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이면 꽤 많이 했네
학교에는 커리큘럼이 있다. 어느 시기에 어떤 과목을 배워 어떤 학습 성과를 달성할지 체계적으로 정해놓은 교육 계획이다.
입학하는 순간 모든 학생은 주어진 커리큘럼 안에서 경쟁한다. 경쟁할 의도로 들어온 건 아니지만 자연스레 경쟁 구조 안에 놓여져 달리라는 대로 달린다. 시험 점수로 순위가 매겨지고, 점수가 높은 학생은 모범생, 반대인 경우엔 부족한 학생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커리큘럼은 학교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사회 전반에 엄연히 존재한다. 출신 학교, 직장, 집, 연봉, 자동차, 명품 가방... 문서화되지 않았을 뿐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말이다.
주어진 커리큘럼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제시되는 과제들을 성실히 수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체로 모범생이란 가면을 선사받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초중고, 대학생까지 16년을 살았다. 군대와 유치원을 빼고도 그렇다.
하지만 그 16년의 커리큘럼 끝에 내가 지금 만난 건 취업 실패였다. 의구심이 들었다. 이게 맞는 걸까.
처음엔 주어진 커리큘럼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 나를 의심했다. 다음은 커리큘럼 내용에 잘못이 있지 않았을까를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의구심은 방향은 커리큘럼과 나라는 존재가 갖는 관계였다.
'나는 왜 항상 주어진 커리큘럼을 따르기만 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 만들어놓은 커리큘럼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써야만 하는가.'
조금은 오기가 생겼다. '이제는 틀을 깨고 나만의 규칙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래서 이번엔 내가 직접 커리큘럼을 만들기로 했다. 커리큘럼으로 비유되는 무언가가 아니라 작지만 진짜 커리큘럼. 즉, 수업을 열고 사람들을 모아서 내가 직접 강의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주제로 강의를 하지.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대학 4년 전공 수업도, 고등학생 과외도 아니었다. "블로그." 어디서 체계적으로 배운 적도 없었고 딱히 학원이랄 것도 보이지 않았던 블로그였다.
군 전역 후 블로그를 시작했다. 특별한 주제나 전문성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내 생각과 이야기를 남기다 보면 스스로 동기부여하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아 만들었다. 그렇게 블로그를 시작한 지 몇 년이 흘렀고, 재미를 붙이고 꾸준히 운영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경험과 노하우가 쌓였다. 안 되는 영어로 해외 사이트까지 뒤져가며 연구하고 실험했으니 말이다. 블로그라면 내가 뭐 하나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름과 동시에 내면의 조심스러운 자아는 바로 반기를 들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