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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나연 Nov 21. 2020

여성들의, 여성들에 의한, 여성들을 위한 마블코믹스

디즈니 플러스 다큐멘터리 <마블 616> 2편 리뷰

<마블 616> 8부작 중 2편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는 캡틴 마블 캐롤 댄버스와 미즈 마블 카말라 칸을 담당한 무슬림 여성 편집자 사나 아마냇과 마블에서 스토리를 쓴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 나일라 매그루더를 비롯한 마블코믹스 업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본 포스팅은 여러가지 여건 때문에 디즈니 플러스를 직접 구독해서 영자막으로 시청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한 소개글이자 간단한 분석글입니다. 이 글에 채 담지 못하는 소중한 이야기들이 본편에 가득 있으니 직접 시청해보시는 걸 적극 추천드려요. (디즈니 플러스 포스팅)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이거 보다가 울었습니다. 아니, 그냥 표현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눈물이 쭈르륵 나서 소매로 열심히 닦았어요. 이게 말이에요. '코믹스를 읽는 여성'이라면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난 슈퍼히어로 코믹스를 너무너무 좋아해!!!" 라고 어디 높은 곳에 올라가서 고래고래 함성을 지르고 싶은 기분이 되어버렸어요. 얼마나 좋았는지 앉은 자리에서 한 번 보고 또 보고! 두 번 연속으로 시청했지 뭐예요. 두 번째 봤을 때엔 중간중간 일시정지를 하면서 노트필기를 꼼꼼하게 했어요. 이 글을 쓰려고요. 어디 한번 어디가 어떻게 감동적이었는지 찬찬히 살펴보도록 할까요.


이 작품은 나레이터가 따로 없이 마블의 여성 직원들의 인터뷰를 교차편집하여 진행되고 있습니다. 찬찬히 제작 과정을 생각해보면 감독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먼저 대강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할지 주제와 틀을 잡고, 인터뷰할 인물을 선정해서 개별적으로 녹화를 진행한 뒤에, 가장 구성진 순서로 코멘트를 잘라서 배치했겠죠? 중간중간 대화에 어울리는 배경음악과 자료화면을 준비하고 말이에요. 즉, 하나하나 모두가 다 감독의 뜻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뜻이에요. 처음 봤을 때에는 이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고 그냥 보면 보는대로 생각없이 받아들면서 다소 혼란스러웠는데, 두 번째로 보니까 어느정도 뭐가 보이더라고요. 얼른 여러분께 그걸 말씀드리고 싶어서 부리나케 포스팅을 쓰는 중이에요.


<마블 616> 2편을 처음 봤을 때 뭐가 혼란스러웠냐면,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시대 순으로 업계 여성들의 활약상과 여성캐릭터의 출판 역사 등을 종합해서 소개하다가 갑자기 중간중간 편집자 아마냇과 작가 매그루더의 개인의 일화를 교차삽입해서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아다리가 안 맞는다고 해야 하나요? 미묘하게 모양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 레고 조각을 억지로 붙여놓은 듯한 기분이 들어서 어색했어요. 그런데 두 번째로 다시 시청하면서 전체 구성을 볼 수 있게 되니까 깨달음이 오던 거 있죠.


저는 작년에 캐롤 댄버스 칼럼을 준비하면서 <She Makes Comics>라는 다큐멘터리를 참고자료 삼아서 시청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동안 괄시되곤 했던 미국만화 역사 속의 여성들의 활약상을 조명하고 의의를 새롭게 다지는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마블 616> 2편을 처음 접했을 때에도 저도 모르게 전에 봤던 그 다큐를 떠올리면서 그와 비슷한 내용과 주제라고 지레짐작 했던 모양이에요. 뚜껑도 열어보지 않고서 냄새만 맡고 착각해버린 거죠. 사실 이 에피소드는 바로 '업계 내 여성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언뜻 <She Makes Comics>와 비슷한 것 같지만 굉장히 달라요. 여성들의 역사가 아니라 여성의 경험에 대한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편집자 아마냇과 작가 매그루더의 개인의 일화가 삽입된 거지요.




슈퍼히어로의 세계에는 '이게 바로 나다'라는 기분이 들게 하는 게 있었어요. 하지만 그 속에는 저처럼 생긴 여자애나 여성은 등장하지 않았죠.
- 무슬림 여성 편집자 사나 아마냇, 오프닝 인터뷰 ①

저는 캐릭터와 나 자신을 동일하게 생각한다는 걸 그다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만약에 그런 게 가능했더라면 제가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네요.
- 흑인 여성 작가 나일라 매그루더, 오프닝 인터뷰 ②

사람들은 나 자신에 대한 요소들을 떠오르게 만드는 캐릭터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 캡틴 마블 작가 켈리 수 디코닉, 오프닝 인터뷰③


