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는 "일계장"이라는 게 있다. 정식 용어는 아닐 것이다. 처음에 전투복 2벌을 받으면 하나를 일계장으로 지정한다. 부대 밖을 나갈 때나 행사 때 입을 깔끔한 전투복이다. 옷 자체는 똑같다. 단지 평소에는 잘 입지 않고 다림질까지 해가면서 보관하기에, 덜 상한 전투복이 될 뿐이다. (과거엔 그런 깔끔한 피복을 모아두는 옷장을 일계장이라고 불렀다는데. 이건 나도 따로 찾아보고서야 알았다.)
세트로 "일계화"가 있다. 같은 개념을 지닌 전투화다. 부대나 사람에 따라 이들을 "A급"이라고도 부른다. A급 전투복, A급 전투화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살면서 한 번쯤 휴가 나온 지인을 만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냥 어둠칙칙해 보이겠지만 그 사람은 나름 최고 공들여 입은 복장으로 나타난 것이다. 소개팅이라도 나가는 수준이다. (솔직히 나는 소개팅 나갈 때도 이렇게 다려 입진 않았다.)
그래도 군인들이여,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 그렇게 애씀을 누군가는 알아본다. 하필 그게 같은 군인들 뿐이라서 문제지만 말이다. 남들에겐 모두 그냥 칙칙한 군인이겠지만 군인끼리는 상대가 얼마나 전투화에 광을 잘 냈는지, 전투복 주름이 칼 같이 아름답게 떨어졌는지가 보인다.
나는 보았다. 적재함에 먼저 앉아 있던 군인 아저씨들은 모두 A급으로 깔끔하게 맞춰 입고 있었다는 걸. 부대 밖으로 사람을 보낼 땐 이렇게나 신경을 쓴다. 참고로 내가 신병 훈련소에 있을 땐 행군 훈련을 하는 데도 A급으로 갈아입고 나오라고 했다. 도중에 민간인들 많이 지나친다고 말이다. 이 정도면 애절한 짝사랑이다. 상대는 신경도 안 쓰는 데 때 빼고 광 내고.
다른 아저씨들은 아저씨들이다. 그런데 부랴부랴 트럭에 올라탄 나는 어떤가. 방금 전까지 탄띠를 차고 소총을 들고, 어쩌면 다시 한번 멧돼지 가족을 만날지 모를 탄약고 초소에서 경계 근무를 했다. 내 전투복엔 흙먼지와 차량 기름때가 남아 있고, 언제든 노동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넣어둔 작업용 목장갑들 덕에 주머니는 볼록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지? 얼굴은 고정이고 그렇다면 생기라도 가득해야 할 텐데, 내 얼굴엔 생기 대신 허기가 가득했다. 그렇다. 잊지 말자. 취사장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던 근무자용 밥을. 나는 그들을 멀리서나마 바라볼 틈도 없이 그대로 나와야 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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