내 몸.
내 인생 마지막 출산이 벌써 22개월이 지났다. 둘째가 어린이집만 가고 나면 기필코 살을 빼리라, 옷장 속에 처박혀 있는 청바지를 입으리라 얼마나 다짐을 해왔던가. 미루고 미루었던 모든 것들을 ‘애들이 집을 떠나고 나면’이라고 기한을 만들어두었는데.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과 둘째의 어린이집 적응기는 생각보다 길고 힘들었다. 나도 엄마로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1학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 9월 강좌 시간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요가를 할까 하다가 소도구 필라테스로 정했다. 출산 후 허리 디스크가 터진 친구가 필라테스를 강력추천하던 게 떠올랐다. 나도 출산으로 어딘가 모르게 뒤틀린 곳이 있지 않을까 매번 궁금하고 걱정되었던 참에 재활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필라테스’를 한 번 해보자 싶었다.
강좌를 신청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필라테스복 구입. 레깅스 두 벌과 헐렁한 티셔츠 세 벌을 샀다. ‘운동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던 시절부터 눈여겨보던 브랜드였다. 집으로 택배가 도착하자 딸이랑 남편이 더 난리다. 무슨 색을 샀느냐부터 시작해서 어서 입어 봐라고 성화다. 가족들 앞이지만 이럴 땐 좀 쑥스럽다. 새 옷을 입고 최랄라 등장할 때. 안방 구석에서 난생처음 필라테스복을 입었다. ‘작으면 어떡하지, 너무 쫄려서 뚱돼지 같이 보이면 어떡하지’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얼추 괜찮아 보였다. 남편이 “오, 예쁜데?” 딸아이가 “엄마, 멋지다!”라고 칭찬해 줬다. 내심 좋았다.
옷을 장만했으니 이제 또 뭐가 필요할까. 운동 중간에 물도 마셔야 되니 물통도 필요하겠고, 핸드폰도 가져가야 되니 그래, 가방도 있어야겠구나. 가장 무난한 에코백과 물통을 준비했다. 첫날 가보고 필요한 게 생기면 그때 더 장만해야지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올까 유심히 살펴봐야지.
9월이 되었다. 달력에 첫 필라테스하는 날을 동그랗게 표시했다. 딸아이는 밖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엄마 필라테스 시작해요!” 자랑을 했다. 민망했지만, 아이의 기대는 나를 들뜨게 했다.
첫 강의날. 필라테스를 할 때 필요한 건 하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준비물은 바로 나의 몸. 그거면 충분하다. 나처럼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 온 사람은 수강생의 반밖에 없다. 헐렁한 운동복, 집에서 입는 편한 바지를 입고 온다. 브랜드 운동복도 예쁜 에코백도 전문가스러운 양말도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일으키고 45도로 뻗어내고 쪼그라지고 활짝 펴고 결국에는 삐질 삐지리 땀을 흘려대는 몸뚱아리.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나는 이제 외투에 핸드폰을 찔러 넣고 터덜터덜 몸만 강의실로 간다.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서는 순간, 오늘도 운동하러 가는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 작은 성공을 했다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다른 준비물보다 내 몸을 소중히 여겨야지, 오늘도 되새기며.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