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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나연 Aug 16. 2019

스파이더 그웬 고찰: 박제가 되어버린 그웬을 아시오?

스파이더 그웬 코스튬은 여성차별적?

죽음의 순간에 박제된 그웬 스테이시

아메코믹, 유구한 여혐의 역사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팬덤의 노력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개봉 직전, 여기저기서 티저, 스틸컷, 해외포스터, 프로모션 짤들이 쏟아지던 2018년 말에, 프랑스판 포스터 하나가 예기치 못하게 트위터에 불씨를 지폈습니다.


"흑인이라 검은색? 여자라서 핑크색?"


몇달 전에 트위터에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가 아는 '기본형'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는 빨강과 파랑의 컬러를 쓰고 있는데, 그에 비해 '파생버전'인 마일즈 모랄레스와 그웬 스테이시는 검정과 핑크를 쓰고 있다는 부분에 주목하면서. "1)마일즈가 흑인이라서 검은색을 쓰고2)그웬이 여자라서 핑크를 쓴 거 아니냐?라고 의문을 던졌습니다. 인종과 성별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냐 이거지요. 오늘 포스팅에서는 이 이야기를 자세히 나눠보고 싶습니다.

마일즈 모랄레스의 크리에이터 중 한 명인 사라 피첼리의 인터뷰

사실 마일즈 모랄레스가 흑인이기 때문에 검은색을 쓴게 문제가 되지 않느냐? 라는 질문에는 정말 쉽게 반박할 수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50년 역사에 수도 없이 많은 파생버전이 나와있는 상황입니다. 오리지널 피터 파커의 수트가 빨강 파랑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 색상만 써야하는 이유는 없잖아요. 착용자가 누구냐에 따라, 수트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다양한 시도와 변형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수트의 착용자가 백인이든 흑인이든 상관 없이, 검은색은 통상적으로 자주 쓰이는 색상이라는 점을 가장 먼저 들고 싶어요.

마일즈의 코스튬 디자인에 마일즈의 피부색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판가름하려면, 2011년 무렵의 마일즈의 코스튬 제작 배경을 살펴봐야할 것 같습니다.


작품 외부적으로 봤을 때, 코스튬을 디자인한 펜슬러 사라 피첼리의 인터뷰에서 마일즈에 대한 썰을 풀어주는 걸 찾았는데요. 기획 초반에는 편집부가 오리지널 스파이더맨(빨강파랑) 디자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쪽을 원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진행해나가면서 검정색이라는 요소가 크게 자리를 차지하게 됐는데. 검은색은 피첼리가 생각하기에 마일즈의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고 언급했어요. 피첼리가 마일즈의 코스튬에 검정색을 원했던 이유는 두 가지예요. 첫째, 좀더 공격적이고 사나운 인상을 주기 때문에. 둘째, 적들이 눈치채지 않고 벽을 기어다니려면 어두운 색일수록 더 좋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검은색을 채택했다는 거죠.


작품 내부적으로 봤을 때에도 마찬가지예요. 피터 파커의 오리지널 코스튬(빨강파랑)은 피터가 15살에 TV출연/엔터테이닝을 위해 직접 제작한 옷입니다. 쪼꼬미 고딩의 유아틱한 취향이 적나라하게 반영됐다는 뜻이에요. 반면 마일즈 모랄레스의 코스튬은 쉴드의 닉 퓨리가 선물한 거예요. 어른이 제작한 옷이니만큼 실용성을 중요하게 고려했으리라는 점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마일즈의 코스튬 디자인에 마일즈의 피부색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느냐? 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어요. 설령 그 질문에 "맞다"라고 대답하는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마일즈가 흑인이기 때문에 검은색을 선택한거라고 하더라도, 그게 왜 문제가 될까요? '나'라는 사람을 규정짓는데에 인종정체성 또한 크게 작용하는 법입니다. 점차 주체성을 확립해나가는 청소년 나이인 마일즈가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에 당당하게 표명하는 수단으로 검은색 코스튬을 선택할 수도 있는 법이죠. 이마저도 문제가 된다면, 흑인이 검은색 수트를 입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면 영화 <블랙 팬서>는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피부색 하나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자세가 인종차별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의견을 대충 요약해서 트윗 작성자에게 전달했더니, 인종차별이라는 부분은 인정하고 글을 삭제하시더라구요. 하지만 글쓴이는 그 뒷부분, 그웬에게 쓰인 핑크가 여성차별적이라는 주장은 굽히지 않고 이상의 대화를 거부했습니다. 그웬이 여자이기 때문에 핑크를 썼으며, 그러한 캐릭터 디자인은 여성혐오라는 것이에요. 이쯤되니 이 글이 어떻게 갈지 예상이 되시겠죠.


스파이더 그웬의 '핑크' 코스튬은 여성혐오적일까?

(좌)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스파이더 그웬, (우) 원작 코믹스의 스파이더 그웬

처음에 트위터에서 이 의견을 봤을 때 '무슨 개소리냐'며 흥분하고 씩씩대며 전쟁터에 뛰어들었던 저이지만, 이번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이성적으로 꼼꼼히 따져볼 수 있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여자=핑크라는 도식을 경계하는 이유는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어려서부터 그런 경험이 한두번씩은 있었을 거예요. 핑크는 "공주색"이고 "여자색"이라는 태그가 붙어있어서, 공주답게 꾸미지 않은 여자애가 핑크를 좋아하는 건 주제넘은 짓이며, 그렇다고 또 여자로 태어나 핑크색을 좋아하지 않으면 진정한 여자가 아니라는, 그런 괴상하고 모순적인 말을 들으며 우리는 자라났습니다. 좋으나 싫으나 우리 사회에 핑크와 여성성의 긴밀하고도 강제적인 유착관계는 실재합니다. 이에 관해서 제가 전문적으로 딱딱 따져가며 말씀드리기는 어려워요. 기존에 좋은 글들이 수도 없이 많으니(예1) (예2) (예3) 참고해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그래도, 제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일화를 하나 말해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저는 아동복 코너 근처에서 근무를 하면서 유모차를 타고 다니는 갓난아이들을 볼 일이 많아요. 그런데 몇날 며칠 가만 보니까, 남자아이들은 머리에 아무런 장식도 달고 있지 않은 반면에, 여자에들은 백이면백 항상 핑크색 머리띠, 핑크색 헤어밴드, 핑크색 헤어핀을 달고 있더라구요. 왜 그런가 조금 알아보니까, 그런 장신구를 달아놓지 않으면 사람들이 멋대로 아들인 줄 알고 착각한다고, 그게 싫어서 엄마들이 일부러 티를 내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 아이는 그냥 본연의 모습으로 있을 뿐인데 남자로 오해받는 일이 많다는 거죠. 핑크색 장신구는 "우리 애는 여자예요"라는 일종의 신호였던 거예요.


