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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쌉쌀 Apr 30. 2024

술이 좋아 산다

이 세상에 술과 음악이 없었다면... 끔찍했을 거야

나는 애주가다. 절대 중독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거의 매일 마시지만 딱 한두 잔, 취하지 않을 만큼 마시니까. 맥주 덕후이며, 막걸리, 하이볼, 소주.. 다 좋아한다. 술이 좋아서 마시고, 사람을 만나니 마시고, 기쁜 일이 있어서 마시고, 외로워서 마시고, 마음이 괴로워서 마신다. 어떨 때는 심심해서 마시고, 맛있는 음식이 있어서 마신다. 안주도 크게 상관이 없다. 고기, 과자, 견과류, 과일, 육포, 어포, 만두, 냉장고에 있는 반찬... 무엇이라도 술과 함께면 다 맛이 있다. 술을 좋아하지만 술에 취해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건 참 싫어한다. 그런 내가, 얼마 전에 인사불성이 되었다.

저녁에 아이들을 먹이고 치우고 나서 남편의 늦은 퇴근까지의 빈 시간이 나에게 가장 좋은 혼술 시간인데, 맥주 큰 캔을 하나 다 마시고도 뭔가 허전하고 채워지지 않아서 냉장고에서 다시 한 캔, 그런데도 허전해서 또 한 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의 기억이 없다. 다음날 흐릿하게, 남편한테 "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 어떻게~" 하며 울던 내 모습과 남편의 안절부절 못하던 희미한 장면이 떠오를 뿐. 다음날도 취기가 가시지 않아 출근해서도 어떻게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게 위안이 좀 되었는지 내 마음을 그렇게 드러냈다는 게, 남편이 안절부절 못했다는 게 뭔가 속이 시원했다. 다만, 그저 술주정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약간의 찜찜함.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의 사이는 늘 좋지가 않았다. 아빠의 불같은 성격이 아주 큰 몫을 했고, 평소에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던 엄마는 어느 날 큰맘 먹고 술을 마셨다. 아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 다 하겠다고. 엄마는 술 한 모금에도 바로 취해버리던 알콜 바보였는데...

소주 한 잔에 엄마가 목표했던 만취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큰 맘을 먹고 아빠께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퇴근해서 집에 막 들어서는 아빠를 향해 화를 내고 울부짖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빠는 그만 하라고, 술 깨면 얘기하라고 하며 엄마를 막았고, 엄마는 말을 더 하기 위해 아빠 손을 뿌리쳤다. 그런데 그만, 그 힘에 엄마가 뒤로 넘어지면서 가구 모서리에 귀를 찢기고 말았다. 피가 어찌나 많이 나던지 너무 무서워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는데, 그 와중에도 아빠가 더 화를 낼까 무서워 방으로 얼른 뛰어들어가 바닥에 있던 베개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비명을 멈추기가 어려웠다. 아빠는 당황해서 언니를 시켜 119를 불렀고, 기다리기 답답했는지 엄마를 들어 안고 차에 태워 언니와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응급 접합수술을 받고, 집에 남은 나동생을 달래며 바닥에 흐른 그 많은 피를 닦았다.


내가 술에 취해서 남편에게 쏟아놓고 나니, (쏟아내기는 했을까? 기억에 다 남았어야 더 후련할텐데) 그때의 엄마가 생각났다. 그렇게 하기까지 엄마도 정말 많이 힘들었겠지. 거기에다 결말까지 그러했으니, 아직도 귀에 선명하게 상처가 남아있으니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겠지. 그렇게 놓고 보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내가 나은 건가.

모전여전. 이유는 서로 달랐지만, 그런 것까지 닮지 않아도 되는데...


어쨌거나 나는 오늘도 술을 마실 다. 저녁에 맛있는 걸 먹을 거니까. 술을 마시고 있노라면, 누군가와 대화하고 푸념을 늘어놓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순간 외롭지가 않다. 그래서 잠들 때도 기분이 더 낫다. 요즘 나에게 술은, 내 친구이고 내 위로이고 마인드컨트롤이다. 술이 있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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