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의미를 찾느라 고민이라면
제2차 세계 대전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한 정신과 의사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선 개인의 정체성이나 삶의 이력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눈을 마주쳤던 사람이 잠시 후 시체가 되는 일이 허다할 만큼, 기본적인 인권 자체가 무너진 곳이었으니까요. 스물여덟 명이 들어가면 한 명이 살아남을까 말까 하는 악명 높은 곳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맞습니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게 되겠죠.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다만 직업적 특성을 발휘해, 이 와중에도 자기 자신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살피고, 지금의 경험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사색했죠.
그러다 재미난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비해, 특정 기간의 사망률이 급격하게 증가한 겁니다. 1944년 크리스마스부터 1945년 새해까지, 딱 일주일이 그랬죠.
무엇이 원인이었을까요. 이는 노동 조건이 가혹해서도, 식량이 떨어져서도, 기온이나 전염병 등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갖고 있던 '그래도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희망을 가지는 것 자체는 좋았습니다. 희망은 사람에게 힘을 주니까요. 문제는, 크리스마스가 점점 다가오는데도 딱히 풀려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희망은 실망으로, 실망은 절망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지났습니다. 결국 용기를 잃고 저항력이 떨어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럼 반대로, 똑같은 환경 속에서도 더 잘 살아남은 사람들에겐 어떠한 특징이 있었을까요.
이후 나치의 강제수용소 뿐만 아니라 일본과 북한, 북베트남의 포로수용소에 감금되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동일한 결론이 났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 살아야 하는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같은 환경 속에서도 마음을 다잡고 적응하며, 결국 더 잘 살아남았습니다. 삶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더 효과적으로 생존한 겁니다.
앞서 언급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과 심리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심리치료기법을 만들게 되었죠. 그 기법을 '로고테라피'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미 치료'라고도 불리죠. 의사의 이름은 '빅터 프랭클'이고,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낸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니체는 말합니다.
"왜(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그만큼 의미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강합니다. 반대로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삶, 존재, 일 등에서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도대체 삶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게 되었죠.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던지는 질문이지만, 대부분 딱히 답을 구하지 못한다는 거죠.
이런저런 탐구를 하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삶이란 가능성을 실현하는 경험의 장이다"
네, 그때부터 전 삶의 의미를 '가능성을 실현하는 경험의 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좀 더 자기계발적인 측면에서 풀이하자면, 각자 갖고 있는 고유의 잠재력을 발휘하며 창조적인 삶을 살고, 이를 경험하며 성장하는 거죠.
그러자 이런 질문이 떠오르더군요.
'그렇게 살고는 있어?'
뭐, 이에 대한 답변은 각자 다를 겁니다. 다만 마치 빅터 프랭클이 그랬듯, 저 역시 제 자신은 물론 사람들을 관찰하며, 또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됐습니다.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말이죠. 내가 아닌 남의 인생을 사느라, 사회가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기준에 억지로 자신을 맞추느라 삶에 흥미를 잃고 진이 빠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말이죠.
사실, 자기다운 삶이 가장 창조적인 삶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가장 풍부하게 존재하며, 밀도 있는 경험을 하고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제가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영상을 찍어 올리고 그 외 컨텐츠를 만드는 등, 여러 활동의 뒤에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 이런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저 역시 자기답게 삶의 의미와 가능성을 실현해 갈 것이고요.
여기까지가 제가 생각하는 삶의 의미입니다. '도대체 나는 왜 살아가는 걸까'로 고민인 분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깊게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삶이란 가능성을 실현하는 경험의 장이다." 이게 과연 정답일까요?
사실, 제가 스스로 이런 답을 내놓기 전에 했던 일이 있습니다. 온갖 책들을 뒤졌습니다. 옛 성현들은 뭐라고 말했나 찾아봤고요.
뭐, 인생 선배들의 노하우를 쏙쏙 뽑아 쓰는 건 효율적으로 살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주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참고하는 정도가 아니라, 계속 그들로부터 정답을 구하는 겁니다.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계속 외부에서 답을 구하는 거죠.
그렇게 구한 답은, 아무리 멋져 보이고 지혜로워 보인들 결코 내 의미가 될 수 없습니다. 가슴에 울림이 없는 '좋은 말'에 불과하죠.
따라서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로 고민이라면, 답을 구하기에 앞서 한 번쯤은 질문 자체를 바꿔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로 말이죠.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창조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실제로 제가 '삶의 의미'에 대해 저만의 답을 내놓은 건,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는 행위를 멈추고 나서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땐 그때 가서 또 바꾸면 됩니다. 이 과정 자체가 자기다운 삶입니다. 그러니 좀 더 자신을 신뢰하고 주체적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설령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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