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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작가 Nov 01. 2022

28. 내가 '읍내'로 나올 수 있었던 이유

여기선 읍내가 핫플레이스


 삼거리 대로변에서 차는 멈췄다. 인솔 간부와 우리는 여기서 민간 버스를 타고 번화가로 향했다. 그래 봤자 읍내지만 여기선 읍내가 핫플레이스다.



 밥도 못 먹은 상태로 급하게 읍내까지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도서관이었다. 읍내에 있는 작지만 깔끔하고 이쁜 도서관. 알고 보니 나는 지금 어디 연행되는 게 아니라 특별 외출을 나온 상태였다. 부대에서 각 포대(중대) 별로 한 명씩 뽑아 민간 도서관으로 보내주는 특별한 일이 생겼고, 우리 포대에선 내가 나가는 것으로 선정된 것이다.



 내가 선정던 건 아무래도 우리 포대에서 내가 제일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이등병 때부터 연등까지 신청해가며 책을 읽었고, 휴가를 나가서도 책을 구입해서 들고 왔다.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을 땐 책을 읽었고, 그마저도 할 수 없을 땐 수첩에 메모를 했다. 그러니 '책'을 이야기했을 때 내가 언급되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고로 외부에서 책을 가져오면 보안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보안적합성 승인을 받으면 책에 '검토필'이란 도장이 찍힌다. 그 흔적이 담긴 책 일부가 아직 내 책장에 남아 있다.)



 우리가 간 도서관은 대학교 도서관이나 서울의 교보문고 등에 비하면 아담한 동네 도서관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별천지였다.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는 게 신기하고, 그런 책들이 일괄된 기준으로 깔끔하게 분류되어 있는 것도 신기하고, 그걸 이용하고 있는 민간인들도 신기하고, 여기에 아침밥도 못 먹고 더러운 전투복을 입은 채 앉아 있는 나도 신기하고.



 어쨌든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관심 분야의 책들을 여러 권 들과 와서는 빠르게 훑었다. 어릴 적 맛있는 음식은 아껴 먹을 때가 있었는데, 만약 고급 뷔페에 데려가 30분 만에 먹고 나오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끼고 뭐고 신경 쓸 틈도 없이 부랴부랴 입 안에 넣었을 것이다. 지금이 그랬다. 한 글자 한 글자 음미할 틈도 없이 그저 맛있는 책들을 다양하게 체험하는 데 전념했다. 어차피 이 공간을 벗어날 수도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얼마 후 제한 시간이 끝났고, 우린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부랴부랴 부대 밖으로 나왔지만 우린 금세 다시 부대로 복귀해야 했다. 그래도 참 감사했던 게, 당시 인솔간부는 우리를 중국집에 데려가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시켜서 먹였다. 허허허. 미안하다. 취사장에 있던 근무자용 밥은 잊은 지 오래다. 같이 근무했던 선임이 알아서 처리했겠지 뭐.



 마음의 양식에 이어 위장이 일용할 양식까지. 짧지만 강렬했던 날이다. 이래서 평소에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이 밥 먹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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