저는 이 현상을 보고서 "남자아이는 남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뭔가를 할 필요가 없는 반면, 여자아이는 여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부가적인 노력(즉, 핑크색 장신구)을 해야 한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간단하게 수식으로 비유를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여자아이를 x로 남자아이를 y로 둔다고 생각해봐요. 만일 여자와 남자가 동등한(x=y) 사회라면 x-y=0가 돼야겠죠. 하지만 지금 제가 관찰한 현상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x-y의 값으로 핑크색 장신구라는 나머지값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핑크색이 문제가 된다면, 이런 의미에서 문제가 되는 거겠죠.


물론!! 이건 우리 사회의 아주 작은 단면만을 관찰해서 아주 얄팍하게 비유한 것뿐이에요. 실제로 현실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죠. 남자도 남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노력치들, 맨박스가 존재합니다. 농담삼아 '성차별초코'라고 부르는 킨더조이 장난감을 떠올려봐요. 남아용에는 파란색을, 여아용에는 핑크색을 내걸어서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았죠. "남자애는 이런 장난감(자동차, 로보트)을 좋아해" "여자애는 이런 장난감(인형, 꽃장식)을 좋아해"라고 강제하고 있어요. 그러라는 법은 절대 없는데도요. 결국 페미니즘은 궁극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핑크색 장신구와 같은 불필요한 잔여물, 허구의 여성성을 타파하자고 주장합니다. 


이의 연장선으로 '그웬의 핑크 코스튬은 여혐이다'라는 주장을 이해해보면 어때요? 오로지 남자인 스파이더맨과 구분짓기 위해 여자인 그웬에게 '핑크'를 넣은 거라면? 그웬이 어떤 성격인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는 전혀 관계 없이, 오로지 여자이기 때문에 '핑크'를 부여해준 거라면? 그웬을 '여자'라는 프레임에 가둬놓고 캐릭터가 가진 잠재력에 한계선을 긋게 되는 일이 아니겠어요? 그래선 안 되죠.


스파이더 그웬의 크리에이터 중 한명인 로비 로드리게즈의 디자인

그러면 위의 마일즈와 마찬가지로 검증을 해볼까요. 실제로 그웬 스테이시의 스파이더우먼 코스튬 디자인 과정에 그웬의 성별이 정말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봅시다. 스파이더 그웬의 코스튬 제작 배경입니다.


2014년에 로비 로드리게즈의 디자인이 선공개 됐을 그 당시의 반응을 돌이켜보면 정말이지 충격적이었어요. 스파이더 그웬의 정면, 측면, 뒷면 디자인 짤이 딸랑 한 장 떴을 뿐인데, 엄청나게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졌죠. 프로 아마추어 할 것 없이 각종 팬아트가 우수수 쏟아져서 그야말로 스그웬 풍년이었습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영화에서 '엠마 스톤'이 열연해준 덕분에 그웬 스테이시의 팬덤이 온고잉으로 탄탄하게 갖춰진 차에, "그웬이 거미에 물렸다면 어땠을까?"라는 간단하고도 매력적인 발상과 멋들어진 디자인이 합쳐져 폭발적인 시너지를 발휘한 거예요. 로비 로드리게즈는 매 인터뷰마다 스파이더 그웬의 코스튬 디자인에 대해 질문을 받아왔는데, 그중에 몇가지 답변을 가져왔습니다.


구상 첫단계에서 글작가에게 지시받은 것은 단 두 가지. 
1)신비로운 분위기로 
2)"스파이더맨의 여자친구/여동생"처럼 보이지 말 것! 

후드와 마스크를 동시에 접목 "그 안에 누가 있을지 알 수 없는" 느낌을 풍긴다

반복해서 그리기 편하게 최대한 단순한 디자인으로(미니멀리즘) 

전통적인 스파이더맨 컬러(빨강&파랑)는 피하고 스트리트 의상의 분위기로 마젠타, 민트, 흰색을 선택 

검은색은 아티스트 '알렉스 토스'의 영향을 받았다

인터뷰를 봐서는 최소한 디자인 의도에서는 '여성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핑크를 선택했다는 말은 전혀 없죠. 무엇보다 원작 코믹스는 핑크가 아닌 '마젠타'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코믹스를 읽어보아도 진한 자주색에 가까운 톤을 보이고 있어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애니메이션의 경우도 공개된 트레일러나 스틸컷에서는 마찬가지로 자주색을 띠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판 포스터에 어떤 보정이 가해졌기 때문에 유독 밝은 핑크빛을 띠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스파이더맨은 독자적인 서사를 갖고 있는 파생캐릭터들이 특히나 많은 편이라서 독립적으로 '스파이더 부서'가 마련되어 굴러가고 있을 정도인데요. "단순히 그웬이 여자이기 때문에 핑크색을 부여받았다"라고 한다면 과연 다른 거미 여캐들은 어떨지 둘러보는 것도 일정부분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오리지널 스파이더맨과 가장 닮은 '스펙타큘러' 코스튬을 입고 있는 "스파이더걸" 메이데이 파커는 은퇴한 중년 피터의 뒤를 이은 딸내미라서 더더욱 그 정체성을 그대로 물려받은듯한 외형을 갖고 있어요. 

"스파이더걸" 아냐 코라존 피터의 '심비오트 블랙수트'와 유사한데, 캐릭터 설정상 피터 파커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어요.

