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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나연 Aug 17. 2019

프레네미 격돌! 스파이더맨 vs. 데드풀

스파이더맨/데드풀 (2016~2019) #23~25 리뷰

바야흐로 2016년 3월... 텀블러를 요동치게 한 세기의 팀업시리즈 <스파이더맨/데드풀>(이하 스덷) 첫편이 발매되었지요. 저도 이 콤비를 무척 좋아하던 터라 부푼 가슴을 안고 이슈를 사서 읽어보았는데, 아 이게 문제가 좀 있었어요. 스덷의 스토리를 맡은 첫주자는 조 켈리였는데, 이분이 쓰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가 저랑 너~무 안 맞는 거예요. 어우 막, 도저히 제 취향이 아닌 거예요.


'캐해석이 안 맞는다'라 함은... 그런 거예요. 작가마다 "피터 파커라면 이렇게 행동할 거야!"라고 생각하기 나름일텐데, 조 켈리가 묘사하는 피터 파커라는 인간상은, 제가 사랑하는 피터 파커와는 약간 핀트가 엇나갔다는 뜻입니다. 그놈의 수류탄! 때문에 그토록 기다리던 최애들의 팀업에도 버티질 못하고, 몇 아크 만에 금방 드랍해버린 게 사실입니다. 스덷의 작가별 캐해석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써보도록 할게요. ◀보통 이렇게 말해놓고 안 하기 일쑤이니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던 중, [마블 레거시]를 맞아 2017년 후반에 기존 작가진이 하차를 하고 로비 톰슨이 새롭게 운전대를 잡을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헉!!! 로비 톰슨이 누구냐? <실크>, <스파이디>, <스파이더맨: 마스터 플랜>, <베놈: 스페이스 나이츠>를 쓴 양반입지요. 여기 나열한 모든 작품을 제가 아주 재밌게 즐겼다 이거거든요. 어머나! 정말 잘됐다 싶었어요. 로비 톰슨이 스덷을 쓴다면 당연히 다시 집어들어야지! 

로비 톰슨&크리스 버첼로 콤비가 작업한 첫번째 스토리아크가 완결이 났으니, 감상을 탈탈 털어볼까요. 새해 목표대로 포스팅 꾸준히 잘 하고 있죠? 칭찬칭찬해. 리뷰를 시작하기 앞서 저는 직전 편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서술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려요.


스티브 로저스 "콜슨을 발견하는 즉시 사살하게. 전부 다 본국을 위한 일이야."

2017년 마블을 화끈하게 불태운 <시크릿 엠파이어> 이벤트 이야기를 잠깐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만인의 모범, 영웅 중의 영웅 캡틴 아메리카가 사실 하이드라였다! 라는 무시무시한 명제로 시작하는 이 이벤트... 데드풀은 엉망진창인 자신을 믿고 어벤저스에 가입케해준 캡틴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는데. 캡틴 하이드라(!)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데드풀을 암살자로 이용해 먹어요. 자신이 하이드라라는 것을 눈치챈 쉴드의 필 콜슨 요원을 죽이게끔 시킨 것이지요.

프레스턴 "너는 이 일로 지옥에서 불타게 될 거야."

데드풀이 콜슨을 죽인 일로 분노한 프레스턴 요원이 데드풀을 막으려 맞서지만 끝내 데드풀에게 살해당하기까지. [마블 나우!]부터 데드풀의 든든한 측근이었던 프레스턴이 이렇게 잔인하게 퇴장하다니 정말 아쉬워요. 이후 데드풀은 솔로타이틀을 <디스페커블 데드풀> 즉 '혐오스러운 데드풀'로 바꾸면서 악당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애초에 내가 착해지려고 마음먹었던 것부터가 잘못이었다"라면서요. 나란 놈은 착해질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무거운 배경에서 <스파이더맨/데드풀>이 모토로 두고있던 '유쾌한 팀업'이 가능하긴 할까요? 일단은 타이틀 제목부터 슬래쉬가 아닌 Vs.로 바꾼 거보면 훈훈한 친목회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고 말이에요. 스파이디의 경우는 캡틴 아메리카랑은 다른 느낌으로 모범영웅이잖아요. 착한 거는 좋은 거, 나쁜 거는 혼날 거.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 데드풀은 쉴드 요원을 최소 두 명이나 살해를 했으니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거죠.

