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지만 강의를 했다

게다가 OO 특강까지

by 이태화 작가


(지난 화에 이어)



A : 나 강의해본 경험 없잖아?

B : 응. 맞아. 학교에서 발표해본 적은 있지만 강의해본 경험은 없어. 그런데 경험자들도 분명 다 처음은 있는 거잖아. 처음 없는 경험자가 세상에 어딨어?

A : 내 실력으로 될까?

B : 어차피 나보다 잘하는 분들은 오지 않을 거야. 나보다 정보와 경험이 없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돼.

A : 너 남 앞에서 말하는 거 싫어하잖아

B : 응. 그렇긴 하지.



말을 잘하고 재밌게 하는 능력은 둘째 치고, 나는 아예 말 자체를 잘 안 하던 아이였다. 어릴 적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받은 이유 중 하나도 과묵이었다. 지금도 하루에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내는 날이 있다. 기껏 해봤자 "안녕하세요, 한 명이요, 감사합니다." 정도일까. 점심시간, 식당에서 하는 최소한의 언어다. 그런 내가 남 앞에서 강의라니.



분명히 지금까지의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낯섦을 배제하기 시작하면 어찌 될까. 편하긴 할 것이다. 대신 항상 과거에 살았던 방식 그대로 살아야만 한다. 그럴 수는 없다.



일단 날짜부터 정했다. 커리큘럼이 완성되기 전에 날짜부터 정했다. 아예 장소까지 먼저 예약했다. 그래야 스스로 도망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블로그에 공지글을 올렸다. 블로그 강의를 하겠다고. 참가자를 모집한다고. 큰 일이다. 저질러버렸다. 이제 진짜 도망갈 수가 없다.



용기를 내서 시작한 일이지만 사실 내 머릿속엔 이 생각이 가득했다. '신청하는 사람이 있을까?'



솔직히 확신이 없었다. 전문 교육 기관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니고, 전문 강사도 아니다. 아직 대학생일 뿐이며 강의 경력도 없다. 이런 사람에게 누군가 강의를 듣겠다고 찾아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않나. 나조차도 의심이 드는 상태였다.






0. 1. 3. 10. 25...



이럴 수가. 내 염려와 상관없이 조회수가 하나씩 늘어났다. 남들 보라고 글을 써놓고는 남들이 본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채용 결과를 확인할 때보다 더 많은 새로고침을 눌렀다. 이러다 하루 종일 새로고침만 누를 듯해, 인터넷 창을 꺼버리고 강의안을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실제로 이 강의안을 쓰게 될지 안 될지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쩌면 만들기만 하고 끝날 수도 있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 잠시 쉴 겸 인터넷을 확인했다. 응? 못 보던 숫자가 생겼다. 와우. 내가 올린 글에 댓글이 달렸다. 그것도 스팸이 아닌 문의글! '어떻게 문의할 수가 있지! 설마 신청하시는 거 아냐?'



신기한 마음으로 답변을 드렸다. 앗! 댓글이 또 달렸다. 이번엔 진짜 신청자였다! 또 댓글이 달렸다. 신청자가 늘어났다. 어떻게 신청할 수가 있지!



내가 사람을 모아놓고서는 사람이 모이는 현상에 내가 제일 신기해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래도 신기한 걸 어쩌나. 이런 일이 처음이다. 하지만 초보자의 속내를 들킬 수는 없다. 오시는 분들 입장에선 내가 초보인 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 나는 참가자가 모이는 게 당연한 것 마냥 친절하게 강의 안내를 드렸고 내 인생 첫 강의를 준비했다. 떨리는 마음에 강의 한 시간 전까지 강의자료를 업데이트하고 스피치 연습을 한 건 비밀이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일까’

‘정신 차려! 이거 지금 현실이야.’



예약해둔 장소로 걸어가는 와중에도,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와중에도 여전히 신기했다. 내가 사람들을 모아서, 그것도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모르는 분들을 모시고 강의를 했다는 게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첫 강의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신 덕분에 이후 8기까지 수업을 이어갔고 연말에는 통합 모임을 열기도 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이 경험 덕분에 기업에 특강까지 나가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담당자님께서 내게 말했다. "태화씨가 블로그에 강의를 연다고 알리지 않았다면 저희가 강의를 요청하게 되었을까요. 스스로 블로그 강의를 한다는 글을 올렸기에, 블로그 강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이렇게 강의를 요청드릴 수 있었던 거예요." 역시 스스로 움직이는 자에게 기회가 열린다.



매번 주어진 틀 안에서 어떻게 하면 우등생이 될까를 고민했다. 그 노력을 통해 분명 배우고 성장한 게 있다. 다만 한 번쯤은 그 틀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사람의 노력이 진정 값진 건, 틀 안에서 견고히 자리를 잡는 걸 넘어 그 틀을 넓히고 때로는 깨부술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주어진 커리큘럼만을 따라야 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 내향적이라 남 앞에 설 수 없다는 제한된 믿음에서 벗어나자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블로그 강의 경험으로 인해 나는 새로운 믿음을 한 가지 얻었다.



답습했던 과거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나는 내 생각보다 더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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