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갈아 넣지 않습니다.
며칠 전 남편과 이야길 하다 어렸을 때 봤던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얼마나 미국이 잘 사는 나라로 비쳤는지를 폭풍 공감한 적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ET에 나온 가정은 삼 남매를 키우는 싱글맘이었는데 엄청 큰 티브이가 있는 개인 주택에 살며 엄마가 피곤한 기색도 없었다든지, 호머 심슨은 게으르고 불평만 늘어놓지만 애 셋에 외벌이인데도 멀쩡한 집에 차도 두 대나 있다 같은 이야기였다. 어렸을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봤던 건데 어른의 눈으로 보니 그냥 별생각 없이 설정해 놓은 거였겠지만 현실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야기하다 좀 다르게 의아해했던 점이 있었는데, 왜 미국인들은 오후 다섯 시까지 일하지라는 부분이다(노랫말 가사에도 많이 나오는 나인 투 파이브! 9-5). 나도 어렸을 때 우리는 여섯 시가 퇴근시간인데 미국 사람들은 한 시간 일찍 끝나네 하면서 생각했던 부분인데, 핀란드에서 자란 남편은 왜 네 시가 아니고 다섯 시까지 일하지? 가 달랐던 것. 그렇다 핀란드는 8시에 시작해서 4시에 끝내는 얼리 버드들의 나라다. 학교도 여덟 시 시작. 엄청 캄캄한 겨울도 예외는 없다. 하지만 금요일은 2시부터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하기도 하고 특히나 날씨 쨍한 여름에는 일하는 사람들 찾아볼 수가 없다.
이곳에서는 회식이라는 것도 없지만 회사돈으로 아주 가끔 저녁이라도 먹을 때면 당연히 저녁만 먹는다. 와인 한두 잔 곁들이는 게 전부. 물론 외식은 비싸므로 아무리 회사돈이라지만 알아서 적당한 선에서 끊어줘야 한다. 며칠 전 남편이 영국에서 온 거래처 사람들과 저녁을 먹는다고 늦게 들어올 것을 예고한 적이 있다. 영국에서 온 손님들은 6시 30분으로 식당을 예약해 두었는데, 남편은 속으로 저녁이 좀 늦네라고 생각했단다. 그러더니 4시에 업무를 마친 그는 저녁 식사 자리에 가기 전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길래 근처 수영장으로 수영을 하러 갔다고 한다. 수영장에서 예전 회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를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역시 저녁에 회식이 있는데 시간이 남아서 수영을 하러 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일할 때 회식했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데, 우린 호기롭게 항상 7시에 예약을 해 두고도 항상 엉덩이를 붙이고 급한 불을 끄고 있는 몇몇 때문에 기다리다 포기하고 선발대로 먼저 가야 했던 기억이 있다. 6시 30분이었다면 더더욱 아직 열일 중인 사람들이 많았을 테고..
나도 이제 3년 일하다 보니 주말엔 진짜 노트북 여는 일 따위 없고, 주중에도 웬만하면 5시에는 마무리하고 저녁을 만들기 시작한다. 진정한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엄청 흥분되고 신나는 일은 없을지언정 저녁 다 먹고 치워도 여섯 시 반인 삶이 있다. 그 이후론 정말 자유시간... 갑자기 지난 이십여 년의 세월이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기의 삶도 그리 완벽하지만은 않으니 너무 부러워 하지는 마시라... 털자고 하면 안 좋은 거 투성이겠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