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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아저씨 Oct 16. 2017

길생명의 죽음은 언제나 아프다

나는 그 아이의 마지막에 무엇이었을까


흰 털 실뭉치 백설이와 가족이 된 지 3년이 지나간다.

백설이로 인해 부모님과 나. 단란한 세 식구가 가장 크게 바뀐 점이 있다면, 그럴 줄 몰랐는데 어느 순간 밤마다 시간이 날 때 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통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랄까.


어머니는 원래 동물을 귀여워 하셨지만 함께 하기에는 힘들다고 하신 분이었고, 아버지는 일터의 고양이들을 내쫓았던 전력이 있던 분이었다. 나는? 반려동물은 고사하고 나 하나 먹고살기도 힘들다고 툴툴대던 사람이었다. 새로운 가족과 함께 한다는 것, 세 식구라는 경계선 밖의 세상과 나누며 살아가기에는 마음이 너무나 퍽퍽한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이따금 만취할 만큼 술을 먹고 들어와도 손에 사료를 들고 휘청이며 밥을 주고 오지 않으면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동네 아이들에게 밥을 주러 다니신지 3년이 되었다.

일터에 숨어 지내던 고양이들은 아버지의 극진한 보호를 받는다. 가끔, 퇴근 길에 방치되거나 학대당한 것 같은 길생명에 대한 제보도 해 주신다. SNS에 SOS를 요청하는 것은 내 몫이다.


백설이와 조건 없는 사랑을 하게 된 만큼, 모든 길생명도 백설이와 같은 사랑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것 같다. 아니,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데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눈만 껌뻑거리는 그 생명들과의 거리감에, 더불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숨기고 싶은 다정한 감정인 '슬픔' 을 꺼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10월 4일 새벽 2시였다. 늘 그랬듯이 잠못드는 모자의 밤산책이 한창이었다. 유달리 날씨가 쌀쌀했다.

경전철 4.19 국립묘지 역 부근을 한참을 걷던 어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란 곳에 시선을 던지자, 한 아이가 가로수 밑에 누워 있었다.

겉보기에는 별다른 흔적이 없어서 잠든 것 아닌가 하는 아이는 가까이 가도 미동조차 없었다.


짧은 생을 마감하고 별이 되는 이유는 많지만, 왜 너는 누군가에게 맞아야 했을까. 난 왜 좀 더 일찍 너를 만나지 못했을까.


눈과 입을 반쯤 벌린 채 사진의 모습 그대로 누워 있는 아이의 몸은 이미 경직되어 있었다.

벌려진 입에 약간의 핏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독약을 먹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머니는 이 죽음 앞에서 당황하시면서도 어쨌든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이렇게라도 눈에 띈 것은 떠나는 나를 혼자 두지 말라는 인연이라며 어떻게든 묻어주자고 하셨다. 아무 도구도 준비도 안 된 채 마주한 죽음이었다.


급히 아이를 이동할 상자와 감싸줄 종이를 주변에서 구하고 시신을 손으로 들어 올리던 찰나에 나는 쓰러질 뻔 했다. 어떤 슬픈 글이나 영상을 봐도 눈물이 사라졌던 내 눈에서 물줄기가 흘렀다.

들어 안은 아이의 몸은 백설이를 안았을 때 만큼 따듯했다. 체온. 체온이 그렇게 소름 돋도록 무섭고 슬프고 아픈 것인지를 몰랐다. 그리고 들어안음과 함께 반대쪽 얼굴에서 우주를 닮은 눈 하나가 힘없이 툭 떨어졌다.

징그럽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징그럽다기 보다는 잔인함과 분노가 앞섰다.

죽은 지 3시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산책길을 더 짧은 코스로 잡았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 지도 모를 만큼의 따스함이 손을 타고 온 몸으로 전해졌다.


