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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나연 Aug 17. 2019

현역 개미와 말벌의 팀업

앤트맨과 와스프(2018) #1~5 리뷰

MCU 영화 개봉철에 발맞춰서 관련 캐릭터의 코믹스를 내는 건 이제 예삿일이 되었네요. <앤트맨과 와스프>가 짜잔 개봉해서 별다른 프로모션 없이도 성공적인 성적을 내주었던 이번 여름. 동명의 코믹스도 5부작 리미티드 시리즈로 연재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별 기대없이 집어든 코믹스였어요. 마크 웨이드는 간판급 작가임에 틀림 없지만 여태껏 읽어본 책들이 언제나 약간의 실망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아 이양반은 내 취향이 아닌가보다 짐작했고, 또 영화 프로모션 용으로 발간하는 코믹스는 어쩔 수 없이 기획적인 면에서 그렇게 임팩트있는 책이 될 수가 없거든요.


오우, 근데 상당히 놀랍게도 꽤 재밌었습니다. 제 이목을 확실하게 휘어잡았던 것은 4편에 가서였지만, 그거라도 어디에요. 본 리뷰를 준비하기 위해서 1편부터 다시 읽어보니 또 역시 괜찮아요. 월마다 꼬박꼬박 3.99달러를 지불해서 읽은 시리즈였는데, 값어치는 했다 싶어요. 기준이 너무 속물적인가요? (ㅠㅠ) 그치만 시리즈 완결 2달만에 TPB로 반값도 안되는 가격에 살 수 있게 된다면 계산기를 한번쯤 두드려보게 되는게 사람 마음이 아닌지...!

이번 <앤트맨과 와스프> 코믹스의 가장 큰 의의는 현역 개미 스콧랭과 현역 말벌 나디아가 드디어! 만났다는 점 아닐까 싶어요. 분명 아예 머리가 텅텅구리 빈건 아닌데 이상하게 주변에 천재들이 넘쳐서 상대적으로 하찮게만 그려지는 중년 이혼남 스콧랭과, 아버지의 수트를 훔쳐입고 히어로행세를 하는 못난 아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십대 청소년 나디아의 케미는 상상 이상으로 좋았거든요. 확실히 <앤트맨> 영화 개봉 이후로 무해한 딸바보 아빠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긴 한데, 이게 또 이렇게 잘 어우러질 줄은 생각치 못했어요.

전체적인 내용은 꽤 난해한 편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의 시놉시스--양자영역에서 길을 잃은 자넷을 구출한다--를 상당히 의식하고 만든 코믹스이니만큼, 랭트맨과 나디아가 나란히 양자영역(마이크로버스)에 빠져들어가서 엄청난 모험을 겪거든요. 얼마나 엄청나냐면 매 이슈가 클리프행어로 끝날 정도의 엄청남? "이게 무슨 일이야"라는 대사가 끊임 없이 나올 정도의 엄청남? "괜찮아 코믹스니까" 더하기 "괜찮아 양자영역이니까" 더하기 "괜찮아 리미티드시리즈니까" 이꼬르는 난장판입니다. 진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인데요, 그게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게 또 신기했어요. 역시 위의 세가지 이유 때문에 자비로운 이해심이 생겨난 것일까 싶기도 하고요.


천재소녀 나디아의 입을 통해, 그리고 양자영역에서 만난 천재생물 달렙의 입을 통해서 그럴듯한 과학적 설명이 따라오긴 하지만 어려운 단어들이 너무 많아서 상당수는 패스해버렸어요. 이 말은 무슨 말이다? 어려운 단어를 몰라도 극을 이해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뜻이다!

나디아에 대해서는 대충 행크핌의 숨겨진 딸이고 원조 말벌 자넷과는 멘토멘티의 관계~ 정도로만 애매하게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캐릭터 어필에 성공하지 않았나 생각해봐요. 나디아의 오리진을 회상 형식으로 삽입해서 저같은 입문 독자들을 배려해준 세심한 터치 참 좋아요!


