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다 보면,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저건 기초 단계인데, 저게 전부가 아닌데,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게 아닌데, 왜 괜히 돌아가는 걸까..." 분명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게 측은지심에서든, 내 지식과 경험을 뽐내고 싶어서든 어떤 동기에서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보며 누군가는 똑같은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초등학생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중학생을 보며 고등학생이 안타까움을 느끼듯 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성인의 입장에선 "학생"들의 아웅다웅이고, 그마저도 누군가에겐 몸만 큰 철부지 어른의 교만함일 수 있다. 이 비교엔 끝이 없다.
중학생이 초등학생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더 넓은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건 초등학생 시절의 경험이 있어서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아무리 세상에 이미 중학생-고등학생-학사-석사-박사 이상의 앎이 존재한들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초등학생에게 대학교 전공책을 가르치지 않듯, 각자의 진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생에게 최신의 논문을 제시하는 게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만드는 일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예 흥미를 잃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는 일일 수도 있다. 나의 도움이 진짜 도움이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후배가 분명 잘못된 길로 걸어가는 게 보일 수 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측은지심이 발동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쩌면, 그 잘못된 선택조차 더 넓은 관점에서 봤을 땐 그 후배의 진정한 성장을 위한 여정일지도 모른다. 아직 나조차 알지 못하는 더 넓은 관점에서 말이다.
따라서 진정 그 후배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간섭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한 번쯤은 또 다른 관점과 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 그다음은 후배가 자신의 길을 부단히 나아가길 응원하는 것, 만약 스스로 조언을 구한다면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서 의견을 건네주는 것, 그리고 어떠한 선택을 내리든 되돌릴 수 없는 선택만은 아니길 희망해 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후배와 상관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삶과 생태계를 잘 가꿔가는 것까지.
이게 타인의 삶에 간섭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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