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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나연 Aug 16. 2019

슈피리어 스파이더맨이 돌아왔다

슈피리어 스파이더맨 (2018) #1~3 리뷰

저는 <슈피리어 스파이더맨>(2013~2014)을 꽤나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입니다.

헐!!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말하실 분들이 분명 계실 거예요. 너는 페미니스트이자 피터 파커의 팬을 자처하면서 어떻게 이 작품을 좋게 볼 수 있느냐면서요. 일단 첫째로 제가 피터 파커 죽음의 순간(2013)을 실시간으로 직접 겪지 않았던 게 한몫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리 이 바닥이 죽었다가도 곧잘 벌떡벌떡 일어나는 판이라고 해도, 동시간대에 벌어지는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의 죽음은 충격적일 수 있거든요. 실제로 어떤 팬들은 슈피리어를 쓴 작가에게 너무 화가 나서 살해 협박 메일을 보내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거의 트라우마급의 반응을 보이곤 하지요. 그럼에도 이 시리즈는 연재 내내 판매량 탑 순위를 놓치지 않았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 게 사실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슈피리어 스파이더맨>(2013~2014) #30 완벽한 결말, 완벽한 연출

<슈피리어> 시리즈는 주인공의 숭고한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결말만을 위한 이야기였고 그게 유효타로 정확하게 먹혀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만한 천재 악당이 영웅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가짜 영웅 행세'를 하다가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하게 이기심의 반대인 영웅심이라는 것을 체화하고, 끝내 자신의 한계를 직면한 뒤에 '진짜 원조 영웅'에게 자리를 돌려주고 스스로를 희생하기를 선택한다는 결말이요. 어찌됐건 만인의 주인공 피터 파커가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것은 어떻게보면 뻔한 일이지만 그걸 직접 경험한다는 건 무척 짜릿한 일이거든요. 입체적인 캐릭터에 고전적이고 원류에 충실한 플롯이 합쳐져서 무척 안정적인 탑승감을 줍니다. 처음부터 작가가 확고하게 구축한 길을 착실하게 따라간다는 느낌을 분명히 받았어요. 스릴과 릴렉스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글솜씨로 보자면 댄 슬롯의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슈피리어>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캐릭터의 근본부터 존재 자체가 윤리적으로 잘못됐다는 거예요. 단순히 캐릭터나 디자인이 쿨하다고 안일한 태도로 대하기에는 이놈이 하는 짓이 보통이 아니에요.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신분을 도둑질해 사칭을 일삼고, 가까운 사람들 모두를 속이는 위선자 짓을 하는 데다가, 도리어 거짓말과 배신을 정당화하고, 메리제인을 강간하려 들기까지 합니다!(시발;;;) 그래서 저는 슈피리어를 싫다, 극혐한다라는 팬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요. 싫을만합니다. 싫을 이유가 충분합니다!


그래도 이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작품의 팬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옥파이디(Spock)는 "미친 싸이코패스 쓰레기" 그 이상의 캐릭터입니다. 옥파이디는 누구보다 욕망에 충실하고 실제로 그 욕망을 이뤄낼 능력이 얼마든지 있어요.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과 천연 이기주의에도 때따라 우선순위를 달리하며 주변 사람들을 품어주는 인자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자신의 신념에는 이상하리만치 고집스럽게 굴면서 재밌는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옥파이디가 개놈은 맞는데 조금이나마 사랑할만한 구석이 있다는 게 저의 의견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죽음으로 죄를 갚는다는 점이지요. 물론 지금까지 저지른 악행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희생을 그런 개놈새끼가 한다는 점이 큰 감동포인트 같아요. 너 이새끼 사람됐구나, 지옥에서 마저 반성해라, 이런 느낌.

