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과 사유의 찻자리
차,
그것은 너무나 정신적인 것임을 알아버렸기에
이제 음료라 부르기 어색할 지경이다
차를 준비하는 것은
기도 전 몸을 정갈히 하는 일
찻잔에 방울방울 낙하하는 소리들
보이지 않는 차향의 분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기억 속 분노와
억지로 지어낸 걱정이 순간 사라진다
찻잔 위에 투명한 신령함, 차운이 깃들면
차 한 모금 마시고
몸속 세포 하나하나 찻물로 정화시킨다
붉게 달궈졌던 심장이
치익 소리를 내며 진정되고
증발된 향기로운 수증기는
호흡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맑고 투명한 색의 찻물에
창가에 앉은 내 몸도
햇살이 투과될 정도로 투명해지고
세상마저 바이칼 호수처럼 깊어진다
잠시 상상에 몸을 맡겨 호수 위를 날아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모든 존재가 그저 행복하길 축원하고
이내 찻잔으로 돌아온다
고요한 찻잔이 내 마음임을 알고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마신다
2025. 3. 13. 담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