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정말 덧없는 시간인가?

2025.01.07 "Ephemeral"

by 일흔의주정

오늘의 단어는 'ephemeral'입니다. '수명이 짧은', '단명하는'이라는 뜻인데, 너무 지쳐서 오늘 글을 대충 쓸 작정인 제게 꽤 어울리는 단어네요.


모든 단어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영어의 경우 보통 그리스어나 라틴어가 그 뿌리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ephemeral'의 경우에는 그리스어 단어인 'ephēmeros'를 그 뿌리로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epi-'는 '-위에, -동안'이라는 의미, 'hēmera'는 '하루'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이 둘이 합쳐진 'ephēmeros'라는 단어는 '하루 동안'이라는 의미인 것이지요.


'하루' 하면 생각나는 곤충이 있지요? 바로 하루살이입니다. 재미있게도 하루살이류 곤충들이 속하는 분류학적 범주인 '하루살이목'을 뜻하는 목명은 바로 'Ephemeroptera'입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이것도 'ephēmeros'와 관련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ephēmeros(하루 동안)'과 'pteron(날개)'의 합성어인데요. 결국 한국어 이름인 '하루살이'와 정식 목명인 'Ephemeroptera'는 사실상 같은 의미인 겁니다. (참고로, 영어로 하루살이는 Mayfly라고 합니다. 5월에 대량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일러스트.png 대괄호 안에 들어갈 숫자를 구하시오. [3점]


이러한 사례들이 증명하듯 인간의 눈에 하루는 꽤 짧은 시간입니다. "벌써 ~시야?"라는 말을 달고 사는 우리들의 언어가 그것을 증명하기도 하지요. 일어나 씻고, 출근하고, 일하고, 밥을 먹고 집에 돌아오면 어느새 끝나 있는 것이 하루입니다. 어쩌면 하루는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 단위 중 가장 명확하고 일상적이면서도, 우리가 가장 간과하는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어떠한 목표를 세울 때, 그것이 마치 하루라는 블록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어떤 탑과 같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하루 정도는 건너뛰더라도 다른 하루가 그것을 벌충해 줄 것이라고 믿으며 며칠을 낭비하기도 하지요. 어쨌든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또 다른 하루는 오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적어도 제 생각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루의 무게는 사실 평생의 무게와 같습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 우리가 오늘 보낸 하루는 절대 다른 하루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어제의 우리와도, 내일의 우리와도 완전히 다른 존재니까요. 하루는 다른 것으로 쉬이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작품인 것입니다.


952px-Punishment_sisyph.jpg By Titian - [2],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860214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케케묵은 말을 인용하며, 우리는 어느샌가 태산만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또 그러도록 교육받았습니다.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라는 냉소 가득한 말과 함께요. 그렇게 우리는 어느샌가 운 좋은 몇몇이 만들어 놓은 '태산'을 부러워하며 티끌 대신 바윗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든 바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짓눌렸지만, 세상은 그저 그들을 패배자 취급했습니다. "가서 티끌이나 모으라"는 식의 조소와 함께.


저 또한 그렇게 짓눌린 사람 중 한 명이었고,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 가져온 바위에 짓눌린 채 저 자신을 패배자 취급해 왔습니다. 바위를 치우려는 시도 대신 저 자신을 패배자 취급하는 것이 훨씬 쉬웠거든요. 그렇게 짓눌린 채 20대의 끝자락에 당도해, 티끌을 모을 바에야 차라리 이렇게 짓눌려 있는 게 더 나은 것이라는 패배주의가 굳어질 때쯤, 제 머릿속의 마지막 총기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말인가?"


그리고는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티끌 없이는 태산도 없다.

그러므로 티끌이 곧 태산인 것이고,

티끌 하나하나에 태산의 무게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때 제 'ephēmeros'는 더 이상 'ephemeral'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비로소 바위를 치우고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110311.jpg 작가: rawpixel.com / 출처: Freepik


저는 오늘도 티끌 한 줌을 옮깁니다. 매일매일 15분의 공부와 한 편의 글이라는 티끌을. 바위에 눌려 상처 입은 몸을 치유하고, 그보다 더 상처 입은 마음에게, '어쩌면 내일은 티끌 두 줌을 옮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조금씩 불어넣으면서.


부디 그 끝에서,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기를, 그리고 여러분 역시 자신만의 티끌을 포기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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