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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울 Apr 11. 2024

행복하다는 느낌

아침편지 20





  안녕히 주무셨나요? 상쾌한 아침입니다. 오늘은 하늘이 맑아서 유난히 아침 해가 밝게 느껴지네요. 아니면 이제 여름에 가까워져서 아침도 대낮처럼 밝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더위를 많이 타는 우리집사람은 진작 선풍기를 개시했습니다. 5월까지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버텨보겠다고 다짐하던데, 더위에 시들해진 식물처럼 기운이 빠진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 오히려 내가 마음이 약해집니다. 조금 더 선선한 나라로 떠나서 살면 어떨까 괜한 상상을 하는 그 계절이 왔습니다.

  토요일에는 안산으로 꽃놀이를 다녀왔습니다. 경기도 안산시 말고 서울 서대문구 안산인데요. 너무 높지 않은 산 아래로 산책길이 잘 가꾸어져 있는 멋진 곳으로 우리집과 멀지 않아 가끔 가는 곳입니다. 마침 봄을 맞아 축제가 열려서 홍제천 폭포 앞으로 가판대를 늘어놓고 있더라고요. 평소에도 늘 사람이 많은 곳이지만 꽃 때를 맞춰서 온 사람들이 특히 더 많았습니다. 안산 정상까지 오르기 위해 등산복을 갖춰 입은 어른들도 많아서 꽃놀이랍시고 오랜만에 원피스를 꺼내 입은 내가 머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상까지 가지 않고 연희숲속쉼터 허브원까지만 다녀올 계획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속으로 생각해봅니다.

  사람 반 꽃 반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봄 풍경에 마음이 들떴습니다. 가파른 경사로 아찔하게 심어둔 튤립 꽃밭 주위로 벚꽃이 가득 피어 감싸고 있었어요. 처음 온 길은 아니지만 벚꽃이 가득 폈을 때 온 건 처음입니다. 내가 작년 봄 이맘 때 다른 일이 있어 함께 오지 못했던 걸 우리집사람이 1년 내내 아쉬워한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풍경이었습니다. 벚꽃으로 유명한 다른 길과 달리 여기는 산 자락이라 5분에서 10분 정도 계단을 올라와야 하고 길도 좁아서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멋지게 빼입은 젊은 커플은 많지 않고 가족 단위로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장점이기도 하지요. 좀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이었어요.

  우리는 넓은 계단형 의자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는 길에 김밥을 두 줄 포장해왔거든요. 집에서 과일과 커피도 싸왔습니다. 봄날에 도시락을 먹고 있으니 말 그대로 소풍입니다. 꽃 구경을 하는 사이 김밥은 식었지만, 그래도 즐겁기만 했습니다. 음식을 먹으며 주위에 오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한건데 꽃 구경 만큼이나 사람 구경도 재미있더라고요. 아들 셋을 데리고 온 부부는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어 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심드렁한 아들은 그냥 두고 서로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고, 어떤 젊은 청년들은 사진용 꽃 장식까지 챙겨와 입에 물었다 귀에 꽂았다하며 서로의 청춘을 순간의 장면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축제 기간이라 오후에는 공연도 한다는데, 그 때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짐을 챙겨 다시 왔던 길을 돌아왔습니다.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이 또 있지만, 아까 한참 설치하고 있던 가판들 구경이나 할 생각으로 다시 홍제천 쪽으로 내려왔어요. 그런데 이름만 축제가 아니고 정말 축제 느낌으로 많이 준비했더라고요. 아까 산 위에 작은 야외공연장에도 무대가 있더니, 홍제천 폭포 앞에도 무대가 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 푸드트럭도 몇 개 늘어서있고요. 우리는 한바퀴 구경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폭포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따뜻한 봄날, 아름다운 꽃, 시원한 폭포까지 모든 것이 정말 완벽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속 깊이 행복하다는 감정이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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