엠파이어 스테이트 대학(ESU)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

무엇보다 서포트 캐릭터 '안나 마리아 마르코니'가 이 시리즈 최고의 매력입니다. 똑똑하고 강단있고 배려심 넘치며 그 어떤 역경에도 꺾이지 않는 스피릿의 소유자, 안나 마리아! 안나는 시리즈 내내 주인공 남캐 옥파이디에게만 얽매여있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면서 옥파이디와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만들어냅니다. 슈퍼히어로 코믹스에서는 간혹 서포트 여성캐릭터가 주인공 남캐와 만나지 않을 때, 페이지 바깥에 비껴서있을 때 그 여캐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안 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야말로 '남캐와의 관계'만이 존재하는 반쪽짜리 인간인 거죠. 안나는 그렇지 않았어요. 페이지에 보이지 않을 때에도 안나의 하루를 얼마든지 상상을 할 수 있었거든요. 대학에서 근무하며 수업 준비도 논문도 열심히 할 거고, 사람이 워낙 좋으니 여러 사람과 두루두루 어울려 사교적인 만남을 즐길 거고, 휴일에 혼자만의 휴식 시간을 가질 때에는 취미인 요리를 하면서 실험적인 레시피를 연구하겠지요. 이게 제가 안나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였어요. 안나 마리아라는 캐릭터의 존재 의의는 온전히 그녀 자신에게 있습니다. 안나가 옥파이디를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부수적인 거지요. 댄 슬롯이 너무 여캐를 못 써서 제 눈이 많이 낮아져서 그런가?;;; 세간의 기준으로 보기엔 많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좋은 캐릭터다.

<슈피리어>(2013~2014)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
1.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 가장 이타적인 선택을 하는 결말
2. 매력적인 서포트 여성캐릭터, 안나 마리아 마르코니

그런데

<슈피리어 스파이더맨>이 귀환했습니다? 

그것도 온고잉 시리즈로? 

...

?

옥파이디는 죽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의미가 있는 캐릭터인데......

거두절미하고 핵심만 말하면 오토가 죽기 전에 자신의 의식(기억)을 기계장치에 업로드해두었다가 클론으로 부활했다는 거 아닙니까. 시행착오 끝에 피터 파커의 DNA와 자기 자신 오토 옥타비우스의 DNA를 반반씩 섞어서 완벽한 육체를 만들었다나 뭐라나요.

'파커 인더스트리'의 몰락 이후 샌프란시스코 지부에서 활동하던 호라이즌 크루들(맥스 모델, 안나 마리아 마르코니 등)은 그곳에 대학교를 설립해서 교수진으로 생활하는 중입니다. 오토는 '엘리엇 톨리버'라는 가명으로 대학에 취직한 동시에 '슈피리어 옥토퍼스'라는 이름으로 샌프란시스코를 수호하는 히어로가 되리라 천명합니다.

예전에 적었던 스파이더겟돈 리뷰 포스팅에서 가져온 거예요. 옥파이디의 귀환은 2016년에 있었던 <클론 컨스피러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기서 오토 옥타비우스는 <슈피리어> 마지막에 깨달았던 이타심을 모르는, 이기적인 '악당'의 기억을 복제인간의 몸에 부여해서 어기적 어기적 부활해요. 이게 2016년의 일입니다. 그 뜻깊었던 <슈피리어> 엔딩이 2014년인데, 겨우 2년만에 캐릭터 부활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죠. 그래요 캐릭터가 영원히 죽어있을 수는 없으니까 악당으로라도 쓰고 싶은 마음은 뭐 어떻게 이해해준다고 칩시다. 근데 이걸 또 기어코 2018년의 마지막달에 <슈피리어>가 동일한 제목으로 복귀한단 말입니까. 고작 4-5년만에 통째로 시리즈 리런치... 사골국 수준이 아니라 이건 뭐... 죽은 자식 부랄 만지는 꼴이죠. 세기의 난제: 마블 이놈들은 왜 적당히를 모르는가.

