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건 어쩔 수 없어도
책을 출간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입니다. 어머니께서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아들이 쓴 책이니 그 내용이 많이 궁금하셨나 봅니다. 책을 받자마자 단숨에 읽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상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다 문득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책을 받고 나서 지인 분들에게 소개도 하시고 이야기를 나누다, 이게 진짜인지 오타인지 의아한 부분을 발견하셨다는 겁니다. 문제의 부분은 저자 소개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열심히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수천만 원을 들여 강의를 듣고 책을 구입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배우며 직접 삶에서 실험했다. 잘 안됐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그러나 한계를 느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오히려 힘을 뺄수록 열정이 생기고 가벼울수록 일이 풀린다는 걸 깨달았다."
- 이태화, <꿈 따위는 없어도 됩니다>
도대체 뭐가 의아하셨던 걸까요. 그건 '수천만 원'이었습니다. 제게 물으셨습니다. "진짜 수천만 원이야? 수천만 원 아니지? 수백만 원이지?" 진짜 수천만 원을 투자한 건지, 수백만 원인데 잘못 인쇄된 것인지 확신하신 못하셨던 겁니다.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진짜예요." 여전히 의아해하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사실인데 말이죠. 성인이 된 이후 지금껏 가장 많이 투자해온 게 '배움'입니다. 딱히 다른 데 큰돈을 쓰지 않음에도, 쇼핑이나 유흥과 가깝지 않음에도 제 엥겔 지수가 낮은 건 그만큼 배우는 데 투자하는 게 많아서입니다.
공부가 재밌다는 표현을 이제는 이해합니다. 어릴 적엔 이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수험생 시절, 나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제게 공부는 이 악물고 인내해야 하는 의무감의 대상이었습니다. 시험만 끝나면, 대한민국 수험생이란 타이틀에서만 벗어난다면 이제 그만 내려놓고 싶은 게 공부였습니다. 공부보다는 뛰어노는 게 좋았습니다. 공부에서 벗어나 억눌려왔던 자유를 만끽하는 게 제 바람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은 굳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자발적으로 공부합니다. 형태, 주제, 방식 등이 과거와 다를지언정,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을 활용해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하고 정리합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결핍'에 있습니다.
주어진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선생님께 "왜 어린 나이에 벌써 스스로 힘들게 사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한때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다 못해 약간의 염세적인 시각도 있었거든요. 변화. 항상 이 변화라는 단어에 목말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변화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찾게 된 게 흔히 자기계발(Self-help, Self-Development)이라고 불리는 분야였습니다. 제가 바꿀 수 있는 건 저 자신 뿐이지 않겠습니까.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성장시킨 사람들을 보며 동기부여받았습니다. 어떻게 나를 계발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흥미를 잃었던 책을 다시 펼치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서 배우고, 새로운 활동에 도전하며, 교과목 외 다른 수업과 강의를 찾아다니게 된 시작점이 여기입니다. 그게 경제경영서로 확장되었고, 다른 한쪽으로는 인간의 의식까지 탐구하게 됐습니다.
사람의 몸 역시 공부의 대상이었습니다. 호기심을 파고들다 보니 결국 인간의 의식과 몸이 따로 놀지 않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제 경험 때문인 것도 있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부모님께 비교적 건강한 몸을 물려받았습니다. 큰 질병 치레 없이 잘 지내왔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다만 병원에서도 근본적인 치료를 해주지 못하는 증상들을 안고 살았습니다. 예를 들어 알레르기성 비염, 안구 건조증, 두통 등에 심지어 화병까지. 의사 선생님께 듣는 처방은 대동소이했습니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식단 관리 잘하고, 꾸준히 운동하고, 잘 자라. 용기 내서 물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법은 없나요?" 이에 대한 답변 역시 대동소이했습니다. "평생 안고 잘 관리하는 수밖에 없어요." 겪어본 사람은 압니다. 이게 얼마나 답답한 해결책인지. 대증요법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치유력에도 함께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관심 분야를 조금씩 알아갈수록 역설적이게도 제가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평생 공부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하지만 이 점이 제게 과거처럼 의무감과 부담감만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기꺼이 평생 공부할 생각이고, 딱히 의지를 내지 않고도 그냥 자연스럽게 평생 공부하게 될 것임을 압니다. 그건 제 결핍과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공부가 단지 성적을 위해서였다면, 지금의 공부는 제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공부를 통해 제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하는 공부의 결과가 저와 유사한 결핍을 느낀 분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공부의 이유를 아니 공부의 재미를 느끼고, 이게 발전되니 점차 앎 자체가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 느낌의 빈도는 계속 늘어납니다.
공부를 한다고 당장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순식간에 삶이 바뀌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투자한 배움들이 허투루 가지 않음을 압니다. 과거, 큰 생각 없이 행했던 배움들이 졸지에 수차례 강의를 하고, 몇 권의 책을 쓰고, 조언을 구하는 분들에게 답변을 드리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나의 것을 만드는 데, 내 콘텐츠로 일을 하는 데 유용한 자산이 되고요. 대학 전공 이상으로 제 삶에서 큰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말이죠. 앞으로도 배움에 수천만 원 이상을 투자할 것이 뻔합니다. 그 배움을 통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낼 것 역시 뻔합니다. 저를 힘들게 했던 결핍이 오히려 삶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부족한 점, 아쉬운 점, 변했으면 하는 점. 어쩌면 이런 결핍들은 자신을 위한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기회는 무슨, 그저 당사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마음 아프게 하는 삶의 상처로만 보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상처겠죠. 그렇기에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강한 힘이 내면에서부터 올라옵니다. 자기 문제니까요. 당장 내가 이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으니까요. 그만큼 해결책을 찾아낼 가능성 역시 큽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더불어, 자신과 유사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품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죠. 위대한 인물들 중엔 자신 혹은 가족의 문제에서 시작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눈을 돌려 사회를 위한 업적을 쌓은 경우가 많습니다. 위대한 발명품이, 거대한 사업이 이런 식으로 시작되곤 합니다. 혹시 자신이 갖고 있는 결핍이 유난히 크게 느껴지나요. 어쩌면 '영웅의 길'을 걷기 위한 배경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그 길을 기꺼이 선택할 수 있다면 말이죠.
완전하지 못한 결핍은 여전히 아픕니다. 당장 아픈 걸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결핍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달리해볼까요. 그럼 아픔을 딛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커다란 원동력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하늘로부터 세 가지 은혜를 받았다. 가난한 것, 허약한 것, 못 배운 것이 그것이다. 가난했기에 부지런히 일했고, 허약했기에 틈틈이 건강을 돌봐 90세가 넘도록 살아있고, 못 배웠기에 늘 무언가를 배우려고 노력했으니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마쓰시타 고노스케 (마쓰시타 전기 창업주, 일본 3대 경영의 신 중 한 명)
(* 다음은 결핍을 원동력으로 삼을 때 함께 생각해볼 내용으로 글을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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