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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Mar 31. 2023

답이 없구나

시행착오의 연속


준비할 수 없는 준비기간


  학교의 장점이자 단점은 교육을 ‘시켜준다’는 것이다. 장점은 내가 힘들게 찾아다니며 배우지 않아도 필요한 지식을 알아서 넣어준다는 것이고, 단점은 사회에서 필요한 대부분의 능력은 경험에서 오는데 스스로 부딪혀 배워볼 기회가 별로 없으니 수동적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경험은 둘째치고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걸 배우기도 벅차다. (우리나라는 어려운걸 일찍부터 가르쳐주기로 유명하니 지극히 정상이다) 열심히 따라가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보니 주체적인 사고를 하기 어렵다. 물론 학교 안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으로 대안을 만들어가는 훌륭한 분들이 있고, 그 와중에 지식과 경험을 알아서 배우고 나오는 뛰어난 학생들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간신히 쫓아가다가 무사히 졸업한다.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해볼 여유는 별로 없다.



뭐 해 와서 빨리해


  반면에 사회에서는 모두 알아서 해야 한다. 보통 일을 처음 경험해 보는 직장(아르바이트)에서는 처음 나간 그 순간부터 알아서 자기 몫을 하길 바란다. 준비할 시간은 주지 않는다. 저 좀 가르쳐주세요.. 하고 있으면 눈총을 받기 십상이고 “사회는 학교가 아니다”, “인생은 실전이다“를 시전 하는 사람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가르쳐주면 더 빨리 적응할 수 있고, 자기도 처음에 힘들었으면서 꼭 그렇게 기를 죽이는 사람들이 있지만 스스로 역할을 찾아내는 능력은 어떤 식으로든 기르긴 해야 한다. 스무 살, 친구 소개로 나간 이벤트 회사의 축제 진행하는 일에서 출근하자마자 들은 말은 “뭐 해 와서 빨리해!”였다. 아직 인사도 안 했는데 초면에 갑자기 뭘 빨리 하라는 건지.. 난생처음 느껴보는 당황스러움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지금까지 사회생활은 그 당황스러운 경험의 반복이었다.



답이 없는 현재, 희박한 확률의 미래


  준비 여부와는 상관없이 때가 되면 세상으로 밀려나간다. 팍팍하게 사는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게 죄스러워지거나 당장 생활비가 떨어져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심정으로 세상에 뛰어든다. 젊은 패기로 뭘 하는 건 아니다. 긴 학교생활을 버티느라 진이 다 빠진 상태로 무슨 힘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겠는가. 얼마 없는 힘을 쥐어짜서 시작하는 것이다. 낯설고 두렵지만 시작하긴 해야 하는 그 상황. 참 버겁고 힘들다. 그래도 울음을 머금고 용기 내서 사회로 뛰어든다. 다들 그렇게 시작한다. 문제는 등 떠밀려 뛰어든 세상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구인구직 정보를 열심히 찾다 보면 결국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맨몸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이다.


1. 누구나 할 수 있고 모두가 하고 싶어 하는 일(경쟁이 심하고 돈은 적게 준다. 또는 숨어있다.)


2.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두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돈은 좀 더 벌지만 힘들고 위험하다)


3. 누구나 할 수 있는데 돈도 많이 주는 일(무서운 곳이다)


  보통은 첫 번째, 누구나 할 수 있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간신히 찾아서 돈을 벌기 시작한다. 고맙게도 최저임금이란 게 있지만 객지에서 홀로 숙식을 모두 해결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몇 달을 생활해 보면 바로 알게 된다. 이렇게는 답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남들 안 하는 일을 찾거나 처우도 좋고 돈도 잘 주는 일을 희박한 확률로 다시 준비할 수밖에 없다. 현실은 답이 없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사람답게만이라도 살고 싶은데 그것조차 가능성이 매우 낮다니 얼마나 답답한가. 너무 비관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현실은 정말 답이 없어 보였다.



시행착오 : 남의 차에 타는 순간


늘 거래에서 선택지가 많은 쪽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어있다. 반면에 선택지가 없는 사람은 끌려갈 수밖에 없다. 뭐라도 해보자고 나간 새벽 인력사무소에서 이 일방적인 거래에 내가 올라타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그야말로 ‘너 말고도 줄 서있어’할 때 그 줄에 나도 서있고, 운 좋게 선택되어 차에 올라탔다. 20년도 넘은 듯한 승합차에 끼어 타고 털털거리며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자니 내가 얼마나 흔한 자원인지 실감했다. 누군가는 계획을 가지고 사람을 구했을 것이고, 나는 그 사람 생각의 일부로 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나를 필요로 한 사람과 내 목표가 같다면 시키는 일을 하는 게 내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는 그저 남의 생각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했던 일들은 대부분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수단으로 소모된 시간이었다. 몇 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정신없이 살았지만 남은 거라고는 닳아버린 몸과 흰머리뿐이었다. 그동안 나는 내 능력과 돈을 주고받는 거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돈과 바꾸고 있던 건 짧고 소중한 내 젊음이었다.


(설명을 위해 개인적인 경험을 적었지만 일용직 또한 세상이 원활하게 굴러가는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로 귀한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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