투지에 불타는 안나 교수님 너무 멋있어ㅠㅠ

제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유일한 이유는 목록의 2번, 안나 마리아 마르코니였어요. [마블 나우!] 어스파 시리즈에서 댄 슬롯이 정말 끔찍하게 실망스러운 방법으로 안나 마리아를 낭비했기 때문에 이만저만 속상한 게 아니었는데, 다행히 크리스토스 게이지가 안나를 마땅하게 써주고 있어서 다행스러워요. 안나는 첫편부터 '톨리버 교수'의 정체를 간파하고 엄청난 팩트폭력으로 오토의 정신머리를 후두려 패줍니다. 역시 내 여신님이야. 너무 걱정스러운 마음에 작가한테 직멘으로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작가가 안나와 오토를 로맨틱한 관계로 이어주지 않을 거라고 확실하게 답변을 해줘서 참말로 다행입니다. 안나 같이 똑똑한 사람이 뱀처럼 간악한 오토놈에게 다시 빠질리 없잖아요. 캐붕도 캐붕이지만 뭣보다도, 그렇게 되면 데이트폭력 미화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안 돼요. 범죄수준이라고요. 꼭 연인끼리 주먹이 오고가야만 데이트폭력이 아니에요. 오토처럼 안나를 거짓으로 기만하고 manipulating하는 것도 데이트폭력입니다!

2019년 5월 현재는 <슈피리어 스파이더맨>이 5편까지 나온 상황이에요. 이슈 5개면 이번 시리즈를 평가하는데 충~분한 분량이죠. 솔직히 말해서 이 시리즈는 '일단' 시작을 했다면 그렇게 선택지가 많지 않습니다. 주인공 오토 옥타비우스는 부정할 수 없는 악인이에요. 닥터 옥토퍼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빌런 시절은 물론이거니와, 눈가리고 아웅하던 자칭 히어로 '슈피리어(2013년)' 시절도 모두 악인입니다. 이 두 모습을 넘어서 오토가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번 시리즈 내내 주인공에게 단죄가 이루어져야 해요. 이번 시리즈에서 옥파이디는 절대 '쿨한' 사람으로 나와선 안 됩니다. 현재의 옥파이디를 '쿨한' 캐릭터로 묘사하는 순간, 자칫 지난 악행들도 '쿨하게'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요. 오토는 끊임없이 실패하고 좌절하고 절망해야 합니다. 이전 시리즈에서 '쿨하게' 보여졌던 치밀한 계획력과 고집스러운 신념 등은 단순한 플롯장치이자 우스꽝스러운 희화화 요소로 쓰여야 하고요. 크리스토스 게이지가 오토 옥타비우스를 무척 좋아한다는 거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작가가 작품을 위해 팬심을 꾹꾹 억누르고 오토를 망가트려야만이 진정으로 오토가 빛날 수 있다고 단언해봅니다. 게이지, 할 수 있겠어?

<슈피리어 스파이더맨>(2018~) #3

안나 마리아는 처음에 오토를 경찰에 넘기려고 했지만, 타이밍 좋게 샌프란시스코를 침공한 슈퍼빌런을 오토가 온몸 던져 막아내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꿔 먹기로 해요. 오토가 샌프란시스코 유일의 슈퍼히어로로서 최선을 다하는지를 자기 자신이 감시 감독하겠다고, 조금이라도 선을 넘으면 곧장 신고해버릴 거라고 말하지요. 과연 오토는 처음의 다짐을 지킬 수 있을까요? 정말로 진실된 영웅이 될 수 있을까요?

<슈피리어 스파이더맨>(2018~) #3

오해든 실수든 분명 안나와 오토 사이에 갈등이 생기겠죠. 사실 저는 그것보다는 안나 마리아가 단순히 오토의 '양심의 목소리' 역할을 넘어 극을 이끌어가는 액티브한 서포트캐릭터로 활약해줄 수 있을지가 더 궁금합니다. 아무튼간 지켜볼 일입니다. 코스믹 안나 마리아가 나오기만을 기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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