나디아의 오리진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행크 핌의 첫번째 부인이 나디아를 임신한 상태로 소련에 납치돼서 그곳에서 태어난 나디아는 레드룸에서 과학적인 재능을 꽃피웠습니다. 나디아에게는 아버지 행크 핌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심이 있었고, 핌 입자를 이용해서 레드룸에서 탈출에 성공해요.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행크 핌은 울트론과 결합하여 우주 바깥으로 나가버리고 말았거든요. 그래서 행크 핌과는 만나지 못하지만, 핌의 두번째 부인 자넷 반 다인에게 입양되어 반 다인이라는 성씨를 갖게 됩니다. 과학 천재 똘똘이라서 장비도 뚝딱 만들고 어엿한 히어로 와스프가 되었지 말입니다!

레드룸에서 겉돌며 외롭게 지냈던 나날들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나디아...를 보고 있으려니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십대 주인공에게 워낙 약한 저인데, 이런 안타까운 가족력을 갖고 있는 캐릭터라면... 저는 정말 끝장이라구요 끝장! ㅠㅠ 이미 넘어가버렸다


작중 "드디어 지구에 돌아왔다!"했지만 "사실 아니었지롱"하는 순간이 있어요. 나디아가 집에 돌아갔더니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버지 행크 핌이 멀쩡하게 있다든지, 세상쩌리 하찮이 삼류히어로 앤트맨이 돌연 최강의 인기를 누린다던지 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거든요. "뭔가 이상하다, 여기는 우리의 고향 지구가 아니다"라는 것을 직감한 스콧이 나디아를 찾아가는데(앤트맨이 이렇게 인기있을리가 없어ㅠㅠ), 이때의 대화가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스콧: 나디아, 나는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는 아니란 건 알아. 그 사람도 네 아버지가 아니야. 내가 그걸 깨달았을 정도면, 너는 나보다 훨씬 똑똑하니까,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거 아니니. 이 상황이 비정상이란 건 알잖아. 이곳은 뭔가 이상하다고. 근데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나디아: 아저씨 말이 맞을지도요. 
스콧: 그렇다면 이력서 읊는 짓은 그만 둬! 왜 저양반한테 시시콜콜 네 업적을 말하고 있는 거야? 
나디아: 그래야 아빠가 나를 사랑해줄 테니까요. 
스콧: ...아이고, 얘야. 아니야, 아니야, 절대 아니야. 아빠한테 잘보이려고 노력할 필요 없어. 아빠라는 사람은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이지, 그건 네가 어떤 일을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란다. 내 말 이해하겠니?

스콧과 나디아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이지만, 스콧이 나디아를 꼬옥 안아주며 위로해주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죠. 스콧이 아무리 캐시를 실망시키고 상처입힌다고 해도 무조건적으로 캐시를 사랑하는 아버지인 것은 분명합니다. "딸 같아서" 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순간이에요. '못난 아빠'가 드글드글한 마블 유니버스에, 이렇게 아이를 보듬어주고 아껴주는 어른이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보상받는 기분을 느끼는 나... 아무래도 허들이 너무 낮아졌죠?


우당탕탕 천신만고 끝에 내고향 지구별에 도착했지만 양자영역에 너무 오랫동안 머무른 탓에 '살아있는 양자입자' 상태가 돼버린 두 사람. 계속해서 둘이 함께 모험을 한 탓인지, 서로의 입자가 얽히고 설켜서 점점 서로를 닮아가다 못해 기억도 습성도 하나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 문제는 이미 이슈 초반부터 떡밥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었어요. 양자영역이라는 미지의 장소에서 미스테리한 사건을 겪으며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풀어나가는 시도, 괜찮았습니다.

나디아: 따님 만나봬러 가세요.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주시구요. 딱히 줄 선물이 없어서 미안하네요.
스콧: 선물이 없긴 왜 없어, 여기 있는데. 잘 지내렴. 또 얘기하자.

결론을 말해보자면, 다소 난해하고 어렵긴 하지만 [과학적 설명] 파트를 어느정도 선별적으로 독해하면 읽을만 한 정도였다. (영화든 코믹스든) 스콧 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코믹스였다. 나디아 반 다인이라는 캐릭터의 입문서로 훌륭하다. 이정도로 평해봅니다.

작화면에서도 정말이지 말도 못하게 엄청엄청엄~청 귀엽다구요! 아저씨 랭트맨이 어마무시하게 귀엽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장인의 펜슬링이었어요. 최고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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