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지나간 자리 (2)

by 낯선은하



그런데 ‘예술가’란 무엇일까. 변호사처럼 합격증으로 구분되는 것도 아닌데, 무엇을 기준으로 예술가와 예술가가 아닌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작가의 조건을 이렇게 정의했다. “긴 세월 동안 창작 활동을 (...) 가능하게 해줄 만한 지속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살아남아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작가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남는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끝내주게 잘 살아남은 투자자 벤 호로위츠는 “열정을 따르지 말라(Don’t follow your passion)”고 말했다. 성공은 좋아하는 일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끝에 비로소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다.


엄마의 말은 이들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예술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가가 되는 법이 무엇인지 알려준 것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열정이 아닌 능력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버티며, 끝내 예술을 놓지 않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가 된다.


나는 예술가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포기를 외친 셈이었다. 그게 곧 그림 그리는 손을 멈추는 일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래서 계속 그림을 그렸다. 『슬픈 짐승』에서 말하듯 사랑은 “밖으로 터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침입하는 것”일지 모른다. 내게 그림은 기어코 문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빳빳한 햇빛이었다. 삶의 굴곡마다 그 빛이 닿았다. 화방을 그만두고 언어를 공부할 때에도, 공학을 배울 때에도, 그저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희미한 형체의 인간이 되어서도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내 손에 세상은 AI를 쥐여주었다. 내가 배우며 사랑해온 모든 것들의 경계를 허무는 큰 붓. 그 붓이 지나간 자리엔 빛도 그림자도 없었다. 나의 그림은 언어로, 언어는 논리로, 논리는 다시 그림으로 경계 없이 이어졌다. 교수가 했던 말을 되뇌었다. 경계를 무너뜨리는 게 바로 예술 아니던가요. 나는 속으로 되묻는다.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면, 이제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가요.


살아남아 무언가를 계속하는 삶이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그냥 그 삶을 예술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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