 "스파이더링" 애니 파커는 가장 최근에 디자인된 캐릭터인데, 피터의 딸이긴 하지만 피터와 어깨를 나란히 함께하는 가족 히어로 컨셉이기 때문에 피터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검은색과 파란색이라는 신선한 컬러링을 띠고 있습니다.

 "실크" 신디 문은 검은색 흰색에 포인트컬러로 빨강이구요. 

오리지널 "스파이더우먼" 제시카 드류는 빨강, 검정에 포인트컬러로 노랑을 갖고 있습니다.


아까는 오리지널 남캐인 피터 파커와 비교해 봤을 때 스파이더 그웬의 핑크 컬러링이 여성차별적일 수도 있겠다고 읽어냈죠. 이제 다른 스파이더우먼&걸들과 함께 보면 어때요? 아직도 핑크가 여성차별적으로 느껴지시나요? 여러 여캐들의 디자인에서 어떤 공통적인 성차별적 색채쓰임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그웬만이 단순히 여자이기 때문에 핑크를 부여받은 거라고 느껴지세요? 저는 "아니다"라고 생각해요.

남녀평등을 위해, 강제된 여성성을 타파하기 위해 여자에게서 핑크를 분리해내려는 작업은 분명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여성성을 강제한다고 보기 어려운 그웬의 핑크에게서까지 여성성을 찾아내려는 건, 본래 목적에 정확히 반대되는 일로, 핑크와 여성성을 오히려 합치한다는 거지요. 핑크라고 해서 무조건 여성혐오라고 기계적으로 낙인 찍고 밀어낼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번 논란에 '핑크'라는 색상뿐만 아니라 상체에 검은색의 뾰족한 디자인마저도 '바니걸' 등이 떠오르게끔 가슴을 강조하는 섹슈얼한 디자인이라고 비판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는 이부분은 정말 백번 양보를 해도 동의할 수가 없겠어요. 그웬의 코스튬은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 뒷면까지 전부 통짜로 이어집니다. 날카로운 거미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인데, 트위터의 M군님께서 이걸 풀어서 그려주셨어요. M군님의 말마따나, 정말 얼마나 천재적입니까? 저는 이렇게 도면으로 펼쳐서 보기 전에도 거미의 날카로운 이빨과 다리를 떠올리고 명백하게 '스파이더'계열의 캐릭터답다고 느꼈는걸요. '바니걸' 운운은 지나치게 과도한 연상작용이라고 생각하고, 비판을 위해 비판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는 의견입니다.


스파이더 그웬의 코스튬을 디자인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자면. 로비 로드리게즈는 그웬을 비롯한 여캐들을 노골적으로 성적대상화한 스케치 커버로 어그로를 끌었던 프랭크 초에게 "내 새끼를 갖고 더러운 그림을 그리다니, 내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라고 직접적으로 비판할 정도로 여성캐릭터의 쓰임에 기민한 감각을 지닌 작가예요. 아래 인터뷰를 보면 라투어와 로드리게즈가 스파이더 그웬을 구상하고 디자인할 때 얼마나 고심을 했는지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Q. 피터 파커를 첫 이슈에서 발빠르게 퇴장시킨 것은 로맨틱 요소를 의도적으로 제거한 것이었나?
A. 우리는 기존에 그웬이 언제나 '플롯상의 전환점' 정도로만 치부됐던 기존의 시리즈를 완전히 반전시킨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피터를 그웬의 플롯상 전환점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우리 책을 읽는 팬들이 혹여나, 그웬과 피터가 사귈까, 피터-그웬-엠제이가 삼각관계를 가질까 예상하는 것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우리 책은 <아치코믹스> 따위가 아니다. 우리는 그웬이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기를 바랐다. 이건 그웬만의 솔로북이니까.
Q. 코스튬 디자인이 그런 방향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성적인 요소를 부각하지도 않았고.
A. 디자인 자체는 심플하다. 계속 반복해서 그려야 하는데 짜잘한 거미줄 무늬를 그리느라 손이 느려지는 것이 싫었다. 그래도 마음에 든다. 심플하게 간다고 해서 코스튬을 성적대상화하진 않았으니까. 나는 남자들이 여성히어로들을 핀업걸처럼 그리려고 하는 걸 보면 참 괴상하게 느껴진다. 코스튬이 마치 바디페인팅이라도 되는 양, 가슴골을 찐하게 부각시켜서 물리법칙에 어긋나도록 그려대는 꼴이 참 그렇다. 그래도 내가 본 대부분의 팬아트들은 캐릭터의 본질을 잘 잡아서 멋지게 녹여내줬다.

이런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단순히 '그웬이 여성이기 때문에' 그웬에게 핑크 혹은 마젠타를 부여할 일은 결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와서도 "아니다. 그웬의 핑크는 분명히 스테레오타입으로써 여성혐오적으로 읽을 수 있다. 나는 좋게 못 본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뭐, 그럴 수도 있죠. 사람마다 생각은 다 다르니까요. 디자인만 봐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 디자인에 어떤 의의가 있었는지, 왜 이 디자인이 그렇게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그웬 스테이시라는 캐릭터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도록 해요.



박제가 되어버린 그웬 스테이시를 아시오?

캐릭터 위키를 제공하는 코믹스 커뮤니티 코믹바인(ComicVine) 사이트에 그웬 스테이시를 검색하면 나오는 설명은 고작 두 줄뿐입니다.

"피터 파커의 첫번째 진정한 사랑. 그린 고블린에 의해 브루클린 다리 위에서 떨어져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것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있다. (The first true love of Peter Parker. She's best known for her tragic death by being thrown off from the Brooklyn Bridge by the Green Goblin.)"

