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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울 Mar 18. 2024

대전

아침편지 3



추억이 깃든 식당, 대전 바질리코! 여전히 인기가 정말 많더라고요.



대전에 가서 옛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친구가 청첩장 모임을 하는데 저도 함께 초대해 주었어요. 친구는 40분 정도 걸려 우리집까지 와서 나를 태우고 또 3시간을 달렸습니다. 장거리 운전이 얼마나 피곤하고 지치는지 잘 알아서 운전을 교대하자고 해봤지만, 친구는 휴게소도 한 번 들르지도 않고 대전까지 한 번에 달려갔어요. 새벽 수영을 가고, 낮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요가 수업을 가는 체력왕 친구입니다. 결혼을 앞두고도 얼마나 바쁜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해 보여요. 누구보다 바쁘게 사는 친구에게 저는 ’잠죽자(잠은 죽어서 자자), 고통을 모르는 여자(아무리 힘든 일도 언제나 할 만하다고 합니다.)‘라는 별명을 붙여줬어요.

우리는 대전에서 학교를 같이 다녔어요. 스무 살이 되던 그 겨울에 고등학교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한 채 만났습니다. 그렇게 4년간 함께 살며 많이 울고 많이 웃었습니다. 미성년자는 아니었지만 아직은 어른이라고 하기 어려운 20대 초반에 매일 24시간을 붙어있었으니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습니다. 동기나 친구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가족은 아닌, 조금 특별한 사이입니다. 나중에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기도 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소식도 뜸해지기도 했어요. 졸업하고 10년 만에 보는 얼굴도 있습니다.

그런데 10년 만에 만나도 우리는 어제 만난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지난 10년간 어떻게 지냈는지 몰라도 상관없어요. 계속 연락하고 지냈던 사이처럼 어색함이 없습니다. 추억이 깃든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4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결혼하는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육아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여러가지 어려움에 처한 사정을 들으며 눈물도 찔끔 흘렸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심지어는 엄마 아빠에게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요. 몇 년 묵은 일에 대해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기도 합니다. 참 신기한 관계입니다.

결국 저녁 일곱시가 되기 직전에서야 일어났어요. 마음 같아선 밤새도록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이제 내 친구들은 다시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서울로 가야 하는 우리도 갈 길이 멀고요. 우리는 헤어지면서 다음에 또 언제 만날지 약속하지 않고 돌아섭니다. 아마 또 몇 년을 만나지 못할 수 있고, 어쩌면 10년 정도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도 서운하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음에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만나더라도 우리는 또 이렇게 어제 만난 것 같을 테니까요.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도, 친구와 나는 또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특별한 친구들 중에서도 우리는 조금 더 가까운 사이입니다. 집에 가면서 우리는 많은 감사한 것들에 대해 생각했어요.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 우리가 가진 많은 것들도, 심지어는 우리에게 어려움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까지도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내 삶의 고단함을 감수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인생이 벅찬지 너무 잘 아는데, 기꺼이 나를 배려해 집까지 데려다주는 이 친구에게도 특히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집에 돌아오니 목이 다 쉬었더라고요. 아침 9시에 만나 헤어지는 밤 9시 반까지 1분도 쉬지 않고 말을 했으니 목이 아플 수밖에 없어요. 고단한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히죽 웃음이 납니다. 피곤하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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