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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은 Jun 25. 2022

6.25 전쟁 그 후, 빛나도록 아픈 타향살이

그 기록을 모은 할머니의 유작 '귀향'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2022년 어느 봄날 우리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때였다. 게다가 나는 임신 중이었고 부른 배를 붙잡고 힘껏 슬퍼하지도 못한 채 할머니를 보내드려야 했다. 우리 외할머니의 고향은 북한. 나는 할머니의 발인날에도 할머니의 고향으로 보내는 라디오를 진행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어린 시절 나를 무릎에 앉히고 북한을 떠나오던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전쟁이 난 후 남한으로 피난 오는 비좁은 배 안에서 자꾸 어깨에 기대던 남자가 있었고, 나쁜 사람인가 했는데 배에서 내려보니 그 남자가 죽어 있었다는 이야기는 단골 소재였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죽을 뻔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분단과 전쟁이 가져온 아픔의 생생한 증언을 직접 들으면서도 어린 나는 쉽게 그 아픔을 가늠하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분단을 몸소 체감하며 살았는데도 말이다. 우리 아버지는 늘 전방을 돌며 북한과 대치하는 육군 장교이셨고 나는 초등학교 때 방과 후 활동으로 북한에서 날아온 일명 삐라를 주우며 다닐 정도였으니.



할머니의 일기 중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마주한 그녀의 일기를 보며 펑펑 울었다. 돌아가시고 나서, 어느 정도 철이 든 어른이 되고 나서, 매일 그녀의 고향인 북한으로 송출되는 대북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지금에서야 그녀의 목소리는 내게 절절한 눈물로 다가온다. 


뉴스에는 오늘도 북한이 쏜 미사일 이야기와 이에 대응하는 국제 사회 지도자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분단은 이런 거창한 정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평범함을 꿈꿨던 모든 가족들에게서 평범함을 앗아간, 고향과 가족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나야 했던 그 평범한 사람들의 절규라는 것을 말이다.


살아생전 고향과 그곳의 가족들을 사무치게 그리며 만날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우리 외할머니 고 채규희 여사. 이제는 천국에서 이 땅에서는 지척에 두고 만나지 못했던 어머니와 가족들을 만나셨을 것이다. 이 책은 전쟁이 앗아간 우리 시대의 이야기다. 이제는 하나 둘 세상을 떠나 그마저 잊히고 있는 아픔의 이야기다. 그들은 떠났지만 우리는 이 아픔을 언제까지나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 마주 앉아 이 아픔의 추억을 울며 웃으며 이야기하는 날이 온다. 독백처럼 적어놓은 그녀의 일기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이 아픔을 기억하고 공감해 주길 바란다. 그녀의 인생은 그 아픔 속에서도 충분히 빛나고 아름다웠다고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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