우습죠. 그웬에 대한 설명이라고 해놓고 정작 문장을 채우고 있는 건 '피터 파커'와 그의 악당 '그린 고블린' 뿐이니까요. 그웬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격인지, 살아생전 어떤 일을 겪었고 무엇을 꿈꿨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습니다. 화나죠. 근데도 누가 저보고 그웬에 대해 설명하라면 이보다 더 잘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게 끝이에요. 얼마나 우습습니까? 마블 코믹스 그웬 스테이시란 이정도의 위치에 불과했습니다. 피터 파커의 비운의 연인. 끝.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21 '그웬 스테이시가 죽은 밤'

그도 그럴 것이, 그웬이 사망한 코믹스가 발매된 년도는 1973년. 그웬이 처음 모습을 보인 게 1965년이니까 등장한지 겨우 8년만에 사망했군요. 솔직히 그 옛날에 여자 캐릭터를 쓰면 얼마나 잘 썼겠습니까. 그것도 슈퍼히어로의 일반인 걸프렌드라는 서포트 캐릭터인데요. 기껏해야 damsel in distress, 주인공에게 이중생활에 대한 스트레스와 도덕적 갈등을 부여해주는 지고지순한 순애보 여인이죠. 그런데다가 뭐 제대로 된 서사가 쌓이기도 전에 (극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늘 비껴서있어야 하는 서포트 캐릭터에게 8년은 굉장히 짧은 시간입니다) 죽어버렸으니 그웬의 인생이라고 말할만한 게 없을만도 합니다. 그런데도 왜 그웬 스테이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까요? 그웬의 사망 이후 45년이나 지났거늘, 지금까지 널리 사랑을 받은 이유가 뭘까요?


죽음으로써만 기억되는 캐릭터라니, 참으로 씁쓸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동네 인간들은 그웬을 한 명의 캐릭터로써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사건으로써 사랑하거든요. '그웬'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웬의 죽음'을 사랑하는 겁니다. 구글에 death of Gwen Stacy라고 검색해보면 정말 상상을 초월할만큼 많은 수의 작가들이 (프로 아마추어 불문하고) 그웬의 사망 순간을 그려낸 것을 볼 수 있어요. 그웬이 살아있는 그림도 있다고요? 그러면 십중팔구 그웬이 죽었을 때 입었던 착장, 민트색 코트+보라색 치마+롱부츠 차림일 겁니다. 일러스트 뿐만 아니에요. 극중 피터 파커가 '그웬을 향한 이루지 못한 사랑'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되새길 때마다 오퍼시티 60으로 배경에 아른거리는 장면으로 삽입되기 일쑤입니다. 각종 커버 일러스트와 회상장면 등지에서 그웬은 계속해서 죽음을 반복합니다.


(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975) #144 / (우) <왓 이프? 인피니티 - 다크 레인> (2015) #1

시체 상태로 들먹이기만 하면 다행이게요. 이놈의 코믹스는 뻑하면 관뚜껑을 열어서 그웬을 되살립니다. 그리고 다시 죽여요! 그웬에게 뭔가 이야기를 부여해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분명 죽었던 네가 어떻게 살아있어?!"라고 주인공에게 고난과 혼란을 주는 목적으로요. (그웬의 복제인간 클론의 형태로 재등장하는 식입니다.) 거기다가 인피니티 건틀렛을 손에 넣은 그린 고블린이 그웬이 목이 부러지는 순간을 무한정 반복해서 피터 파커에게 무한대의 고통을 선사한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당사자 그웬이 어떻게 되든 알 게 뭐야. 어디까지나 그웬은 철저하게 피터 파커의 서사를 위한 도구로만 쓰일 뿐입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004) #512 '과거의 죄'

그웬 스테이시가 아버지를 여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피터와 잠시 헤어져 런던에 다녀왔던 일이 있었는데요. 금세기 최악의 코믹스 '과거의 죄'에서는 이때 그웬이 노먼 오스본과 정을 통해 쌍둥이를 임신해서 비정상적인 출산을 한 적이 있다는 끔찍한 썰을 풀고 있습니다. 그웬은 수십번 목숨을 잃는 것도 모자라서 순결(우-웩)까지, 피터에게 고통주기 위해 모든것을 착취당하는 입장이었어요. 이 코믹스는 진짜 모두가 끔찍이도 싫어하고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싶어하지만, 캐논은 캐논이거든요. 그웬이 이런 과거를 갖게 됐다는 게 사실인데요. 더럽고 역겨워서 진짜. 야이 개새끼들아!

<클론 컨스피러시> (2016) #1 '내가 죽었던 그날 밤'

코믹스가 원래부터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실현시키는 동네라고는 하지만, 이정도로 잔인할 필요가 있나 묻고 싶어요. 가장 최근에는 그웬이 사실 죽기 직전 브루클린 다리 위에서 정신이 깨어 있었으며, '아버지의 살인범'으로 그토록 미워하던 스파이더맨이 사실은 사랑하는 피터 파커라는 것을 깨달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설정을 추가합니다. (정발구매링크)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016) #23 '네가 아는 바로 그 순간'

솔직히 이거 읽을 때는 살짝 희망을 품어봤어요. 여태까지랑은 다르게 이때 부활한 클론 그웬은 '진짜 그웬'이 가졌던 정신과 기억을 모두 지니고 있었거든요. 피터 입장에선 N년만에 살아있는 그웬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요. 정말 어마어마한 포텐셜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몽땅 날려버렸지만요.


이때마저도 그웬은, 죽기 직전에 피터의 정체를 알고 배반감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피터를 향한 사랑을 거둔 적은 결코 없었으며, 피터가 정체를 숨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자신이 진짜 그웬 스테이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피터에게 기습키스를 합니다. 와~~~~ㅋㅋㅋ 미친~~~~~~ㅋㅋㅋㅋ 개구려~~~~~~~~ㅋㅋㅋㅋㅋ 성녀 모티프까지 가지가지하죠 진짜? 그웬이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떳떳하게 터놓고 말하는 장면이 얼마나 될까, 아마 이게 최초가 아닐까 싶은데, 이마저도 피터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좀 보세요. 그웬이 자기 의지로 말하고는 있지만 결코 그웬의 이야기를 하고 있진 않다는 게 느껴지시나요?

그렇습니다. 원작 코믹스의 그웬 스테이시는 어디까지나 주인공을 위한, 주인공에 의한, 주인공의 여자일 뿐이에요. 그웬 스테이시의 삶에 피터 파커를 빼면 그 값은 거의 제로에 수렴할 정도네요. 캐릭터는 죄가 없습니다. 그웬은 착하고 사려깊고 상냥하고 용감하고 똑똑한 사람이에요.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는데. 작가들이 개자식들이지.

