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녀? 그들.
분명히 남편이 잘못을 했다. 나를 배신하고 나쁜 선택과 나쁜 행동을 한 건 남편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화가 나는 지점을 살펴보니 나의 화와 미움은 남편보다 어쩌면 시어머니에게 더 향하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이 한 달 만에 시댁에 갔다. 큰아이만 데리고. 아이한테서 영상전화가 걸려왔다. 바닷가 좋은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 먹고, 갯벌에서 게도 잡고, 식당에 있는 물놀이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단다. 순간 가슴에 불을 지핀 듯 끓어올랐다. 날 이렇게 만들어놓은 사람들이, 함께 만나 즐겁고 행복하게 이 시간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미칠 만큼 화가 났다. 밤에 잠도 오지 않아 수면제를 먹고 또 먹고. 나는 아직 괴롭고, 나에게 그렇게까지 한 시어머니한테 간 남편이 미울 지경인데 그들은...
내가 낳은 둘째가 아들이 아니라고 하루아침에 냉랭하게 대하시던 시어머니. 둘째가 옹알이를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돌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안아본 적이 없다가 돌잔치 때 사진을 찍기 위해 처음 안으셨다.
"넌 남의 집에 시집와서 아들 하나도 안 낳으려고 하냐?"
"느그 엄마 닮아서 아들이 안 나오나 보다." - 시누이도 딸만 둘이다.
"남의 집 자식이라서 그런가, 이해를 못하겠다."
"너는 용돈을 주려면 그냥 얼른 주지, 줄 듯 말 듯 사람 애태우다가 헤어질 때 돼서야 주냐?"
조카들 어릴 때 예쁜 머리끈, 삔, 스카프 등등 선물로 사갔더니, "이깟 만원쯤 하는 걸로 생색내려고 왔냐?" 하며 바닥으로 휙 던지고...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가끔 선물 같은 거 하냐는 시누이 질문에, 얼마 전에 포도가 한 상자에 16,000원이라 두 상자 사서 드렸다고 하니까 "내 아들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니가 큰소리치고 다니냐?!"
한 일주일 있다가 가라고 하셔서 짐 싸서 캐리어 끌고 혼자서 두 아이 챙겨가며 기차 타고 내려갔더니 시아버지랑 역으로 마중 나오셔서 미처 뭐라도 살 틈이 없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부모 집에 들르면서 과일 하나 안 사 오냐고 성을 내시며 "내가 만약에 진짜 돈 없이 사는데 그랬으면 서러워서 어쨌을까."
남편의 성매매를 알고 난 며칠 후에 조카들 데리고 시댁식구들 다 우리집으로 놀러 오겠다는 말씀에 잠시 망설이다 오시라고 했더니 그새 화가 나서는 "안갈란다! 니가 오라고 똑바로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서울 가서 너희 집에 못 가면 잠은 어디서 자냐?! 너도 오지 마라!"
그러면서 얼굴 볼 때마다 하시는 말씀, "시집 잘 왔지?" 답정너.
나를 이렇게 막 대하는, 가슴에 대못을 수십 개 박은 시어머니에게 효도하겠다고 왕복 10시간이 다 되는 그 거리를 한 달에 한 번은 꼬박꼬박 가는 남편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거기에다 그렇게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니...
나만 아프지. 나만 힘들지. 시어머니는 어차피 남의 자식, 상관없으시겠지. 아들만 그저 예쁘고, 아직도 마음을 풀지 않는 며느리 때문에 아들만 딱하시겠지. 그나마 남편은 눈치라도 보지, 시어머니는 끝까지 당당하시니 원망만 쌓인다. 이 마음은, 언젠가 풀릴까? 난 아직 용서할 마음의 그릇이 안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