얌전히 있던 아이가 어떤 손길에, 심지어 우리가 산책을 나오기 얼마 전에 무언가로 머리나 얼굴을 강타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로드킬로 인한 상처의 흔적도, 독약의 흔적도 없었으니까. 어머니도 나도 그 시신을 담아 들고 한참을 서 있었다.


친구가 왜 움직이지 않는지, 불러도 대답이 없는지 옆에서 한참을 서 있었던 아이.


"야옹"


아주 작은 소리였다. 시신 맞은 편 골목에서 한참이나 우리를 보고 있었을 고양이 한 마리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상자에 담긴 친구와 우리를 몇 번이나 올려다 보았다. 알고 싶어 했다. 어디로 여행을 가는 것인지.

상자에 담아 가까운 야산으로 가서 묻어주려고 이동하는 발걸음 저만치 뒤에서 한참이나 아이는 따라왔다.

가다 서서 돌아보면 "야옹" 이라고 울어주었다. 말 그대로 울어주었다.


이후에, 이 부근을 걸을 때 친구고양이에게 밥이라도 한 끼 주고 싶어 밥을 챙겨갔지만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아니 올 것이다. 함께 놀던 친구가 눈 앞에서 어떤 손에 의해 자신을 떠난 아픈 곳이니까.


누군가에 의해 사람과 동물에게 너무나 쓸쓸하고 아픈 명절이 되었다.




요즘 들어 내가 사는 강북구에서, 숨죽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길생명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유달리 많이 듣고 있다. 펫샵에서는 돌보던 아이가 토막살해 된 채로 발견되어 펑펑 울던 분의 이야기도 마주할 수 있었고, 그래도 제법 있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 구청에서 돌봄보다는 소위 말해 '청소'를 했다는 이야기 등.


근거 없는 낭설도 있고, 한편으로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가기에 어떤 일이 왜 일어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경우에는 직접 마주한 것이기에 너무나 절망적이었고 너무나 화가 났다. 싫어하는 감정으로 어떤 생명을 뺏는다는 것이, 어쩌면 맞은 편의 친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잠시 잠깐 '큰 야옹' (채터링이란걸 어머니와 나는 이렇게 부른다) 을 한 죄로 때려 죽일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인간의 무슨 권리인가 하는 분노에서이다.


아이를 묻어주면서 죽음에 대한 슬픔, 떠나보내지 못한 아이의 모습이 아른거린 마음으로 힘들었던 것도 있지만, 그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당신이 뭔데' 라고 한 마디 할 수 없는 갑갑함과 절망감이 더 아팠다.

싫어함과 좋아함 모두 동등한 감정의 상태인데, 왜 길생명과의 공존 뿐 아니라 소외되고 약한 모든 것들과의 어울림, 좋아함은 몰래, 숨어서, 조용히 해야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받는지 모르겠다.

싫어함이 폭력적일 필요가 없는데, 단지 한 면의 감정 상태일 뿐인데 싫어하면 폭력적일 권리를 누가 누구에게 나누어 준 것일까. 그렇다면 나도 아이를 때려죽인 손길에 폭력으로 되갚아 주어도, '그런 당신을 싫어하니까' 라는 이유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일까.




길생명을 돌보면서 아기 때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해 별이 된 아이부터 로드킬 당한 아이, 구내염으로 죽은 아이 등과 마주하며 항상, 언제나 많이 아팠다. 그 중에서 이 죽음과의 조우는 백설이와 같은 모습을 한 저만치 떨어진 곳의 가족이 죽어서 유달리 아픈 것이 아니었다.

나도, 우리 가족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름 모를 누군가도.

단순하게 '내 맘에 안들어서'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세상이 이미 되었고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게 무서워서였다.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좀 더 당당해 질 수 있게 강해져야겠다.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론이 긍정의 마음을 앞선다.


부디, 찰나의 충격과 아픔을 기억하고 별이 되어버린 생명에게 어머니와 나의 뒤늦은 손길이나마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에게 저 먼 세상에서 어떻게 기억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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