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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책상 위 고양이 Mar 10. 2021

당신의 프레임은 안녕하신가요?

<아임뚜렛>이 뒤집은 언어의 프레임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

"혹시 걱정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그러면 열에 아홉은 자신이 영상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걱정하는 마음을 털어놓는다. 장애인이면 자신이 불쌍하게 묘사되면서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는 영상의 기획의도를 다시 친절히 설명하며 인터뷰이를 안심시킨다.


아마 이런 우려를 표하는 이유는 기성 미디어가 소수자를 바라보는 방식, 즉 '프레임(frame)'에 대해 경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사용했지만 미디어에는 '프레임'이란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프레임은 뼈대나 틀을 뜻하는 단어로 영상의 기본 단위이기도 하며 한 장의 단순한 사진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말하는 프레임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프레임에 가깝다. 심리학에서 프레임은 '생각의 구조'를 의미한다. 최인철 교수는 프레임을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에 비유하며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관조하는 사고방식, 세상에 대한 비유,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심리학의 프레임은 영상의 프레임과 유사한 점이 많다. 결국 PD나 감독의 프레임으로 표현된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닌 제작자에 의해 재구성, 재해석, 재창조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객관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의 생각 역시 자신의 프레임을 거쳐 나온 결과물일 뿐이다.


문제는 프레임이 의식적인 노력보다는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프레임은 미디어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일례로 '아임뚜렛 논란'이 있다. 자신을 뚜렛증후군 환자라 밝히며 영상을 올렸던 유튜버의 말과 행동이 거짓으로 밝혀진 사건이다. 유튜브는 그 자체로도 이미 큰 영향력을 끼치는 매체이지만 기성 미디어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그 파급력은 배가 되었다.


'아임뚜렛'이란 말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고 삶에 적극적으로 도전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그 의미는 완전히 바뀌었다. 거짓, 조작, 사기꾼과 같은 단어가 '아임뚜렛'과 연관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다른 뚜렛 증후군 유튜버에게 "너 또한 사기꾼 아니냐"는 악플을 달며 공격했고 용기를 가지고 세상에 나오려는 뚜렛 증후군 환자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문제의식을 갖고 '아임뚜렛'이 지닌 의미를 다시 한번 긍정적으로 전복시키려는 훌륭한 시도가 있었다. 바로 KBS 다큐 인사이트 청춘 기획 2부작 중 하나인 <아임뚜렛>이다.


KBS  <다큐 인사이트 - 아임뚜렛>


<아임뚜렛>은 스물아홉 보디빌더, 박지호 씨와 스물아홉 상담교사, 임초록 씨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두 주인공에게 뚜렛 증후군은 뗄 수 없는 것이지만 PD의 프레임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치열하게 살아내고 도전하는 청춘의 삶, 그 과정에 있다. 이는 PD가 두 주인공의 출연 계기 인터뷰를 프로그램 초반에 배치한 것에서도 느낄 수 있다.  


"지고 싶지 않아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고 싶어서"


이 외에도 두 사람의 진솔한 인터뷰, 이미지나 음악 등 세련되고도 세심한 연출은 그들을 한 존재로서 존엄하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아임뚜렛>에는 '아임뚜렛' 논란이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PD는 기획의도에서만 '아임뚜렛' 논란을 언급했을 뿐이다. 오직 그들의 치열하고 열정적인 삶을 바라보겠다는 의지이며 그 프레임에 다른 논란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만약 프로그램에서 '아임뚜렛' 논란을 언급했다면 시청자들이 두 주인공의 삶에 온전히 다가가는 데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는 순간 코끼리를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임 뚜렛>은 뚜렛 증후군을 지닌 청년에 대한 부정적 프레임을 성공적으로 뒤집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많은 매체들이 오직 논란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소비할 때 제작자는 그 너머 수많은 뚜렛 증후군 청년의 삶을 바라본 것이다. 


다만 이러한 프레임이 일부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프레임이 되려면 더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프레임을 당연시하지 않고 그 너머의 다른 프레임을 보려는 의지가 있을 때, "아임 뚜렛"이라고 외치는 그 삶에는 당당함, 도전, 치열함, 고민과 같은 단어가 더 어울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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