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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작가 Aug 16. 2022

5. 그의 두 마디에 내 운명이 정해졌다


 "정신 안 차려? 빨리- 빨리- 뛰어!!!"



 살갑진 않아도 최소한 악의는 없어 보였던 사람들이 돌변했다. 건물 모퉁이를 지나 가족이나 친구, 즉 외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순간, 부대 간부들과 내려쓴 방탄 헬멧으로 눈을 반쯤 가린 조교들은 말 안 듣는 양을 울타리로 몰아넣듯 그렇게 우리를 다그쳤다.



  여기는 의정부. 머리를 깎고 처음 들어간 곳은 306보충대였다. 온 김에 의정부 부대찌개를 먹고 들어왔든 전날 밤 거하게 뭘 먹었든 훈련병들이 사회에서 먹은 음식을 엉덩이 밖으로 내보낼, 어쩌면 누군가는 다 내보내지도 못할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잠시 머무는 곳이다. 비움이 있으면 채움이 있는 법. 자유로웠던 사회의 흔적을 내보내는 대신, 훈련병들이 각 사단 신병교육대에 가기 전에 미리 군인 냄새를 잔뜩 입혀 놓는 곳이었다. 오랜 기간 군인들의 대표적인 입영 관문이었으나, 2014년을 끝으로 해체됐다.



  평소 입지도 않던 칙칙한 메리야스와 삼각팬티를 받아 들고, 입고 온 겨울 외투를 소포 박스에 담아내던 당시 나로선 306보충대가 앞으로 사라질 거라곤 예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내 신경은 오로지 ‘왜 화장실도 제때 보내주지 않는가’와 ‘그래서 난 앞으로 어느 부대로 가게 되는가’였다.



  밥 먹고 오줌 누고 오기 중요. 밑줄. (실제 수첩에 적어놓은 내용)



  화장실 문제는 눈치껏 어찌어찌 해결해가고 있었다만 자대 배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각종 군복과 용품을 받고 몇몇 검사를 하던 도중 틈틈이 누군가 차출되어 나가곤 했다. JSA, 구대장(보충대 조교) 등 각종 특기병들이었다. 무슨 기준에서 뽑혀 나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막상 가서는 어떤 생활을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내심 차출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게 2년 후 특별히 남는 게 있는 역할일지, 다들 그토록 바라는 꿀 보직 일지, 그냥 특급 노예 일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어느새 개성이 사라지고 있는 반 빡빡이들은 인형 뽑기 기계 속 인형들처럼 움직이라는 대로 움직이고 가만히 있으라는 대로 가만히 있으며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집게는 많이 움직이지 않았고 설령 움직이더라도 소수의 누군가만 데려갈 뿐이었다. 남겨진 이들은 그저 컴퓨터가 랜덤하게 뽑아내는 대로 흘러갈 터.



  몸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단순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사실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내심 차출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건, 일찍 차출해가는 보직일수록 편할 보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이게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런 이야기는 입대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함정(?)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특공대 같은 곳이다. 당연히 군 내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고, 다녀온 분들은 그만큼 자부심도 엄청나다. 이런 힘든 임무를 해내시는 분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안전하게 돌아가지 않나. 그렇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건 일단 힘들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훈련병은 그 힘듦이 내 힘듦이 되지는 않길 바라고 있었다.



  입대하기 전, 내 군대 보직을 예상하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는 크게 2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일반 소총수로 입대하긴 했지만 건강한 신체 등급과 몇몇 이유들로 인해 일찌감치 특공대나 조교 같은 곳으로 차출될 수 있다는 의견과, 웬만하면 행정병으로 빼돌려 일을 시킬 거란 의견이었다. 대신 선 경험자들의 실질적인 조언은 대체로 비슷했는데, 함부로 모든 카드를 내보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전공이나 자격증, 특기, 그 외 특이사항과 심지어 보이는 이미지까지. 전략적으로 보여줄 건 보여주고 숨길 건 숨겨야 원하는 보직에 배치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한 번쯤 생각해봤다.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게 앞으로 있을 내 보직과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여전히 명확한 답을 알 수 없었던 어느 시간, 까칠한 간부가 걸어오더니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그리고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잔뜩 긴장 중인 보충병 무리를 향해 말했다.



“운전면허증 있는 사람 우측으로.”


스르륵-


“시력 얼마 이상 앞으로.”


스르륵-


“운전병!”



 그냥 그렇게 난 운전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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