피터 파커라고 해서 상황이 영 좋지만은 않아요. 레거시를 맞아서 회사가 망한 탓에 여자친구네 집에 얹혀 사는 찌질이 백수 상태로 전락했으니까요. 그래도 뻔뻔하게 심야방송에 나와서 쉴드에서 훔친 무기를 팔아먹고 앉아있는 밉상 용병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불끈불끈 피가 끓어 넘치거든요. 이놈자식, 내가 널 가만히 둘줄 알아!

이럴 때라고 해서 파커 주특기가 빠질 수는 없죠. 이상한 죄책감 미터기가 윙윙 작동해버립니다. (도라에몽 목소리) 나와라~ 뭐든지 내 책임인 것만 같다는 양심~! 왜냐면 벌써 23번째 이슈잖아요. 암만 진상 화상짓만 일삼는 웨이드라고는 해도 노상 붙어있다보니 웨이드에게 도움 받은 일이 한두번이어야 말이죠. 특히 직전 '잇치빗치 사건'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피터가 이성을 잃고 과격하게 굴었을 때에 피터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준 게 웨이드였거든요. 스티브 로저스의 명령에 따라 콜슨 요원을 죽이다니, 당장 잡아다 철창 뒤에 가둬놔야 하는 건 맞는데. 어쩐지 웨이드는 그런 일을 할만한 사람이 아닌 거 같고. 왠지 걔가 그렇게까지 행동해버린 게 이상하리만치 내 잘못인 것 같고. 피터는 웨이드를 도와줄 길은 없을지, 피터가 알던 웨이드의 모습으로, 원래대로 되돌려놓을 방법은 없을지 고민해봅니다. 


흠. 이렇게 생각해보니 스덷의 테마는 그런거였을는지도 모르겠어요. 데드풀에게 영향을 받아 과격해지는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에게 영향을 받아 영웅심을 배우게되는 데드풀. 주거니 받거니, 미운정 고운정 쌓여가는 우정과 사랑. 흠.


하지만 피터가 아무리 좋게 생각해주려고 해도, 쉴드가 망했다고 핼리케리어를 숄랑 접수해서 제집 안방처럼 써먹고 있는 행각을 보면 또 열뻗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우, 웨이드 녀석.

데드풀: 스파이더맨...은 나의 가장 절친한 친ㄱ...
스파이디: 너를 체포하겠다, 데드풀!
데드풀: 가택 연금 같은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도 괜찮겠네. 내 입맛대로 여길 거의 다 꾸며놓은 참이었거든
스파이디: 난 진심이야, 웨이드.
데드풀: 나도 진심이야! 자자, 내가 이곳저곳 구경시켜줄게! (헛소리 주절주절)
스파이디: 감옥이야, 웨이드. 감옥.
데드풀: 알겠어. 일단 구경부터 다 시켜주고 나서! (후다닥 도망침)

이슈23, 이번 아크에서 스파이더맨과 데드풀의 첫대화인데. 사실 이 페이지로 스토리아크 전체를 요약할 수 있습니다. 스파이디는 어떻게든 데드풀을 체포하거나, 최소한 설득해보려고 기를 쓰지만 데드풀은 지옥의 주둥이를 쉴새없이 가동하면서 요리조리 도망칠 궁리만 하거든요.

