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이거다 싶은 직무, 기업이 없다면

취업재수생의 재도전기

by 이태화 작가


여전히 명확한 꿈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기 밥벌이는 하고 볼 일이다. 어쨌든 나는 여전히 취업준비생이었으니,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일단 취업이 목표다.



특별히 원하는 기업과 직무는 없었다. 대신 나만의 기준을 세웠다. 기업이 기준을 세워 지원자들을 필터링하듯, 나도 기준을 세워 기업을 필터링했다. 기업 문화, 업무 방식, 향후 커리어, 직원수, 매출 규모, 시장 점유율, 근무 시간, 근무지, 복지 제도... 내가 아는 선에서 기업을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나열했다.



그중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무엇인가. 대중의 판단, 타인의 시선은 둘째치고 내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는가. 내 우선순위를 모르는 한 다수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걸 그렇구나 하며 그대로 따라갈 게 뻔했다. 그게 진짜 나에게도 중요한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한 채 말이다.



만약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모르겠다면, 반대로 내가 싫어하는 것, 피했으면 하는 것을 찾아보면 된다. 그것 역시 어떠한 의미에서 나에게 중요성이 높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것을 보면, 그와 쌍으로 엮인 반대편의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볼 수도 있다. 적어도 나에게 결격 사유가 있는 것들을 하나씩 소거해가면서 최악은 피할 수 있다. 그다음은 적응의 영역이고.



이렇게 몇 가지 기준을 세우고 필터링을 한다고 단번에 천직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내가 내릴 수 있는 선택지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데는 도움이 된다. 아니, 최선이 아닌 차선을 고를지언정 그 안에서 내게 맞는 부분과 아닌 부분을 의식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만큼 후회는 줄어든다. 어물쩍 끌려다니는 것보다 말이다.



비록 어영부영 보내기는 했었지만, 한 번의 공채 경험이 있다는 건 분명 커다란 자산이었다. 처음과 달리 기업의 전체 채용 일정과 전형이 좀 더 명확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만의 기준을 세워 놓은 덕분에, 수많은 기업과 직무 정보에 휩싸여 길을 잃는 일도 없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했고, 언제까지 무엇을 하고 어느 곳에 지원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계획은 세웠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자유로웠다.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전략적으로 준비해서일까. 확실히 지난번에 비해 시작이 좋았다. 서류 합격률이 높아졌다. 비록 그렇게 합격한 기업들의 인적성 시험 다수를 유럽 탐방으로 포기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여러 군데 합격하더라도 내다 다닐 곳은 단 한 곳이지 않은가. 몇 승을 거뒀다는 전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다니게 될 곳이라면 어떻게든 다니게 되지 않을까란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바닥을 쳐보니 확실히 간이 커졌다.



다만 한 가지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이후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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