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도 폐점, 잘되도 폐점
“와아 저 자리 또 바뀌네. 장사가 잘 안 되나 봐. 이 번에는 무슨 집이 들어오려나.”
조명이 꺼진 한 가게 자리를 연신 드나드는 사내들이 있다. 짐 더미를 뺴는 그 들을 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쑥덕인다. 든 자리는 티 안 나고 난자리는 이리도 소문이 빠르다. 그 소문이 그 이가 장사를 하던 시절에 났더라면 좋았으련만.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은 얼굴 모를 사장이 한없이 가엽다. 4년 전이었나. 나도 한참 하던 가게를 정리하고 철거업체를 불러 여전히 빤딱하던 새 기물들을 들어내던 적이 있다. 물론 낡은 집기도 있지만 새롭게 무언가를 시도해 보려고 사다 두었던 그릇들은 제 빛을 보지 못하고 폐기물 트럭 뒤켠에 놓인 톤백(ton bag)안에 처박혀 버렸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그렇게도 잘 들어맞는 날이 내가 가게를 정리하던 4년 전 그날이었다.
길 가다 우연히 마주한 폐업하는 가게들을 볼 때면 문득 그날이 자꾸 떠오른다. 4년의 장사에 종지부를 찍던 그날 아침이 오기 전까지 폐업을 말하지 말 것을 가게 직원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던 이순신 장군처럼 내부인 이외에는 아무도 나의 폐업을 알지 못했다.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약국사장님도 단골이던 동건물의 은행직원과 간호사들도 영업종료를 알게 되었다. 나름 수익이 나던 매장을 처분하는 것에 있어 괜시리 장사 안돼서 닫는 집이라는 쑥덕거림을 피하기 위한 나의 조치였다. 몇 년 전도 그러던 것이 요즘도 닫는 집 앞에서는 이유불문하고 ‘안돼서 망하는 집’이라는 프레임이 붙기 마련인 듯하다.
사실 작금의 폐점사태들은 장사가 안 되는 이유도 있지만 의외로 반대인 경우도 많다. 놀랍게도 장사가 잘 돼서 폐점을 한다. 잘 되는데 문을 닫는 것이 언뜻 보면 이치에 맞지 않다. 장사가 잘되는 것이 꼭 수익성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조금은 이해가 될 수 있다.
A와 B라는 식당은 둘 다 하루에 1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곳이다. 그 두 매장은 임대료도 비슷한 편이다. 하지만 A매장 인건비로 한 달에 매출의 30% 수준인 1000만 원가량을 지출하고, B매장은 10% 수준만 사용하고 있다. 당장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A매장도 인건비를 대폭 삭감하고 사장님이 더 열심히 뛰면 될까.
두 매장 상권의 특징을 살펴봐야 한다. 오피스 상권과 같이 특정시간대에만 몰리는 상권은 테이블 회전율을 올릴수록 매출이 상승된다. 때문에 많은 직원을 고용해서라도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손님을 받고 내보내기를 반복해야만 한다. 혹은 고객유입 패턴이 예측되지 않는 신도시 상권의 경우 언제 고객이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예비직원을 항상 고용해야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A매장은 아마 이러한 상권에 해당되기 때문에 B매장보다 인건비 지출이 높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같은 매출을 올리면서 수익성이 현저히 낮다면 장사가 잘되어도 결국 수익창출로 연결되지 않아 폐업을 하게 된다. 다른 경우로는 홀매출과 배달매출 비율 중 어느 한쪽 매출에 치우칠 때이다. 다른 업무에 배분해야 하는 직원을 추가 고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홀매출로만 오롯이 100만 원을 창출한다면 3~4명의 인력으로 충분한 것을 배달 주문을 처리하고 포장하는 추가 직원을 고용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일평균 매출은 고작 10만 원 추가되지만 하루 인건비 지출 역시 10만 원 정도 추가가 되어 안 하느니만 못한 사태를 맞기도 한다.
운영비, 물가, 세금 등 장사하기에는 너무 힘든 세상이다. 이 모든 요소들 중 안 오르는 게 없지만 인건비 조정과 구인만큼 장사에 큰 변수는 없다. 장사가 잘되도 문 닫는 사장님들은 인건비 싸움에서 패배하거나 구인난에 실패한 자들이라고 보면 된다.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소형컨셉의 창업이 대세가 될 것이다. 나는 요식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애 종사하는 사람이다. 사장 부부내외 혹은 한두 명이서 운영 가능한 식당의 오픈이 올해 우리 회사의 방향성인 만큼 대형 사이즈의 매장은 신규 창업자에게 매력도가 떨어진다.
퇴근길에 거의 매일 들르다시피 하는 무지(muji)는 각종 생활용품을 파는 매장이다. 분명 지난주까지는 없었던 키오스크가 생겼다. 키오스크나 테이블오더와 같은 자동 주문시스템 시장이 확대되는 것 역시 서비스 직종에서의 구인난에 대처하기 위함일 것이다. 나아가서는 인건비 감축으로 수익성을 조금이라도 늘리려는 눈물겨운 노력이다. 김밥 마는 기계, 김밥 써는 기계 혹은 조리가 다된 원팩으로 공급하는 식자재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될 것이다. 사람을 위한 서비스에서 점점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이제 당연한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