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해주는 하루의 자유
남편이 파마를 하고 집에 왔다. 뽀글거리는 파마는 처음이라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서는 그에게 “예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어울리네.” 마음에도 없는 말을 건넸다. 실은, 속이 무지 쓰렸다.
우리는 함께 미용실을 가기로 입을 맞춘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의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친구의 엄마도 함께 오게 된 바람에 남편은 미용실에 가서 머리나 하고 오면 되겠다며 홀로 집을 나섰다. 그가 없는 동안 나는 끝없는 청소와 장난감 정리를 했고, 아이들 먹거리를 만들고, 놀이터도 다녀왔고, 처음 만난 아이 엄마와의 대화에도 신경 썼다. 다섯 시간이 흘렀을까. 손님은 가고 남편이 왔다. 그는 파마도 했고, 시간이 남아 PC방도 다녀왔다고 했다. 잘 볶아진 남편의 머리만큼이나 내 속은 뒤집혔다.
늘 이런 식이었다. 곧잘 자유의 몸이 되곤 하는 남편과 달리, 항상 아이의 스케줄을 먼저 챙기는 ‘나’는 뒷전이 되었다. 회식으로 술자리 그리고 2차 노래방까지 야무지게 즐기는 남편과 달리 나는 반년에 한 번 참가하는 회식에서도 아이의 부름이 있을까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함께 부모가 되었거늘, 어쩜 이렇게 아빠와 엄마의 시간은 어긋나게 흘러가는 걸까. 죄 없는 남편이 미웠고,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남편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나도 너랑 똑같이 대학교육을 받았고, 우리 집 경제를 책임지느라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네가 세 걸음 걸을 때 왜 나는 한 걸음밖에 못 걷는 것이냐 묻고 또 물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엄마’라는 길이 외로워서 왕왕 울었다.
조용한 투쟁을 시작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남편을 미워하기보단 사랑하며 살고 싶었고, 조금 더 지혜로운 방법으로 이 시기를 헤쳐나가고 싶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나를 위해 꼭 연차를 쓰기로 했다. 자기 몸보다 더 큰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딸아이를 보면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잘 다녀오라는 인사 후에는 뒤돌아 나와 성큼성큼 걸었다.
철저하게 나를 아끼고 돌보는 시간이 시작된다. 초록 잎사귀가 무성한 산책길을 걸었고, 고소한 라테를 마셨다. 또 어떤 날은 빨간 원피스를 입고 빙그르르 수줍은 춤도 췄다. 소문난 오일 파스타 먹으러 갔고, 영화관에 가서 <작은아씨들>을 보고 훌쩍대며 울었다. 책을 사고 싶은 날이면 동네 책방에도 찾아간다. 볕이 좋고 꽃이 예쁘면 혼자 빙긋 웃기도 했고, 젊은 엄마 등에 매달린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딱 그만큼만이라도 좋았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단 하루의 자유.
작지만 차곡차곡 쌓인 하루들은 곧 ‘나’이기도 했다. 볕을 쬔 날은 아이에게 다정한 엄마가 되었고, 오일 파스타를 먹은 날에는 맛있는 저녁을 지어주는 아내가 되었다. 가요를 들은 날에는 종일 흥얼거렸고 영화를 본 날에는 내가 바로 영화 속 주인공이었다. 엄마와 아내 그리고 직장인이라는 역할 틈에 숨어있던 나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나를 나답게 해주는 그 모든 것들을 그저 즐겼다. 소소하지만 조용하고 다정한 방식이 나는 참 좋다.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책 ⌜여덟 단어⌟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자신의 길을 무시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게 인생이다. 그러니까 아모르파티. 자기 인생을 사랑해야 한다. 열심히 살다 보면 인생에 어떤 점들이 뿌려질 것이고 의미 없어 보이던 그 점들이 어느 순간 연결돼서 별이 되는 거다. 정해진 빛을 따르려 하지 마라. 우리에겐 오직 각자의 점과 각자의 별이 있을 뿐이다.
책 구절을 손으로 꾹꾹 눌러쓰고, 나지막이 소리 내어 읽어가며 깨닫는다. 나를 아끼고 돌보았던 그 시간들이 언젠가 내 삶을 여물게 할 것임을. 엄마 됨의 고단함, 남편과의 지난한 싸움, 그 속에서 울었던 고된 시간들까지 그 모든 순간은 어느새 별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의미 없는 시간은 어디에도 없고, 나는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가장 나다운 방법으로 말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남편의 파마에 속 쓰리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