<스파이더맨: 블루>(2003) #6

이렇게 쭉 살펴보니 이 바닥에서 그웬을 다루는 방식이 2003년에 나온 <스파이더맨: 블루>의 감성과 딱 맞닿아있는 듯합니다. (정발구매링크) 피터가 이토록 꿉꿉한 마음으로 그웬을 추억하며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간직하고 있듯이 팬들도 그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가여워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팬들이 그웬을 사랑하고 추모하면 할수록 그웬은 자신만의 서사를 부여받지 못하고 이용만 당할 뿐이에요.


남성팬들에게 그웬은 이보다 더 좋은 여캐가 또 없을 정도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남성팬들이 자기 자신을 이입할 수 있는) 남자주인공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여자. 좋을대로 위기에 처해서 주인공 영웅을 돋보이게 해주는 여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사망해서 사실이 발각될 일도 비난받을 염려도 없는 여자. 현재의 나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여자. 과거의 시간에 박제되어 영원토록 변치않는 아름다운 추억으로써의 여자.

<올 뉴 캡틴 아메리카 스페셜> (2015) #1 '인휴먼 에러'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은 욕망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그것을 방해하는 대상과 맞서 싸우는 법입니다. 욕망이 클수록 방해가 거세지고, 방해가 거세질수록 욕망하는 것의 가치가 커지죠. 피터 파커가 욕망하는 것을 ‘그웬과의 사랑의 성취’라고 본다면 그 둘 사이에 일개 인간이 결코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우주의 법칙이 자리함으로써, 그웬은 결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화신으로 승화되어서 궁극의 가치를 갖게 되겠죠. 피터는 그웬을 되살릴 수도 없고 죽은 그웬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달할 수도 없지만, 그웬에 대한 죄책감을 히어로일을 계속하는 것으로 속죄하려고 해요. 피터가 아무리 노력해도 욕망을 이룰 수 없지만, 그럼에도 '스파이더맨'이라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함으로써 얻어지는 비장미가 어마어마하죠. 그래서 그웬의 죽음이라는 이야기화소가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을 거예요. 다만 그웬은 이 이야기에서 욕망의 '대상'으로서만, 객체로서만 자리할 뿐이라는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21 '그웬 스테이시가 죽은 밤'

결과적으로 '메인 유니버스'의 그웬 스테이시는 1973년 사망한 그 순간에 캐릭터성이 완벽하게 박제되어서 어떻게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비운의 캐릭터라고 정리해봅니다. 메인 유니버스의 그웬은 40년 전에 생명력을 다했습니다. 잔인하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엣지 오브 스파이더버스> (2014) #2

그런데 사상 최초로 그웬에게 목소리를 부여해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스파이더 그웬의 등장입니다! 피터 파커에서 탈피한 그웬만의 이야기. 스타일리쉬한 아트스타일과 어썸한 코스튬 디자인으로 힘을 더해서 그웬의 데뷔 53년만에 솔로 타이틀을 얻었어요. 그웬이라는 캐릭터에게 있어서 스파이더 그웬 코스튬은 그야말로 생명의 은인입니다. 평행세계에서나마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아 독자적인 이야기를 꾸릴 수 있게 됐다구요. 몇 번이고 죽다 살아난 끝에 드디어! 객체 아닌 주체로서 무엇을 욕망하는지, 그웬에게 어떤 것이 결핍되어 있는지, 그웬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말할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가요? 얼마나 뜻깊은가요? 고생 끝에 얻어낸 여성서사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해요.

크레딧: 데비앙아트 @BloodySamoan

위 그림은 스그웬 캐릭터의 아이디어를 맨 처음 제안했던 작가 댄 슬롯이 구상했던 '스파이더 그웬'의 코스튬입니다. 그웬이 죽었을 때 입었던 코트와 부츠를 그대로 가져온 디자인. 정말 게으르기까지 한 발상입니다. 그웬 스테이시가 죽음이라는 사건에 못 박혀 발전하지 못하는 캐릭터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제일 유명하니까, 팬들이 그걸 제일 좋아하니까"라고만 생각한 디자인이죠. 최종완성본으로 나온 것과 비교해보면 어떠세요? 무엇이 더 스테레오타입에 가까운 디자인인가요? 무엇이 더 비판 받을만 한가요?


만일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아직도 스파이더 그웬 코스튬의 '핑크' 혹은 '마젠타'가 여성혐오적 시선에서 부여된 색상인 것 같다면, 이 사실을 함께 고려해주세요. 그웬이라는 캐릭터가 당해야만 했던 수난의 역사를. 그리고 이 코스튬이 그웬에게 선사한 무한한 기회를! 설령 그웬의 '핑크'가 여혐적 요소라고 하더라도, 그게 그렇게까지 문제가 될까요? 이렇게나 의미가 깊은 코스튬인걸요. 여성캐릭터라고 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끊임없이 상기해야 합니다. "개선점이 있다" 의 느낌으로 애정어린 비판을 하는 것 정도야 나쁠 게 없겠죠!



아메코믹, 유구한 여혐의 역사

90년대 이전 리드 리처즈, 행크 핌, 피터 파커가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장면

예술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마블코믹스' 한 회사만 보더라도 7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데, 작품이 발매됐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페이지에 옮겼던 것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져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데도, 그때로 말할 것 같으면 장애인과 동성애자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며, 아내와 아이들은 매를 맞고 길들여졌던 시기입니다. 가장의 폭력은 그럴듯한 이유만 붙어 있다면 '거친 남성미'나 '솔직하고 인간적인 감정 표현'으로 정당하게 그려졌죠. 소위 '빻았다'라고 할만한 묘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좌) 코믹스놈들의 극진한 가슴 사랑 / (우) <앨리어스> (2001-2003) 제시카 존스가 빌런 퍼플맨에게 성적학대를 당하는 장면

미투 파동을 보시면 이 문제가 단순히 십년 이십년 전만의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여전히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시대는 바뀌었지만 변화는 느리게 찾아옵니다. 코믹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하게는 겉모습-코스튬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여성캐릭터를 다루는 방식까지... 60년대부터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가장 최근에 이르러도 코믹스는 결코 남녀차별에 떳떳할 수 없는 장르입니다. 

