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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작가 Aug 13. 2022

3. 어쩌면 내 운명일지도 모른다


  입대하기 전 내게는 두려움이 있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떨어지는 것은 기본이고, 그 외 20대 초반의 2년이라는 귀한 시간을 군대에서 보낸 뒤 바보가 되어 돌아오는 거였다.



  사람들이 말했다. 군대를 다녀오면 바보가 된다고. 초중고를 거치며 그렇게 애써 공부했던 내용들을 다 잊어버리고 머리는 굳고 오히려 이상한 군대 문화만 배워 오고. 그렇게 완전히 제로(0), 아니 오히려 마이너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전역하면 난 대학 3학년으로 복학해야 했다. 공학을 전공했는데, 공대 특성상 3학년 수업이 가장 어려웠다. 게다가 1~2학년에 망쳐 놓은 학점도 메꿔야 했고. 스펙도 잔뜩 쌓아서 취업을 대비해야 했다. 가진 게 없는 나로선, 어쩌면 사회에 진출하기 바로 전인 이 나이대가 역량을 기르고 경쟁력을 쌓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게다가 신체적으로도 가장 건강할 때 아닌가.



  그렇다고 군대를 피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피할 방법도 없다. 대신 어차피 해야 할 군 생활이라면 최대한 내게 이롭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 선택은 “카투사”였다.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카투사를 생각한 이유는 딱 2가지다. 영어와 개인 시간.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 가장 아쉬운 점이 영어였기에, 카투사에 가기라도 하면 설령 군대에서 욕을 배워 오더라도 일단 영어로는 배워올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리고 개인 시간도 중요했는데, 비록 2년이라는 기간 동안 군 복무를 할 수밖에 없더라도 최대한 개인 시간을 확보해 자기계발에 투자하고 싶었다. 군대인 이상 어딜 가더라도 만족할 만큼 개인 시간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카투사는 다른 부대에 비해 비교적 개인 시간을 보장해 준다고 했다. 카투사에 갈 수만 있다면, 2년 후 플러스(+)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바보가 되어 오진 않을 것이다.



  카투사에 지원하려면 일단 어학 점수 요건을 충족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토익 700점이었다. 나에게는 아직 어학 점수가 없었다. 부랴부랴 테스트를 해보니 기준 점수에 몇 백점이 모자랐다. 



  부랴부랴 처음으로 토익 문제집을 샀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모의고사도 보며 공부했다. 당연히 단번에 영어 실력이 늘진 않았다. 대신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요령이라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수능 공부로 인해 흥미를 잃은 영어지만, 당장 내 군 문제가 걸린 일이기에 어떻게든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TV 속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지원자의 사연이 평가에 좋은 점수를 주기도 한다. 토익은 달랐다. 군 문제는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문제일 뿐, 점수를 높이는 효과는 없었다. 계속해서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영어에 대한 자신감은 떨어졌고 안 그래도 멀었던 거리감은 더 멀어졌다.



  그 후 억지로나마 끌고 갔던 토익 공부를 중단했다. 수능 이후 억지 공부에 이미 지쳐버린 나다. 카투사가 내 길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미 지원해 놓은 토익 시험은 일단 보기로 했다. 응시료가 아깝다.



  시험 전날 밤을 새웠다. 사실 억지 공부로나마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전날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셨다. 그대로 잠들면 아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일단 밤을 새우고 시험장으로 갔다.



  마음이 편했다. 이미 내려놓은 자는 마음이 편하다.



  끝내 점수가 나왔다. 



  705점… 응? 



  놀랍게도 딱 5점 차이로 카투사 지원 기준 점수를 달성했다. 일정 상 내가 본 토익 시험이 카투사 지원에 필요한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시험이었다.



  '될 일은 된다! 어쩌면 카투사가 내 운명일지도 모른다!' 



  성적표를 보고 안도했던 이때만 해도 나는 아직 몰랐다. 내년부터 시작될 마이 리얼 군대 라이프 어느 정도로 꼬일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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