데드풀: 드디어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는 곳에 도착했군, 너도 와서 보라구.
스파이디: 웨이드...
데드풀: 잠깐 스냅챗으로 생방 좀 하고. 팬들이 완전 좋아할 거야.
스파이디: 이러는걸 누가 보고싶다고 그래.
데드풀: 너 텀블러 들어가본적 없나보구나?
스파이디: 그만좀 해. 너 콜슨을 죽였다며. 그러면 감옥에 가야지. 하지만... 잇치 빗치 일을 생각해보면... 네가 나를 위해 해준 일을 생각하면. 나는 너한테 빚을 진 거야. 그러니까 그 머릿속을 고칠 수 있도록 내가 돕겠어, 웨이드. 난 너의 진짜 모습을 알아... 진정으로 네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알아. 이런 건 네가 아니야. 이런 건...
데드풀: 내가 널 위해 했던 일은... 내가 진정으로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줬을 뿐이야, 웹스. 나도 노력했어. 진짜진짜지인짜 노력했다고. 그치만 난 착한 놈이 아니야. 여태껏 그런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
스파이디: 아냐, 그렇지 않아, 내가 봤던 너는...
데드풀: 네가 본 그놈은 흉내쟁이 가짜에 불과해.

이번 이슈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데드풀이 아무리 마블 넘버원 미친놈 또라이 위치에 있다곤 해도, 그으으렇게까지 대책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엄연히! 생각도 하고 욕구도 있고 감정도 있는 인간이지요. 상처받기를 무서워하고, 농담과 폭력을 방어기제처럼 쓰면서 속마음을 숨기기 일쑤예요. 포스팅 맨 처음에 언급했듯 살인을 하고 영웅심에 기대던 것도 박살이 났으니 얼마나 불안정하겠어요. 데드풀이 저렇게 굴 수 있는 건 그만큼 절망하고 좌절했기 때문 아닐까 싶어서 마음이 찡했습니다. 


짧은 주먹다짐을 하고서 웨이드가 밝힌 바로는, 심야방송에 광고를 낸건 데드풀 본인이 아니다. 누군가 데드풀 행세를 하고 돌아다니는 모양인데, 웨이드는 오히려 나도 그 범인녀석을 잡아다가 혼쭐을 내고 싶다며, 이왕 파커 인더스트리가 망했으니 내 밑에서 일하라는 제안까지 할 정도입니다. 그리하여 스파이더맨, 예기치 않게 데드풀을 도와서 가짜풀을 잡으러 떠나는데.


첫이슈만큼은 번역을 첨부한 해당장면 덕분에 인상깊게 봤는데, 두번째 세번째 이슈는 정말 그저 그랬어요. 이걸 굳이 볼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임팩트가 부족했다고나 할까요. 3,99달러를 3번이나 주면서 볼 가치가 있느냐? 노우우우우... 그렇다곤 말 못하겠어요. 차라리 TPB나 언리미티드로 저렴하게 보면 낫겠지만요. 스킵해도 크게 무리는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조 켈리의 스덷을 읽고 "나의 피터 파커는 이렇지 않아아!"하며 포기를 했다면, 이번 로비 톰슨의 스덷은 "무슨 데드풀이 이모양이야아아!"정도의 느낌일까요. 제가 데드풀은 스파이더맨만큼 많이 읽어보지 못해서 캐해석에 관해선 그렇게 깐깐하지 못해요. 다만, 로비 톰슨이 쓰는 데드풀은 인터넷에서 가볍게 소비되는 밈(meme)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이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데드풀이 너무 심하게 독자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데드풀이 제4의벽을 뚫는다는 거야 누구나 다 알법한 사랑스러운 매력일텐데, 이게 너무 과하다는 뜻이에요. 얼굴에 무작정 들이밀어가지고 부담스러울 정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썼던 트윗을 인용해보면 ▶///로비톰슨 데드풀 첨 써봄?ㅋㅋㅋ 아주 그냥 독자 코앞에 막 들이미네 야야야야 여기 너도 나도 좋아하는 제4의벽깨부수기다 여깄다 옛다 먹어라 먹어 (얼굴에꾹꾹비벼버림)///◀  진짜라니까요. 제가 지금 정말 딱 이 마음이라니까요.