(좌) 스파이더우먼 마나라 커버 비교 / (우) 코믹스 여캐 대상화를 없애는 방법

똑같은 쫄쫄이 코스튬이더라도 묘사하는 방식이 남녀 간에 크나큰 차이가 있어요.스파이더우먼 파워걸 남캐의 신체는 "강인함"을 어필하는 반면 여캐의 신체는 여캐가 아무리 강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성적 매력"을 어필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코믹스를 만드는 사람들부터 그것을 읽는 주요 독자층까지 전부 남자가 주류였다는 점이 크게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성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니까,바디페인팅에 가까운 쫄쫄이로 몸매를 부각시켜서 그리는 건 당연하다는 식입니다. 남성캐릭터들은 비교적 이런 부분에 있어 자유로웠던 반면, 유독 여성캐릭터만 자기 자신의 성격과 가치관을 표현하기 이전에 오로지 보는 사람을 위해서 선정적인 옷을 입고 가슴과 엉덩이와 곡선미를 강조하는 자세를 취해야 했어요. 하지만 팩트는 1)남성만이 코믹스 소비를 독차지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으며 2)저를 포함한 여성 독자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고 3)코믹스를 만드는 회사는 응당 남녀독자 모두를 감안해서 니즈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성캐릭터에게 남자캐릭터와 동일한 기회를 주고 동일한 대우를 해주는 것. 그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해요. 남팬과 다를바 없이 똑같은 값을 내고 코믹스를 사서 보는 소비자로서 하고 싶은 말은 해야되지 않겠어요.

그래요. 코믹스 문제 많은 거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굳이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 혹시나 제가 '그웬 핑크=여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를 무조건적으로 마블을 후빨하는 멍청한 쉴더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까 싶어서 하는 소립니다. (실제로 그런 말을 듣기도 했구요.) 제 블로그를 조금만 둘러보시더라도 아시겠지만, 저는 코믹스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증오해요. 게으름이든 실수든 간에 어떤 렌즈에 투과되어 폭력과 차별이라는 소재가 마땅히 지양해야하는 방향으로 그려질 때 너무 화가 나죠. 하지만 동시에 코믹스를 사랑하니까, 열렬하게 읽으니까, 더욱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해나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거고, 이런 글을 쓰는 거예요. 이런 마음을 가진 팬들은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그린 랜턴> (1994) #54 "냉장고 속 여자"의 탄생

'주인공을 엿먹이기 위해 주인공의 여자친구를 토막살인해 냉장고에 채워넣는다' 따위의 스토리가 만연했던 충격과 공포의 1990년대. 이때 사망한 여캐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우받기보다 주인공의 슬픔과 분노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트리거로만 기능하고 있죠. 게일 시몬(Gail Simone)을 비롯한 페미니스트 코믹스 팬덤은 이처럼 "남성캐릭터 서사의 플롯상 도구로써 이용당하고 살해/고문/불구가 된 여성캐릭터"들을 가리켜 냉장고 속 여자(Women in refrigerator)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이름을 붙이고 분류를 시작해 웹사이트에 개제하자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공식에서도 향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리라 약속하는 피드백이 날아들어왔지요. 팬덤의 비판이 코믹스 업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도와준 셈입니다.


(좌) 텀블러 페이지 호크아이 이니셔티브의 활동 (우) 그래픽 디자이너 아로라의 활동

이뿐이 아닙니다.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하기 위해 지나치게 인체를 비틀어 우스꽝스럽기까지한 코믹스 여캐 포즈를 비판하기 위해 탄생한 호크아이 이니셔티브 팬페이지가 있습니다. 늠름하고 안정적인 자세로 착지를 하는 호크아이와 아무 이유 없이 가랑이를 벌리고 몸을 비틀 고 있는 블랙위도우를 그대로 반전만 시킨 것인데, 보고 있자면 정신적으로 상당히 대미지가 크죠. 여캐에게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대상화 표현이 남캐에게는 얼마나 드물게 일어나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최근에 이와 비슷한 미러링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아티스트에 대한 기사가 BBC 코리아에 올라오기도 했어요. 문제가 많은 걸 아니까, 변화를 요구한 거예요.

2015년 "올 뉴 올 디퍼런트" 브랜드의 <어벤저스> #0 커버 이미지

팬덤의 눈물나는 노력에 힘을 입어서 공식도 화답을 해주었습니다. 기존 N십년 동안 마블에서 백인 남성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달라요. 여성, 남성, 헤테로섹슈얼, LGBT+, 코카시안, 아프리칸 어메리칸, 라티노, 히스패닉, 아시안, 네이티브 아메리칸, 카톨릭, 유대인, 무슬림, 성인, 청소년, 어린이, 비인간(공룡!) 등등...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중심 캐릭터들의 풀이 정말로 넓어졌습니다. 대충 "이런 애들이 있다" 정도에 그치지 않고 짧든 길든 솔로타이틀을 내줬다는 것도 어마어마한 의의가 있죠. 다른 캐릭터의 곁다리로 나오는 게 아니라 오로지 그 캐릭터만을 위한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뿐인가요? 마블하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간판급 얼굴마담 캐릭터들을 다양성을 갖춘 레거시 캐릭터들로 교체하기까지 합니다. (레거시 캐릭터: 하나의 코드네임(Ailas)을 공유하며 대를 잇는 캐릭터) 

인종, 나이, 성별, 성지향성, 모든 것이 다양한 구성

2010년대 마블 간판 캐릭터들의 교체 리스트

*솔로타이틀 or 이슈 보유 캐릭터 한정*

2011년 얼티밋 스파이더맨(피터 파커) 사망 ▶ New 스파이더맨(마일즈 모랄레스,男)

2011년 노바(리처드 라이더) 사망 이후 오랜 공석 ▶ New 노바(샘 알렉산더,男)

2012년 호크아이(클린트 바튼) 파트너 동행 ▶ New 호크아이(케이트 비숍,女)