에피소드를 처음 누르면 인트로 클립이 나오기 전에 짧막하게 오프닝으로 세 명의 인터뷰를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면 이건 다름 아니라 문제제기예요. 세 명의 발언을 논리적으로 연결하면 이렇게 됩니다. [③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캐릭터에게 끌린다. ②하지만 여성들은, 특히 유색인종 여성들은 그런 걸 느낄 기회가 없었다. ①왜냐면 슈퍼히어로 세계에 유색인종 여성캐릭터는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이다.] 아주 정확하게 비판한 셈이죠.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게 다른 곳도 아닌 마블 본사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간 마블코믹스에 Gender Representation이 부족했다는 점을 콕 찝어서 자기 반성하고 있는 셈입니다.


- 2편 전체 구성 -

1. 문제 제기

2. 문제가 형성된 과정과 이유를 추적

3. 문제에 대한 반성과 개선점을 조명

4. 앞으로의 과제


<마블 616> 2편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의 큰 틀을 분석해보면 위와 같습니다. (1)가장 먼저 "우리(마블코믹스)는 그간 여성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게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라고 도전장이 던져졌어요. 이어서 작품은 (2)1940년대부터 시대별로 쭈욱 여성캐릭터의 묘사와 여성들의 활약상을 당시를 살았던 여성들의 증언과 경험담을 통해 살펴보면서 "대체 어쩌다가 이모양이 된 거냐"라고 과정과 이유를 추적해나가요. 그러는 동시에 최전선에서 마블코믹스의 변화를 실천해나간 편집자 사나 아마냇과 작가 나일라 매그루더의 개인적 일화를 따라갑니다. 인트로 클립이 나오고 에피소드 소제목이 출력된 직후에 나오는 영상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동네를 회상하는 아마냇이 택시에 타고 있는 장면일 정도예요. 그런 식으로 어릴 적 양육환경부터 시작해서 성인이 되어 마블코믹스에 입사해 (3)'처음 제기된 문제에 대한 반성을 담은 개선점'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을요. 마지막 에피소드를 닫으며 (4)앞으로의 개선점을 언급하고 끝맺습니다.

위의 표는 (2)"대체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된 거냐아"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여성을 위한 코믹스가 상대적으로 축소된 이유, 그리고 21세기에 와서 차츰 여성을 위한 코믹스가 확대된 과정에 대해 알려주고 있어요. 그야말로 고인물이 계속 계속 고여서 썩은물이 되다가(마의 90년대^^) 드디어 맑은물이 유입된 생태계를 보는 거 같죠? 앞서 말했듯 이 과정은 모두 당대를 직접 겪었던 여성들의 증언과 경험담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는데요. 어떤 분야의 팬이라면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제작비화이기 때문에 정말 흥미있게 지켜보았어요. 그 중 일부를 소개드립니다.




저는 휴먼 토치를 좋아했어요. (…) 너무나도 멋있잖아요! 그런데 어렸을 때의 저는 슈퍼히어로가 남자아이들을 위한 컨텐츠인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정말 깜짝 놀랐죠. 그도 그럴게, 십대가 되어 사귄 또래 여자아이들은 이런 반응이더군요. "아, 그런건 내 남자친구랑 같이 얘기해. 걔가 코믹스를 좋아하거든." 저는 이렇게 물었어요. "왜 너랑은 이런 얘기를 못하는 건데?" 그랬더니 아주 질색팔색을 하던 거 있죠. "헐, 나는 코믹스 같은 거 안 읽어."
- 마블코믹스 편집자 겸 스토리작가 메리 조 더피 (1954년생)


조 더피는 1970년대에 마블코믹스에서 근무했던 편집자였습니다. 그 당시 업계에는 편집자가 어느정도 경력이 차면 온고잉 솔로타이틀의 스토리작가로 기용해주는 관례가 있었다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 여성인 더피에게는 그런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오죽하면 후배로 들어온 편집자가 더피보다 먼저 스토리작가로 기용됐을 정도였다니 말 다했죠! 그래서 더피는 상사에게 찾아가서 아주 강력하게 본인의 권리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상사는 그제서야 더피의 의견에 수긍하고 "현재 가장 바쁜 작가가 누구지? 클레어몬트? 그가 맡은 것 중에 하나를 가져가서 써봐. 미즈 마블 어때." 라고 반응했다고 합니다. 클레어몬트는 미즈 마블을 너무나도 소중하게 생각해서 빼앗기기 싫어했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더피가 맡게 된 책은 <파워맨과 아이언 피스트>였는데, 거기서 더피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저는 여성 캐릭터를 마치 전염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랫동안 피해다녔어요. 왜냐면 저는 여성 캐릭터를 골라 쓰는 여성 작가로 이미지가 굳어지기 싫었거든요. 그 당시 여성 캐릭터들은 절대 오래 가지 못했어요. 그런 걸 맡아 쓰다간 직장에서 쫓겨날 거 아니에요.
- 마블코믹스 편집자 루이즈 시몬슨 (1946년생)