작가가 너무 신났다! 자신이 데드풀 책을 쓴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그게 절절하게 묻어나왔어요. 이러면 안 되죠~ 왜 그렇게 오버를 하고 그래요. 프로정신 어디있어. 로비톰슨 좋게 봤는데 말이야. 데드풀 책은 영 꽝이구만 그래...



데드풀: 이러지 마, 웹스터. 내가 이런 아무개 괴물의 입속에서 죽게 내버려두지 말라구.
스파이디: 글쎄다, 웨이드. 내가 너를 감옥에 데려다 놓을 거라고 말하긴 했는데, 뭐 그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거든.
데드풀; (쟤 말이 맞아. 나는 감옥에 있어야 해. 뭐랄까, 워낙 별별 짓을 다 하고 다녔으니까. 이를테면 지금 스파이더맨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든지 말이야. 미안, 친구.)

그래도 스파이더맨만큼은 기대를 걸어볼만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왜냐면 로비톰슨이 썼던 책들 중 대다수가 거미부서에 속해있으니까 말예요. <스파이디>도 그렇고 <스파이더맨: 마스터 플랜>도 그렇고 굉장히 재밌게 봤기 땜시 스덷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터뷸라 라사에 도착한 이후로 별별 괴물이 튀어나오고 싸웠다 도망쳤다 잡혔다 날아다니다 영 정신없게 돌아가다보니 고민할 틈도 없이 파파파팍! 몰아치기만 했어요. 때문에 스파이디가 이 정신나간 상황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대사도 그렇게 훌륭하지 않았어요. 스파이더맨은 시종일관 "웨이드 나빠. 감옥 가자." 이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말만 앵무새처럼 하고 있고. 캐릭터 묘사가 조금 지루하고 심심했지요. 아무래도...

그나마 괜찮게 봤다는 첫이슈에서조차도, 초반 6페이지는 <어스파> #789 에서 쓰였던 상황연출을 그대로 가져온 수준이라서 좀 거시기했지요. 어스파를 보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본 사람의 입장에선 굳이 똑같은 장면을 또 보고 싶진 않잖아요.


크리스 버첼로의 작화 얘기를 해보면. 사실 그림 자체는 정말 좋아해요. [브랜드 뉴 데이]때 버첼로가 맡았던 아크들 정말 재밌게 읽었고, 스파이디를 귀엽고 깜찍하게 깨물어주고 싶을만큼 쁘띠하게 그려주는 게 최고거든요!!! 근데 컷연출에 관해서는 아니올시다 싶었네요. 이번 아크를 읽으면서 확실히 패널 움직임을 잘 이용하는 작가는 아닌 거 같아요. 이건 개인취향이니 동의하지 않을 분도 계시리라 생각해요.


<스파이더맨/데드풀> 마블 레거시 스토리아크 'Arms Race'는 결과적으로 약간의 실망. 기대를 해버렸으니 실망할 수밖에요! 최종 평결은 평잼 정도이려나요. 꿀잼이라곤 절대 말 못하겠어요. Meh...

'Arms Race'의 뒤를 바로 잇는 이슈는 'Oldies'라는 제목의 외전입니다. 무려 몇 십 년 뒤 미래의 이야기. 피터 파커가 히어로를 은퇴하고 웨이드 윌슨과 함께 같은 양로원에 들어간 이야기인데. 


의외로 이 에피소드가 대박을 쳤어요!!! ㅋㅋㅋㅋㅋ 직전 아크에서 실망을 해서 기대치가 현저하게 떨어져서 그럴까요? <스파이더맨/데드풀> #26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할아버지 파커가 아주 노골적으로 틀니를 뽐내는 이슈를 이렇게 즐길 줄은 나 자신도 몰랐다 이것입니다! ㅋㅋㅋㅋㅋ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묘한 감동과 울림이 있는 에피소드였어요. 캬~! 이거지 이거. 로비 톰슨 이거 정말 잘해요. 대사 한 마디 안 쓰고 몰랑몰랑하게 만드는 그런 거 좋아요. 펜슬러 햅번의 작화도 정말 뛰어났구요. 


로비 톰슨 런의 피크라고 평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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