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쥐아저씨 Oct 07. 2017

고양이. 어머니. 나.

우리가 우리에게 절대 떠날 수 없는 가족이기를.


작년에 어라운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특별한 일도, 공간도, 대상도 없는 순간의 모습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말과 기억의 세밀함이 머리에서 휙 하고 떠나버리기 이전에 글자로 꼭꼭 옮겨두어야 할 것 같았던 그림이었다. 이야기는 사진으로 남길 수 없으니까.




집에 백설이라는 흰 냥이를 키워요. 

밤 늦게 어머니가 아이를 닦아주시는데, 

문득 아이한테 이런 말들을 하시더라구요. 

"백설아, 우리 이쁜 딸아. 

비록 이번 생에는 사람과 고양이로 만나게 되었지만, 

그래도 먼 강남 어딘가에서 네 오빠 눈에 띄어 이렇게 만난것도 너무 귀한 인연인데,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함께 행복하게 살자꾸나. 

사랑해 딸아." 


백설이는 좋다고 골골송을 부르고, 

저는 저대로 뭔가 마음이 뭉클해서, 

하마터면 눈물이 다 날 뻔 했답니다. 

모든 인연은, 만남은 이렇게 귀하단 것을 종종 망각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더 예쁜 마음을 가진 백설이네 오빠, 

따듯한 30대 남자가 되려구요.


'고양이' 와 생을 같이 하기로 한 후, 삶의 너무 많은 구석이 나도 모르는 새에 바뀌었다. 고양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순간이 예뻤던 것 만큼, 나를 더 행복하게 했던 것은 스냅샷 같은 문장들을 업로드 한 이후에 이름 모를 타인들의 댓글들이었다. 이런 집에 시집가고 싶다는 말, 어머니가 향기로운 분인 듯 하다는 글, 백설이는 행복하겠다라는 이야기 등. 현실에 촉박하게 갇혀 있는 사이에 참으로 듣고 싶었던 소소한 말 들 이었고, 문장을 만든 타인들의 단어들에서 고뇌하지 않고 자유롭게 느낀 바를 표현한 아름다움들이 가득 묻어 나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쓴다는 과정에서 시보다는 산문을 더 좋아하고, 글이라는 것에서 전문성이라는 엘리트주의적 잣대로 평가하는 일은 참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의를 가진 나였기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여전히 3년 째 묘연을 맺고 있는 흰 털뭉치 백설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간식을 먹고 싶을 때 아양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변했고, 어머니께서 복주머니라고 부르는 핑크빛 뱃살은 나날이 복이 가득 차 가고 있으며, 열심히 먹고 자고 놀 뿐이다.

반면, 고양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동물을 싫어했던 어머니를 캣맘으로 만들었으며,

한 때 일하시는 공장 내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쫒아냈던 아버지의 퇴근을 칼같이 만들었고,

글에서도 여전히 '나' 라는 단어를 참 많이 쓰는 자기중심적인 나에게 다른 삶을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이런 일들을 온 가족이 말로 전해도, 고양이는 여전히 우주 같은 눈만 껌뻑이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수 많은 사진 중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사진. 아마 어머니는 이 사진을 쓴 걸 알면 얼굴이 새빨개 지시겠지만.


부모님께서 고양이를 '딸' 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비록, 조금만 더 시간의 썰매를 타고 내려가면 40이 되는 하나 있는 아들이 평생의 반려자와 사랑으로 함께한 사람 손녀를 보고싶어 하시기는 하지만. '딸'은 부모님 입장에서 평생을 함께 하는 자식이기 때문이다.

묘연을 넘어 사람과 동물이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 들이고, 오래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함께 별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 어느 날 함께 별이 되자는 것 만큼 깊은 사랑의 고백이 또 있을까.

막상 백설이를 데려 온 나는 부모님만큼 인연의 소중함과 무거운 책임을 가지고 있었을까.


고양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다만, 우주 같은 눈으로 고요히 바라보고 젤리 같은 패드로 꾹꾹이를 하며, 내 심장 속 깊은 곳 까지 전해지도록 마음을 다해 골골송을 부를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고양이를 자식으로, 동생으로 생각하며 그 동안 살아오며 놓쳤던 인연의 소중함과 책임감을 배워간다. 노력해도 때론 잘 되지 않았던 그 일을.




"다음 생애에도 이 식구가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매거진의 이전글 길생명의 죽음은 언제나 아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