그때 당시에 저는 그냥 남자들처럼 글을 쓰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아, 제발 남자들 무리에 껴주세요. 나 퍼니셔도 쓰고 울버린도 쓰고 데어데블도 쓸게요." 이런 느낌이었죠. 그러다가 시몬슨이랑 트리아나 로빈스가 사상 처음으로 제게 이렇게 제안해왔어요. "우리 남자들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코믹스를 만들어보지 않을래요?"
- 마블코믹스 편집자 애니 노센티 (1957년생)


60년대부터 80년대에 마블에서 근무했던 여성들이 한데 모여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남성중심적인 업계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니까요. 루이즈 시몬슨은 당시 소수 밖에 없었던 여성 중에서도 유일하게 아이들의 어머니였습니다. 시장 자체가 남성 독자 위주로 잡혀있는 탓에 '여성캐릭터는 잘 팔리지 않는다'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고, 아무리 하고 싶었다 한들 아이들을 키우고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선 여성캐릭터를 쉽사리 푸쉬해줄 수 없었던 거죠. 코믹스 업계 내에 직업여성은 언제나 늘 있어왔지만 주목할만한 여성캐릭터의 쓰임이 과거에 드문 것은 이러한 현실적인 배경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여성들을 위한 코믹스가 과거에 드물었다 뿐이지, 아예 없었던 게 절대 아닙니다. 1980년대에는 애니 노센티를 비롯한 여성 제작자는 힘을 모아 <미스티> 6부작 코믹스를 제작했지만 유통환경 상의 한계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았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캐롤한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들이 있길 바랐어요. 나이 어린 친구들도, 같은 또래의 친구들도 말이에요. 그리고 그 여성들과 캐롤이 경쟁을 할 수 있으면 했어요. 그들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경쟁 말이에요. 우리는 보통 '경쟁하는 여성'을 마치 경쟁하는 게 아닌 척 행세하는 사람들처럼 보곤 하잖아요. 게다가 대부분은 남성의 관심을 끌거나 인정을 받는 걸 놓고서 경쟁하는 걸로 보이곤 하죠. 그것도 아주 교묘한 뒷공작을 하듯이 말이에요. 

그런데 그건 제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었던 거랑은 완전히 달라요. 제가 살면서 만나보았던 여성들과 겪었던 일들과는 전혀 달라요. 하지만 그 경험이 우리들의 문화에 반영되어 나타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여성 동료와 경쟁하는 방식처럼 캐롤이 여성 동료와 경쟁하는 걸 보고 싶었어요. 다만 우리는 그러면서도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죠. 누군가 성공하면 기뻐하고 말이죠.
- 캡틴 마블 작가 켈리 수 디코닉 


업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직장여성의 모습은 2012년 캐롤 댄버스의 새출발 <캡틴 마블>에서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에도 이런 여성간의 경쟁을 기묘하게 왜곡해서 묘사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요? 흔히 '여자어'라고 하지요. 여자의 No는 단순하게 No를 의미하지 않는다, 언제나 무언가 다른 속뜻이 있고 교묘하게 수동공격적으로 뭔가를 요구하거나 하는 성향이 있다는 식으로 말이에요. 그뿐입니까, '여적여' 프레임도 있습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을 줄인 것으로, 여성 간의 경쟁을 그저 뒷담화로 흉을 보거나 왕따를 시키는 등 아주 음습하고 질 나쁘게 묘사하는 구도입니다. 실제로 여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경쟁은 마냥 그렇지 않다는 걸 디코닉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캡틴 마블>을 통해 디코닉은 사회 통념을 깨트리고 여성 간의 건강한 경쟁을 묘사하고 싶었던 거예요.


<캡틴 마블>의 성공은 마블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동안 괄시되었던 여성 팬덤,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팬덤, 그 모든 과도한 성적대상화 묘사와 냉장고 속 여자와 무자비한 강간 서사들을 인내해야만 했던 여성 팬덤의 저력을 캐롤 댄버스의 팬덤 '캐롤 코어'가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쏟아지는 팬레터와 컨벤션에서의 코스프레 그리고 적극적인 서평 작성 등의 활동을 통해서 말이에요. <캡틴 마블>의 편집자 사나 아마냇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던 편집부장이 "당신의 경험을 녹여낸 무슬림 소녀 슈퍼히어로를 만들어봅시다"라고 제안한 것은 그런 밑바탕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여성 팬덤의 가시화가 낳은, 마블의 고질적인 문제의 개선안이었죠. 변화가 찾아옵니다. 무슬림 여성 편집자와 무슬림 여성 스토리작가가 만들어낸 카말라 칸이 찾아옵니다.

