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이지만은 않은 결정과 그 배경들
약간은 급작스레 첫 아이가 중학교 가기 전에 일단은 떠난다는 것만 생각하고 뭐에 떠밀린 것처럼 결정한 이민이라 핀란드 사람인 남편이 용감하게 아이만 셋 데리고 먼저 오게 되었다.
언젠가는 와서 사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결혼부터 계속 한국에 살았던지라 생긴 건 달라도 아이들 역시 토종 한국인이었고, 남편 또한 한국에서 자리 잡고 그냥저냥 맞벌이 가정으로 별 불만 없이 살아 왔어서 사실 이민 생각은 한국 생활의 편리함 뒤로 쏙 사라져 있었다.
그러다가 5학년이 되면서 첫 아이가 수학학원과 영어학습지를 하기 시작했고, 나날이 숙제 때문에 갈등은 쌓여가고, 그러면서 6학년에 올라가며 사춘기까지 오니 문닫고 방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 더 이상 이렇게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한 경쟁, 돈 위주의 사고, 축 늘어진 청소년들의 학원 생활 이런 식으로는 아이들에게 행복이란 없겠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파랑새가 핀란드에 있을 듯한 착각아닌 착각인듯 착각같은 걸 하게 되었다. 그래서 불과 3-4개월만에 결정을 내리고 우리집에 오시던 이모님께도 말씀드리고, 부모님께도 말씀드리고, 슬슬 학원에도 말하게 되면서 정리를 급하게 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남자가 애 셋을 건사하는 것에도 놀라워 하지만 애 엄마가 당장 안 따라 가고 (혹은 3개월 정도의 짧은 시간 후에 후다닥 따라가지 않고) 편하게 혼자의 삶을 즐기며^^ 기러기 엄마 생활을 하는 것을 의아해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손가락만 빨며 공도동망 할 수는 없으니 그렇게.. 그렇게 결정하게 되었다.
아직은 서울과 에스포 두 곳에 임시로 살고 있는 셈이라 서울에는 40평대 아파트에 나 혼자 많은 짐과 살고 있고, 에스포에는 방 2개 짜리 20평대 아파트를 얻어 남편이 아이들을 건사하며 꽁냥꽁냥하게 살고 있다. 두 집 살림을 하다 보니 당장 필요한 것만 사더래도 어찌 되었던 에스포에도 이미 침대며 소파며 필요한 물건들을 다 구비하게 되었고, 서울 40평대 아파트에 꽉꽉 들어차 있는 짐들은 온전히 나의 몫으로 정리할 건 정리하고 내년에 이삿짐을 보낼 것은 보내는 식으로 가닥이 잡혀간다.
초반에는 순진하게도 십년 이상 쓴 한국 물건들은 값나가는 것도 없으니 다 버리고 필요한 것만 우체국 배편으로 보낸다는 계획으로 10+ 박스 이상의 물건을 보냈으나 그렇게 많이 보내도 전혀 티도 안나는 짐들과, 버리기 좀 아까운 물건들 (물론 값만으로 따지자면 20 피트 컨테이너가 800+만원 든다하니 우리집 물건 다 합해도 그 값이 안나오니 이성적으로는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게 맞는데... 도대체 왜 나는 버리지를 못하는 것인가..), 아이들 책과 나의 책들을 생각하며 그냥 이삿짐으로 보내기로 잠정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현재까지 싱글 라이프의 삶을 즐기며 내가 정리한 것이라고는 살아 있는 것들 - 아이들이 키우던 거북이, 햄스터집, 구피들과 어항-을 남에게 준 거 정도 뿐이다.. (한숨)
더워서 못하고, 추워서 못하고 등등.. 이제 정말 더 이상은 미루지 말고, 어여어여 버릴 것들을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