2014년 미즈 마블(캐롤 댄버스) 캡틴 마블로 개명 ▶ New 미즈 마블(카말라 칸,女)

2014년 캡틴 아메리카(스티브 로저스) 노화 ▶New 캡틴 아메리카(샘 윌슨,男)

2014년 토르(오딘슨) 자격 상실 ▶ New 토르(제인 포스터,女)

2015년 헐크(브루스 배너) 능력 상실 및 사망 ▶ New 헐크(아마데우스 조,男)

2016년 아이언맨(토니 스타크) 의식불명 ▶ New 아이언 하트(리리 윌리엄스,女)


캡아, 아이언맨, 토르 등과 같은 핵심 캐릭터들을 교체한 건 정말 큰 의미예요. '이들이 마블의 얼굴이다, 이들이 우리의 현주소다' 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거니까요. 회사는 자본주의 법칙 아래 굴러가니까, 이렇게 판단한 거겠죠. 다양성은 돈이 된다! 자신들의 주머니에 돈을 찔러넣어주는 새로운 독자층을 발굴하고 시장 파이를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입니다. "웬만한건 이미 다 해놓은" N십년의 역사 속에 팬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갈구합니다. 이런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 바람직하죠!

제가 좋아하는 스파이더맨 부서의 책들만 보더라도, 그야말로 "냉장고 속 여자"의 표본이었던 그웬 스테이시가 새로운 옷을 입고 전격 솔로로 나서게 되었으며, 아메코믹에서 절대 흔치 않은 '아시안 여성'인 신디 문도 역시 솔로타이틀을 갖게 됐어요. 신디는 기존의 '페로몬 섹스' 설정이나 '알몸에 가까운 거미줄 코스튬'에서 당당하게 탈피해서 본래의 시공간 바깥에 고립된 청년의 고뇌를 진지하게 그려냈답니다. 오랫동안 '성적대상화'의 산 표본이었던 제시카 드류는 싱글맘 히어로로 출사표를 냈어요. 업계내 "슈퍼히어로는 부모가 될 수 없다"라는 오랜 고정관념을 정면에서 반박한 셈이죠. 출산부터 육아까지 엄마의 일상을 멋지게 녹여내었습니다. 어때요? 정말 멋지죠! 음악에 기민한 20대 여성, 한국계 미국인 여성, 만삭의 아기 엄마가 주인공인 슈퍼히어로 코믹스! 전에 없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독자층을 더 넓혔다구요. 내가 좋아하는 코믹스 속에서 나의 일상과 밀착한 순간들을 경험하는 것...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몰라요.


이렇듯 다양성을 위시한 책들이 의의가 크다곤 해도, 냉정하게 작품의 완성도, 판매성적, 그리고 캐릭터 빌딩의 정교함을 논하자면 아쉬운 부분들이 분명 있습니다. 폭발적으로 늘려놓은 라인업이니만큼 연재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캔슬된 솔타들이 많아요. 마치 "이중에 하나는 좋아하겠지" 라고 마구마구 던져놓고 반응 봐서 조용히 입을 싹 닦는 듯한 느낌으로 말이에요. 영원한 라이벌 DC사가 New52 레트콘을 감행한 이후로 마블은 오랫동안 판매1위를 놓치지 않고 있었는데, 2017년에 그게 오랜만에 뒤집어졌다고 하지요. 어째서 마블이 하락세를 보이느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복잡한 요인이 있지만(추천비디오에세이1 추천비디오에세이2) 최근 마블의 부진을 단순히 다양성을 추구했기 때문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팬보이라는 녀석들은 새로운 걸 원한다고 부르짖다가도 막상 정말로 좋아하는 게 변하게 되면 극도로 반발을 하는 성향이 있거든요. "SJW들이 모든것을 망쳤다!"(SJW: 소셜 저스티스 워리어, 페미니스트를 속되게 칭하는 말, 로컬라이징하자면 프로불편러) 라고 주장하는 '세력'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합니다. 코믹스게이트를 소개합니다.


혐오집단 코믹스게이트와의 전쟁

코믹스게이트는 2013년 게이머게이트의 직계후손입니다. 제가 막 입덕했을 당시 네이버카페와 DC인사이드 히어로갤러리 등의 남초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스파이더우먼' 커버 소동 때에 게이머게이트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 같이 어울리던 분들께서 설명해주시기를 "게이머게이트는 여성게임제작자가 게임평론가와 문란한 성관계를 맺어서 부적절한 이익(그녀가 만든 쓰레기 게임에 대한 과대평가)을 얻었던 사건"이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게임을 그렇게 자주하는 사람도 아니고, 게임 커뮤니티에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을 뿐이에요. 하지만 알고보니 사정이 완전히 다르더라구요.


위의 링크를 타고 가서 글을 읽어보시면, 게이머게이트의 팩트는 이렇습니다.

1) 여성게임제작자 Zoe Quinn이 자신의 우울증 경험을 토대로 만든 텍스트 기반의 인디게임을 발표, 다수의 상을 수상

2) 남성위주 게임커뮤니티에서 해당 게임이 '텍스트의 나열'에 불과할뿐 '진짜 게임'이 아니며 과대평가 되었다며 악평

3) Quinn이 여러 게임 평론가들과 문란한 성관계를 맺었다는 전남자친구의 주장 (증거 없음)

4) Quinn의 성생활에 대한 음모론이 널리 퍼지면서 Quinn은 사이버불링의 타겟이 됨

5) 음모론에 불과한 '성접대'가 사실인 양 "게임계 저널리즘의 타락"를 규탄하는 게이머게이트 운동이 시작됨

6) 이 일로 Quinn은 신상이 퍼져 신체적인 위협을 느꼈고, 다시는 게임제작을 할 수 없도록 생계의 위협을 당함


다시 정리하자면 2013년 게이머게이트는 남성의 손에 의해 여성게임제작자와 여성게임평론가가 업계에서 축출되는데 성공한 운동입니다. 게임을 생산하고 평론하고 즐기는 모든 행위의 중심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한 남성게이머들. 그리고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봤던 코믹스 남성독자들이 있습니다. 2010년대에 이르러 간신히 도달한 다양성의 물결 속에서 코믹스 소비의 주축이라는 자리를 빼앗기기 싫었던 그들은 게이머게이트를 그대로 벤치마킹해서 코믹스게이트라 명명하고 안티페미니즘 운동을 전개하는데, 이게 지금 현재진행형인 온라인전쟁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코믹스게이트의 신호탄이 됐던 "모킹버드 티셔츠 사건"

여성히어로가 코믹스 표지에서 고작 "페미니스트" 티셔츠를 입었단 것만으로 작가 첼시 케인의 트위터에 우르르 몰려가 악플을 달고 불링을 한 끝에 작가가 계정을 삭제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2016년에 있었는데, 이게 코믹스게이트의 효시였습니다.