카말라 칸은 뉴저지에 사는 남아시안 무슬림 청소년입니다. 이 아이는 매일 같이 강 건너 뉴욕을 바라보며 언제나 세상을 구하는 아름답고 강인한 슈퍼히어로들을 동경합니다. 그 중 카말라의 최애는 캡틴 마블이지요. 캡틴 마블은 키가 크고 아름다운 금발의 여성입니다. 그가 너무나도 쉽게 세상을 구해내는 모습이 카말라의 뇌리에 인상 깊게 남아있어요. 카말라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사람인 거죠. 갈색 피부를 지닌 청소년에게 보이는 건 오직 그것뿐이에요.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 나와 전혀 닮아있지 않다는 것 말입니다. 

카말라 칸이 초능력을 얻었을 때 가장 먼저 원했던 것은 캐롤 댄버스와 아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어요. 캐롤이 가장 오래 취해왔기에 가장 잘 알려진 그때의 모습으로 카말라가 변했던 장면은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카말라에게 가장 어려운 선택은 나 자신의 모습을 택하는 거예요. 나 본연의 모습으로는 충분히 인상적이지 않다고 느껴지니까요. 충분히 아름답지 않다고, 충분히 강인하지 않다고 말이에요. 그야 당연하죠, 여태껏 그런 말을 들어왔으니까요. 그래서 카말라에게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거야말로 진정한 도전과제이자 영웅의 여정이에요.
- 캡틴 마블, 미즈 마블 편집자 사나 아마냇
카말라 시리즈를 선보이려 준비하던 첫 해에 사나가 제게 자꾸 자꾸 반복해서 묻던 질문이 하나 있어요. "이 캐릭터에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의 순간은 무엇인가? 이 캐릭터의 개성이 그 순간을 어떻게 달리할 것인가? 무슬림의 [큰 힘·큰 책임] 순간은 무엇인가?" 미치는줄 알았죠. (…) 고민 끝에 그 부분을 써내는 순간이 왔어요.

카말라의 조연 조이가 물에 빠지는 장면이 있는데요. 카말라는 이제 막 초능력을 얻은 상태라 아직 조절하는 법을 몰라요. 이걸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해요. 지금 당장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선택의 기로에 놓인 찰나의 순간, 카말라는 무슬림 신자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코란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인류 전체를 죽이는 것이고,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은 인류 전체를 살리는 것이다." 그게 카말라의 동기입니다. 카말라에겐 이 사람을 구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전세계를 구할 필요는 없어요. 그럴 수조차 없어요. 다만 지금 이 순간 내 눈 앞에 있는 이 사람만큼은 카말라의 책임인 거예요.
- 미즈 마블 작가 G. 윌로우 윌슨


아...

울었습니다.

진짜로요.

감격에 겨워 울었어요...

뭐라 첨언할 말이 없네요.

진짜 저는...

슈퍼히어로 코믹스가 너무 좋아요.

너무너무 좋아요...




<마블 616> 8부작 중 2편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는 시작할 때 택시 안에 앉은 사나 아미냇이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을 비추어주었어요. 어릴적, 백인 위주의 지역사회에 유일한 무슬림 가족으로서 성장했던 이야기가 배경에 깔린 것에 힘입어, 택시 뒷좌석에 홀로 앉은 아미냇의 모습은 다소 외롭고 쓸쓸해보였습니다. 에피소드 마지막에 택시를 탄 사나 아미냇의 모습은 한 번 더 등장합니다. 이제는 알아요. 그녀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마블코믹스의 에디터가 되었는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자리를 쟁취해냈고 성장해나갔으며 캡틴 마블과 미즈 마블을 탄생시켰는지를 알아요. 그녀의 발자취를 알게 된 지금 아미냇의 모습은 아주 강인하고 자신감 넘쳐 보입니다. 마치 자신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처럼 보여요. 저는 이번 다큐멘터리를 보며 '코믹스를 사랑하는 여성'으로서의 자긍심을 키웠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 코믹스 업계는 성장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됐어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나일라 매그루더는 에피소드를 끝맺으며 앞으로의 당면 과제도 잊지 않고 언급해주었습니다. 지금 이대로 만족하고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 더욱 더 많고 다양하고 폭넓은 여성캐릭터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아직까지는 큰 푸쉬가 없었던 동양인 여성과 라틴계 여성도 공감할 수 있고 이입할 수 있는 코믹스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미국계 한국인 실크 솔타 내놓으세요!!!! 당장!!!!!)


마블코믹스 편집자 애니 노센티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현세대 여성 작가들의 훌륭한 점은 여성들을 위한 서사를 쓰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를 이야기 속에서 찾아볼 수 없는데 어떻게 그 이야기에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겠어요?
- 마블코믹스 편집자 애니 노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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