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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피치 큐레이터 Mar 15. 2024

어떤 레토릭(rhetoric)이
명언이 되는가

마거릿 대처, 'The lady's not for turning' 분석


앞선 글에서 영어 연설에서 자주 활용하는 7가지 레토릭을 소개했다. 하지만 이런 레토릭을 사용한 모든 문장이 박수를 받고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구조가 잘 짜인 메시지,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사, 그리고 그 메시지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청중, 이 3요소가 결합할 때 문장이 빛이 나고 길이길이 회자되는 것 같다.  


정치 리더의 연설은 보통 스피치 라이터(speech writer)가 연설문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미국 정치연설은 연설을 잘하는 연사든 아니든 일단 연설문은 레토릭으로 가득 차 있다. 스피치 라이터가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인 레토릭을 사용해 메시지를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결국 연사가 어떻게 연설하느냐에 연설의 완성도가 달렸다. 그 완성도는 청중이 메시지 내용과 연결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잘 알고 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1980년 영국 보수당 연례 전당대회에서 마거릿 대처가 사용한 대조법(Contrast)이다: "You turn if you want, the lady's not for turning." 이 문장은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이 연설에는 'The lady’s not for turning'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메시지에 앞서 이 연설을 하기 전까지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알아야 이 문장이 왜 그렇게 유명해졌는지 알 수 있다. 당시 대처는 여러 가지 중요한 결정을 냉정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소련(현 러시아)에서는 그녀를 철의 여인(The Iron Lady)이라고 불렀고 이 은유적 표현의 여파가 한창일 때였다. 영국 국내에서는 실업률이 치솟았고 경제는 불황이었다. 따라서 이 모든 상황을 유턴(U-turn)해야 한다는 비평이 들끓고 있었다. 


하지만 대처는 이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정책을 바꾸거나 주장을 철회하고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은 연설을 했다. 이 메시지의 핵심 문장이 "You turn if you want, the lady's not for turning"이다. 


다음은 해당 부분의 연사-청중 상호작용과 수사법 분석이다. 메시지 구조를 보면, 핵심 문장이 나오기 전에, "미디어의 캐치프레이즈, 유턴(U-turn)"이라고 언급하며 유턴(U-turn)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겠다고 한다. 헤드라인이다. 그런 다음 대조법으로 짜인 핵심 문장을 말한다. 펀치라인이다. 'You turn'이 유턴 U-turn이 되는 스피치 라이트의 재치가 보인다. 이 부분을 살리기 위해 번역도 '돌아가다'로 하지 않고 유턴으로 해봤다.  



대처:    

To those waiting with bated breath for that favourite media catchphrase, the U-turn  

좋아하는 미디어의 캐치프레이즈, 유턴을 숨죽여 기다리시는 분들께,


I have only one thing to say, 헤드라인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You turn if you want, 펀치라인 / 대조 전반

유턴하고 싶으면 하십시오.   


청중: 웃음 + 박수 


대처:     

the lady's not for turning. 펀치라인 / 대조 후반

여인은 유턴하지 않습니다.


청중: 웃음 + 박수 


https://youtu.be/a1ZbPCBDV6E?si=8HSlzI4PCVWqy9r3



영상을 보면 대조 전반이 끝나고, 청중의 웃음과 박수가 나온다. 대처는 청중의 반응이 잦아들자, 대조 후반을 말한다. 대조 후반이 끝나자 또 청중의 웃음과 박수가 나온다. 


특히 대조 후반부는 로맨틱 코미디 희곡(연극, 영화)의 제목 'The lady’s not for burning'을 'turning'으로 바꾸어서 활용한 것이다. 


청중이 '철의 여인'과 '유턴' 같은 정치적 배경을 모르면 대조 전반에 청중의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청중은 보수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정치인과 당원들이다. 또한 연극 'The lady’s not for burning'을 'turning'으로 바꾸어서 인용한 문화적 맥락을 모르면, 단순한 대조법에 리듬을 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청중이 이런 문화적 배경을 알고 있어서 이 문장에 웃음과 박수가 나왔다. 


이 연설문의 스피치 라이터는 여성인 대처, 그녀의 정치적 위치와 상황, 국내외적 평가, 문화 등 여러 배경을 염두에 두고 여기에 맞는 핵심 메시지를 레토릭으로 구성했다. 스피치 라이터의 재치 있는 문장, 이 문장을 전달하는 그녀의 비언어 요소, 그리고 청중의 반응, 이 모든 것이 합해진 레토릭 종합 예술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실황에서는 이 대조법의 전반과 후반에 각각 청중의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이 연설문을 쓴 스피치 라이터는 청중의 반응이 두 번으로 나누어 나오기보다는 대조 후반이 끝나는 부분에서 폭발적으로 나오게 설계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일반적으로 대조의 전반이 아니라 후반이 끝나는 지점에서 청중의 반응이 나오는 것이 대조법의 특징이다. 영상을 보면 대처는 대조 전반부의 끝에서 억양을 내리며(falling intonation) 1초 정도 포즈(pause, 쉼) 한다. 이런 비언어 요소는 주로 메시지가 끝났을 때 나온다. 이 대조법의 구조로 보나 대처의 비언어 요소로 보나 청중은 이 단계에서 대조 후반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청중은 메시지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박수를 친 것이다. 


대처가 대조 전반부의 끝을 내리는 억양이 아니라 이어가는 억양으로, 또한 포즈를 하지 않고 후반부를 바로 연결했을 경우, 청중은 후반부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반응하게 된다. 전반부에서 이미 감탄한 청중이 후반부가 끝나기를 기다려 폭발적인 반응을 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이상, 마거릿 대처의 사례를 보며 레토릭을 사용한 핵심 메시지가 유명해지는 데는 (1) 레토릭으로 잘 설계된 문장, (2) 그 문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연사, 그리고 (3) 그 메시지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청중, 이 3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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