코믹스게이트는 최근 코믹스 업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행보'가 "본디 재미를 추구해야 하는 코믹스"에 불필요한 정치색을 입히고 있다고 주장하며, '프로불편러'(SJW)들이 코믹스 업계에 검열행위를 가하고 있다며 비난합니다. 코믹스 업계가(특히 마블코믹스가) 페미니즘을 포용했기 때문에 코믹스 시장이 죽어가고 있다며 "Make America(n Comics) Great Again"을 외치는 거예요. 뭐 대단한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백인남성인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책이 한 권이라도 적어지는 것이 불만"이라며 징징거리는 사이버불링 팬보이들에 불과해요. 인종차별과 소수자차별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대하면 자기가 레이시스트,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라는 거라고 인정하는 거밖에 더 되나요?


2017년 7월 헤더 안토스의 밀크셰이크 셀피 트윗.

거기에 결정적으로 코믹스게이트를 가시화한 게 바로 2017년 "MakeMineMilkshake" 사건입니다. <스타워즈>와 <그웬풀> 등을 담당하고 있던 마블코믹스 에디터인 헤더 안토스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직장 동료들과 밀크셰이크를 마시는 셀카 사진을 업로드한 적이 있었는데요. 여기에 코믹스게이트 인간말종들이 몰려가 인신공격과 사이버불링을 가한 거예요.


이유는 "여성이 마블코믹스에서 근무하고 있어서"입니다. 이 셀카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어야 하는 코믹스를 여자들이 제작하고 있다는 직접적 증거로써 코믹스게이터들에게 작용했습니다. 여성(fake geek girl)이 코믹스업계에 발을 담구고 있는 것 자체가 남성팬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한 책략에 불과한데, 코믹스에는 관심도 자격도 없는 여자들이 성스러운 코믹스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니 괘씸하다 이거죠. '진짜 팬'인 우리가 나서서 응징을 가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안토스를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도 밀크셰이크를 마신다" 라는 뜻의 해시태그로 연대를 하며 미국 실시간트렌드에 올라가기도 하였습니다.


"헤더 안토스가 맡은 책들은 재미가 없다"까지는 개인의 취향으로 이해할 수는 있어도, "너희 여성들이 감히 코믹스를 만들다니 용서할 수 없다"라니 얼마나 성차별적인 논리입니까. 더군다나 성추행 인신공격 집단테러라니요. 여자들을 팬덤에서 배제하고 여성제작자를 축출하려는 시도라니, 게이머게이트와 판박이죠. 코믹스게이트는 게이머게이트의 공통분모는 혐오집단이라는 거예요.


코믹스게이트의 전반적인 흐름 요약 정리 링크



두 명의 백인 남성 리처드 C. 메이어 에단 반 스키버가 이들 코믹스게이트의 중추 인물들인데요. 리처드 C. 메이어는 'Diversity & Comics'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마블코믹스를 리뷰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는데, 대부분의 영상들이 건설적인 근거 없이 코믹스의 여성제작자들과 여성캐릭터들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자극적인 내용뿐입니다. DC에서 프로 아티스트로 활동했던 에단 반 스키버는 막대한 팔로워를 등에 업고서 은근하게 싸불 좌표를 찍어주는 코믹스게이트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요. 코믹스게이트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 작가들의 블랙리스트를 돌리며 보이콧을 벌이고,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며 고인이 된 유명 작가를 모독하고, 작가의 부인에 대한 싸불을 방조하는 한편, 동양계 여성캐릭터 피규어의 목을 자르는 영상을 찍어 올리는등 그는 여성혐오와 성소수자혐오를 일삼는 인종차별주의자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궤변에 감화되는 남성팬들이 날이 갈수록 많아지며 세력이 확장되어가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그냥 가만히 둘 팬덤이 아닙니다.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인 코믹스 아티스트 빌 신케비치가 코믹스게이트를 촌철살인으로 규탄하는 장문의 글을 업로드한 이후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공식 작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모두가 함께 "코믹스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Comics are for everyone)"를 외치며 혐오집단과 싸워나갈 것을 표명하고 있어요. 이에 따라 메이저 언론사에서도 코믹스게이트에 대한 기사를 써내며 힘을 보태주고 있구요.


워싱턴포스트 코믹스게이트 기사 링크
가디언지 코믹스게이트 기사 링크
폴리곤 코믹스게이트 기사 링크


목소리를 내야 변한다

코믹스는 소위 '빻은' 장르가 맞습니다. 여혐에서 자유롭지 못한 '업'이 있는 장르예요. 하지만 오랫동안 팬덤이 목소리내어 비판한 끝에 시대의 부름에 따라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에 따른 백래쉬로 코믹스게이트가 등장했지만 코믹스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팬덤과 제작자들이 힘을 합쳐 싸우고 있습니다.


스파이더 그웬의 코스튬 속 '핑크' 지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서 이런 저런 증거를 대보며 "그웬의 핑크는 여혐이 아니다"라는 반박을 해보았지만, 코믹스라는 장르에는 이런 식의 비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코믹스게이트라는 족속들이 활동하고 있는 이상, 코믹스가 더 좋은 장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희망이 있거든요. 점점 더 나아질 거라고 말이에요.


길고 긴 포스팅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란에 자유롭게 의견 남겨주세요.


원글: https://blog.naver.com/siddl7/221395966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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