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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아저씨 Oct 07. 2017

파리의 아침

사랑스럽도록 매혹적이었던 파리 파란집민박에서의 4월. 아침.

국내던, 해외던 지칠 때 익숙한 공간을 잠깐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옳다.



'여행' 이라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것 같지만, 또 가장 평범한 매일이 아닐까.

연휴와 같은 특정한 기간에 누군가는 여전히 일을 하고, 누군가는 국내로, 또 누군가는 해외로 나가서 자기만의 삶을 만끽하다가 오는 것 일 뿐인데, '여행' 이 주는 의미보다는 '여행을 어디로 가서 남들 안 본 특별한 것을 보고 먹고 찍고 왔는가' 가 더욱 중요한 이슈이자 경쟁의 표상이 되는 듯 하다. 이래서는 여행이 아니다.


서울 강북구 산자락 밑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풀벌레 소리가 나는 국립재활원 길을 밤 늦게 걷는 것도 나름 여행의 일부이다. 매일 걷는 길이지만, 가끔 벤치에 가만 누워 본다거나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서 담배를 한대 태워본다거나, 이어폰 속 음악 장르를 바꿔본다거나 등의 약간의 다른 자극의 변화만으로도 감정은 달라지고, 때로는 여기가 내가 사는 동네가 맞던가 하는 느낌도 받으니 말이다.

물론, 서울을 떠나 전국 자전거 일주를 한다거나 출장차 제주도에 간다거나, 해외로 나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이 모든 것 또한 충분히 가치 있는 여행 중 하나이다. 같은 일상을 다르게 본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오감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특별하니까.


그래서 여행의 본질은, '강박적인 잘 쉼' 보다는 '내가 시선을 달리 하거나 새롭게 떠난 곳에서 나를 위한 기억을 만들어 가는 것' 에 있지 않을까 싶다. 지극히 1인칭적인 환경, 생각, 기억, 느낌이 제대로 된 여행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짧은 동네 산책을 통한 여행이던, 떠나는 여행이던 온전한 1인칭이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기존의 것을 내려놓고 비워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히 '관계맺음' 에 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여행을 통해 1인칭 주인공인 내가 꿈꿔왔던 어떤 것이든 만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 테니까.


비우고 채우기를 위한 수 많은 여행의 조각들 중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준 무대인 플레장스 '파란집 민박' 의 아침


파리의 5월은 굉장히 서늘했다. 더울 법도 한 폭신한 이불을 몇 번이나 간밤에 둘둘 감았던 것 같다.

눈비비고 일어나 보니, 한인민박의 여행자들은 이른 아침을 먹고 나 혼자 남아 있었다.

민박집 이모님께서 가족들과 같이 먹자며 아침식사를 권하신 다음에야 내 하루는 시작되고 있었다.

일부러 게으르려고 하는 것 같아 늦게 깨웠다는 이모님의 예리함과 배려로 감사한 순간이었다.


유명 여행지를 보면서 몰려다니는 것 보다는, 골목골목 목적지 없이 걸어다니면서 햇살과 바람과 사람과 천천히 마주하는 것이 떠난 곳의 속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여행 2일차까지 파리의 주요 여행지를 밀린 과제를 해 내듯 다 보아버린 후여서 마음은 좀 더 여유로웠다.

오늘은 동네 벼룩시장과 대학교 주변, 공원, 놀이터, 상점가 등을 뚜벅뚜벅 걸어다니거나, 트램을 타고 아무곳에서나 내려 볼 심산이었다. 


텅 빈 도미토리에서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할 무렵이었다.

얼굴 한 번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던 맞은 편 2층 침대의 주인. 덥수룩한 수염에 클래식한 안경. 가벼운 런닝 차림의 중년 남성 한 분이 손에 커피향을 가득 채워서 내 앞에 말 없이 앉았다. 직장이었으면 차장님 정도 되셨을 분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눈치였고 움직이기엔 이미 늦은 상황에서 다시금 '익숙한 것과의 관계맺음' 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것의 불편함이 밀려왔다.


"봉주르."


당시 프랑스어라고는 메르시밖에 몰랐던 내가 들었어도 너무나 현지인 같은 발음이 그의 입속에서 굴러나왔다.


"좋은 아침. 이라는 말이에요. 지금 행복한가요?"

"네?"


사실, 저 찰나에 좋은 아침이라는 부연설명 뒤로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 출발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 어디 갈 예정이냐, 어디에서 왔느냐, 나이는 몇 살이냐 등의 청문회를 상상했기에 이어진 그의 사소한 질문 하나에,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는 대답을 독촉하지 않았고 기다린다는 듯이 햇살이 밀려 들어오는 베란다를 내다보며 혼잣말로 '봄이 왔네' 와 의미 모를 불어로 순간을 마음껏 느끼고 있었다.


그냥. 민박집 이모랑 저기 보이는 마트에서 장 보고 수다떠는 낮선 공간 속 같은 일상의 다른 시선이 좋았다.


