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우연히 시작된 나의 첫 5K 마라톤 도전기
이 이야기는 꽤 오래전, 2016년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지금처럼 러닝 크루가 붐비고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이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었다. "마라톤? 그걸 누가 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마라톤 문화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르던 시절의 이야기다.
내가 처음 마라톤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인 건 2016년 10월, 인천 송도 국제 마라톤 5K 구간에 참가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달리는 것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진짜 이유를 말하려면 시계를 조금 더 뒤로, 그해 초로 돌려야 한다.
2016년 초, 나는 스쿼시를 치다가 공을 밟고 넘어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발목이 심하게 돌아갔고, 병원에서는 통깁스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무려 6개월. 나는 꼼짝없이 목발을 짚고 생활해야 했다.
회사라도 열심히 다녔으면 좋았으려 만, 평소 가장 즐기던 취미인 스쿼시를 못 한다는 상실감이 나를 덮쳤다. 그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며 술잔을 기울이는 날이 많아졌다.
결과는 참혹했다. 72kg이었던 몸무게는 어느새 85kg까지 불어났고, 계절이 바뀌어 깁스를 풀었을 땐 입을 수 있는 옷이 하나도 없어 전부 새로 사야 할 지경이 되었다.
여름이 되어 겨우 깁스를 풀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부푼 마음으로 원래 다니던 스쿼시장을 찾아가 강습을 들었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나는 1분도 버티지 못하고 코트 밖으로 나와야 했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 러닝머신에도 올라가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단 1분도 뛰지 못하고 내려오고 말았다. 늘어난 살만큼 체력은 바닥을 쳤고, 몸에 힘이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낙담해 있던 그때, 같이 스쿼시를 치던 동생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형, 마라톤을 해보는 게 어때요? 목표가 생기면 다이어트에도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
나는 황당했다. 1분도 못 뛰는 사람한테 42.195km를 뛰라니. "야, 내가 지금 1분도 못 뛰는데 무슨 마라톤이야?" 내 반문에 동생은 웃으며 말했다. "에이, 풀코스 말고 5km 코스도 있어요. 한번 찾아봐요."
그날 밤, 집에 돌아와 홀린 듯이 마라톤 대회를 검색했다. 마침 한 달 뒤에 '인천 송도 국제 마라톤'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당시 무료였던 '런타스틱(Runtastic)'이라는 앱을 다운로드했다. 그렇게 무모하고도 충동적인 나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첫 훈련 목표는 소박하게 1km로 잡았다. '그냥 죽을 때까지 한번 뛰어보자'라는 심정으로 뛰었는데, 마침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도니 딱 1km가 나왔다. 그날부터 잠자기 전 아파트 한 바퀴를 도는 것이 나의 첫 훈련 루틴이 되었다.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딱 30일. 거창한 목표 대신 '할 수 있는 목표'를 잡기로 했다. 운동에 질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매일 100m씩만 늘려보자."
재미보다는 의무감으로, 5km를 완주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하루에 100m씩 거리를 늘려나갔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무리하지 않고 전날 뛰었던 만큼만 뛰었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니 대회 전날 즈음엔 3.5km 정도를 한 번에 뛸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 홀로 마라톤 대회장을 찾았다. 대회장의 분위기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낯선 사람들, 낯선 문화... 출발 전 시장님과 의원님들이 나와서 30분 동안 하는 조회는 지루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열심히 뛰어보자.' 신발 끈을 고쳐 매고 5km 출발선에 섰다.
총성이 울리고 사람들이 달려 나갔다. 뛰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치열한 경쟁보다는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열심히 뛰는 학생들, 가족과 함께 걷는 사람들, 유모차를 밀며 달리는 러너들... 기록보다는 건강과 추억을 위해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무려 5등을 했다. 기록은 25분에서 28분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가자가 많지 않아 얻은 행운의 등수였다. 사실 내 바로 앞 그룹에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가 펀런(Fun Run)을 하고 계셨다. 그분 얼굴 한번 보겠다고 죽어라 뛰었는데, 결국 얼굴은 못 보고 5등으로 골인하고 말았다.
숨을 헐떡이며 결승선을 통과했는데, 이상하게 체력이 조금 남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아쉬웠다. '어? 할 만한데?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노력을 하고,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그 결과가 마음에 드는 과정.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그렇게 나는 마라톤이라는 매력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다짐했다. '다음엔 10km다.'
망설임 없이 한 달 뒤에 있을 다음 대회를 신청했다. 1분도 뛰지 못해 좌절하던 그 남자의 충동적인 클릭 한번, 그리고 아파트 단지를 돌던 그 밤들이 이어져... 나는 지금, 누군가의 달리기를 돕는 러닝 코치가 되었다.
앞으로 이곳에, 나의 인생을 바꾼 그간의 마라톤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