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어회인 줄 알았더니 냉동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주아주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습니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서
얼어붙은 극장가에 생동을 불어넣을 작품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목부터 마음에 확 꽂힌 영화. #살아있다
포스터의 문구 '데이터, 와이파이, 전화, 문자 모든 것이 끊긴 채 #살아있다'
역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바야흐로 언택트 시대가 된 요즘. 좀비로 은유된 사회적 고립을 극복해나가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스펙타클하고 감동 있게 펼쳐지며 신선함 200%로 무장한, 그런 영화가 나올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사회 평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고 평소 대중적인 평가와 개인적인 호오가 비슷한 편이기 때문에
기대감을 최대한 낮춘 채 극장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보게 된 영화는 감각적인 오프닝 영상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구미를 당겼습니다. 특히 음악!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전자음과 몽환적인 보컬이 마치 근미래의 느낌을 자아냈습니다. (크레딧을 보니 오프닝 파트는 따로 제작된 것 같지만...) 하지만... 영화 전체에 대한 감상을 미리 말씀드리자면 마치 호오를 세로축으로 했을 때 하강하는 곡선같았습니다. 특히 결말로 갈수록 급격하게 꺾이는 형태로....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아침, 자신의 아파트에서 대낮부터 게임을 하던 준우(유아인)가 갑작스레 좀비화된 세상을 마주하고 고립되기까지의 과정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여기서 준우는 게임 BJ 비슷한 역할인데, 사실 그 역할이 영화에서 기능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외로운 마음에 혼자서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지만 그런 장면들이 특별히 색다르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드론을 날리고 BJ 촬영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영화가 트랜드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대목에서는 영화 <엑시트>가 이를 잘 활용한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엑시트>에서는 드론을 통해 주인공들의 모습이 개인 방송으로 송출되고 그들을 응원하는 (실제) BJ 들의 방송화면이 영화에 등장합니다. 영화 내에서도 굉장히 의미 있는 부분이었고, 초연결시대인 우리 시대를 잘 보여준 대목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살아있다>에서는 그런 의미 있는 소재들이 단면적으로 활용되는데 그치고 마는 부분이 아쉽습니다.
또한 앞부분에 사람들이 갑자기 좀비로 변하고 그 특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이미 좀비 영화를 반복 학습해왔기 때문에 지루하고 뻔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물론 제가 좀비 영화 고인물이기는 합니다만...) 그리고 만약, 실제 비슷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제 뉴스에서 '좀비'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될 정도로 좀비는 대중화된 용어가 아닐까요? 지금까지 금기시되어왔던 좀비 영화에서 '좀비'라고 말하기를 이제는 그냥 속시원하게 '좀비다!'라고 한 줄로 요약하고 들어가도 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어쨌든 '좀비다!' 이후로 준우는 스스로를 아파트에 가두며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해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데 준우가 마주하게 되는 고독감과 생존을 위한 전략같은 것들이 우리가 예상을 뛰어넘지 못하는 선에 머물러 있다는 것도 아쉽습니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준우가 빈지노의 'Break'를 무선이어폰으로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술을 퍼마시는 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닫혀있는 문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환각을 통해 느끼는 가족과 재회입니다. 고립된 인간이 결국 마주하는 것은 고독감이고 그것이 인간을 시들게 만드는 그런 부분을 좀 더 다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듭니다. 사실 영화에서 기존의 좀비 영화와 다르다고 느낀 것이 바로 '고립되었다'는 설정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는 '고독감'은 재난 상황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것으로, '식량 부족'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더 집중하며 '좀비 아파트에서 살아남기'를 화두로 던집니다. 그렇다면 준우가 느끼는 배고픔같은 생존을 위한 절박한 투쟁이 더 강조되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한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면서도 묘하게 영화의 흐름과 감정의 핀트가 어긋나 있어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들었습니다. 이는 배우의 연기나 특정 장면의 연출이 아니라, 나무들이 어울려 숲이 되지 못 하는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결국에는 고독감을 이기지 못한 준우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맞은 편 아파트의 수빈(박신혜)가 레이저 포인트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서로가 만나면서 탈출하게 되는 과정이 나머지 중후반에 해당합니다. 초반부에서 개연성이 고이 접혀 귀퉁이에 놓여있었다면 중반부터는 아예 하늘나라로 날라가는 느낌입니다. 물론 개연성을 찾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닐 뿐더러 그걸 일일이 지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만 그렇게 개연성을 희생했다면 얻어지는 이야기의 무언가가 있어야할텐데 그것이 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 희생으로 단지 이야기의 진행을 쉽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총이 없는 한국에서 주인공을 죽이지 않기 위해 좀비들은 모든 감각이 사라진 채 일렬로 젠틀하게 걷고 있고... 고소공포증이라는 수빈은 마동석 이상의 슈퍼히어로로 변신하고... (차라리 고소공포증이라는 말을 안 했으면 되지 않을까요??) 이 과정에서 좀비 영화 특유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시끄러운 사운드만이 깜짝깜짝 놀래킬 뿐이었습니다. 과연 이 영화가 중심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었고(결말에서 적어주기는 했지만..) 클리셰를 쓰더라도 조금이나마 비틀어보는 노력은 했어야되지 않나 싶습니다.
결론은 영화 마케팅의 승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언택트 시대에 펼쳐지는 이야기로 흥미를 자극했지만 여태까지 보고 또 봐왔던 좀비영화의 반복 재생산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홍보를 기획한 뒤에 결말을 추가로 촬영하고 편집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영화에서 좋은 부분들도 분명 있었고 유아인과 박신혜 두 배우의 팬이라면 만족할 만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미국에서 같은 각본으로 제작된 영화 #alone도 촬영을 마쳤다고 하니 어떤 식으로 다르게 펼쳐질지도 호기심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영화<#살아있다>를 해시태그로 달라면 ##살아있다로 해야할까요?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