"나는. 지금 행복해요. 많은 걸 놓았지만 더 이상 쥐어 짜내지 않아도 되거든요."


철학 수업에서나 나올 듯 한, 직장생활을 하고서는 거의 생각해 보지 않았던 급작스러운 질문에 대해 바짝 마른 내 입술에서 나올 대답은 습관적으로 이론적이고, 보편적으로 잘 꾸민 말을 애써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그는 여전히 시선을 창밖에 둔 채로 커피향을 잠이 덜 깬 거리에 뿌리며 말했다.

쥐어 짜낸 대답은 행복에 대한 대답이 아닌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아는 듯 보였다.


"행복...이란건 뭘까요."

"근사한 것이 아닌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현실로 돌아가면 여전히 돈 많고,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좋은 직장에, 키도 좀 크고 잘생기고, 몸도 멋지고, 차도 한 대쯤 있는게 행복의 기준이 맞긴 한 것 같아요. 성공과는 다른 거겠죠. 갖춤 이랄까요"


그는 잠시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가 다시 창 밖을 내다보았다.


"맞아요. 물질적인 행복 중요해요. 그걸 떠밀려서 만들어가고 있나요. 아님 스스로 만들고 있나요."

"떠밀린다는 게 정확하겠지요."

"떠밀려 넘게 되는 파도에서 기쁨을 느껴본 적은 있나요?"

"넘었을 때 타인들이 칭찬과 격려로 인정을 해 줄 때 느끼는 감정을 기쁨이라고 할 수 있다면요"

"그러면, 내가 나를 위해 한 자연스러운 행동들로 행복한 적은 있나요?"


구어체가 꽤나 섞인 그의 질문은 굉장히 진부했지만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에는 어떠한 대답도 나오지 아니했다. 어쩌면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던 첫 질문보다 어려웠다.

어느새 자기 침대로 돌아가서 캐리어에서 책을 뒤적이던 그가 다시 묻는다.


"여기 오게 된 건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SNS에 멋진 시간들을 기록하기 위함인가요"

"생각해보니 많은 걸 쥐어짠 것 같아요. 그냥 힐링한다고 온 여행이기는 한데, 기왕이면 유럽, 기왕이면 프랑스 파리, 어쨌든 관광 명소. 돌아갔을 때의 남의 시선을 의식한 게 많네요."


"실은 난 행복은 아무 의미가 없을 때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또한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내가 젊음을 바쳤던 모국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 그래요.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뒤쳐지죠. 내가 살아가는 모든 행동에. 의미는 결국 타자의 시선에서 만들어 지는

 어떤 것일 텐데요."


매사, 매순간이 삶으로서 의미가 되니까 굳이 행복하려고 의미를 만들지 않아도 될 듯 했다. 삶이 모여 풍경이 되니까.


모국을 떠나왔다는 그는 당시의 나처럼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졸업해서 평범한 회사에서 일상을 만들어 가면서

부장이라는 명함을 얻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남들이, 사회가 내 모든 것을 정의내리고 평가하며, 스스로 여기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알게 되며, 모든 것을 놓고 자신 홀로 되고 싶어서 떠나왔다가 이 곳에서 눌러 앉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이 곳에서도 완벽한 홀로, 온전한 텅 빈 공간은 없었지만.


"인상 깊었던 것은, 아이들에게 행동을 강요하지 않더라는 것이에요. 교육도 문화도.

 물론 아이들 역시 교육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지만, 살아가야 할 길과 의미를 순서도처럼 정해놓지 않기에,

 아이들은 마음껏 상상하고 어울리면서 지켜야 할 것들과 회피해야 할 일들을 배워 나가더라구요.

 생각하고 싶을 때 생각하고, 놀 때 놀고. 강박적으로 시점마다 해야 할 것들을 쥐어 짜지 않았어요."


그제사 조금은 그의 의미 없음이라는 게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가 말한 행복의 정의도 누군가에게는 정의가 될 수 있는 만큼, 명확하게 자기가 생각하는 행복을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의미가 없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에게 몰입하는 일일 것이다. 내가 좋은 것, 내가 만드는 것,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것을 수용하는 것, 내게 맞지 않는 것은 남들이 좋다고 해도 거를 줄 아는 용기.

어쩌면 책 제목 처럼, 그렇게 살았을 때 '미움받을 용기' 가 엄청나게 필요하겠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지면 혼자 매일 여행해 봐요."


끝내 행복은 000 이다. 라고 말하지 않은 그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나도 아침에 불쑥 찾아온 이 매혹적이면서 얼떨떨한 순간을 뒤로 하고 무작정 민박집 문을 나섰다.

어디로 가게 될 지, 거기에 뭐가 있을 지 잘 모르겠지만. 설레서 좋았고 지금도 좋다.


밤 늦은 시간 글을 쓰는 이 순간도 펜을 놓고 달리 생각해보니 행복했던 파리의 아침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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