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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장 Feb 14. 2023

Addiction

Got me looking for Addiction

“야 들었나. 유아인!”


“어. 프로포폴 했다드라.”


“마약도 했단다.”


“금마 정신 나갔네! 세상 똑띠인 척 하더만…”


그때가 세상으로부터 어느 배우가 내동댕이 쳐지던 순간이었을까. 나와 친구들을 포함하여 모두의 입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유독 본인의 가치관과 정의에 대한 소신발언이 잦았던 배우다. 그래서 대중의 실망감이 컸던 것 이겠지. 유아인 배우의 마약투약 의혹 기사가 뜬 날의 오후였다.


혹자는 그가 출연한 영화에서의 마약쟁이 역할이 실제 본인의 경험에서 나온 생활연기라고도 했다. 우리는 그게 진실인지 알 수는 없다. 진실이라고 해도 그가 마약을 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가 왜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중독되는 상태가 과연 나쁜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나도 마약은 아니지만 한참 중독되어 있는 것이 있다. 그의 기사를 접하기 까지 내가 중독되었다는 사실 조차 인지 하지 못했던 터였다. 그 배우의 기사가 막 돌던 지난주의 내 일정은 공교롭게 돌아가신 이모부의 장례식에 참석 한 것을 시작으로 2개의 수업을 퇴근 후 연달아 들었으며, 그 후 3일간은 통영부터 시작해 5개의 도시를 종횡 무진하며 출장을 다녀왔다. 더 놀라운 것은 그 600km를 운전하며 다닌 동안 틈틈이 카페에 들러 상신해온 서류들을 결재 처리 하고 나역시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다는 사실이다. 나 혼자만 일하는 것 같은 억울한 느낌이 드는 동시에 속으로는 묘한 안도감이 몰려들었다. 나는 ‘바쁨’에 중독되어 있었다.


내 스스로의 행위를 본인 입으로 놀랍다고 표현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나의 바쁨’은 누군가가 강요한 것도 아니오,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 억지 수행 한 것도 아니다. 은근히 즐기는 경지까지 다다른 바쁜 생활은 언제부턴가 훈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어떠한 연유인지 알수없으나 늘 바쁜상태를 유지 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생명력을 유지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바쁘지 않은 주말이면 왠지 모르게 두통과 몸살을 겪으며 아픈 상태에 놓여 있곤 한다.


왜 나는 바쁨에 중독된 것일까. 그 바쁨은 나에게 어떤 효용가치가 있는 것인가. 꼭 바쁜 것이 어떠한 결과나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혹자는 요령껏 놀면서 일해도 높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 나는 이루는 거 없이 늘 바쁘다. 이번 출장이 그랬다. 가맹본부 슈퍼바이저로서 지방 매장을 9곳이나 방문했지만 단박에 매출을 끌어올릴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신메뉴 출시를 설득시킨 가맹점주가 많았던 것도 아니다. 숨쉴틈도 없는 출장일정을 짜두고선 친구들을 붙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한숨 뒤에 뒤따른 슬그머니 웃는 미소를 눈치채는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이중적 태도는 내가 이만큼 바쁘게 살면서 많은 것을 하는 사람임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는 안도감이다. 성과가 없어도 안도감을 주는 것이 지금의 내 생활패턴이다.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표현은 쓰지 않겠다. 내가 바쁜 와중에 성과를 아주 내놓지 못하는 인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바쁨은 그저 빈수레가 아닌, 기분에 취하기 위한 마약과도 같은 존재라는게 내 결론이다. 바쁨에 중독된 나는 여유있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답보상태가 되곤 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내 에너지에 생기를 불어넣는 나로서는 바쁘지 않는 상황은 충전이 아니라 쓸모를 잃은 고장난 장난감이 된 느낌을 준다. 내 존재에 대한 쓸모와 당위성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바쁨에 중독되었다. 녹슬지 않도록 하는 채찍이 될 때도 있으니 아주 이 중독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


쓸모없다는 씁쓸한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바쁜 상황에 노출시켜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유아인 배우가 중독된 마약도 그가 만족할만한 어떠한 감정을 유지시켜 대중이 보는 형태로 붙들어 메고 있을 것이다. 마약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마약은 종내 이성적 판단을 상실케 한다고 했다. 사회적 합의로 도출된 질서도 흐뜨러트리게 하는 것이 마약이다. 하지만 무언가에 중독된다는  자체로는 비난 받을  없다. 반복적인 행위를 통한 안정감 유지는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하필 그의 중독대상이 마약인 것에만 굉장한 유감이다. 모진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중독은 (poison) 가운데가 아닌 (being alone) 상태에서 견뎌가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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