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2

층간소음

by 일흔의주정

온건한 방법으로 층간소음에 대처하려 할 때 팁


- 본인이 원하는 바를 확실히 정한다. 몇 시 이후에 정확히 어떤 소음이 자신을 가장 괴롭게 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해 상대가 어떻게 대응해 주었으면 하는지. (예: 22시 이후에 발뒤꿈치부터 바닥에 닿으며 걷는 소리가 울린다. 슬리퍼를 착용하거나 걷는 방식을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 가해자로 추정되는 세대를 확실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한 집을 콕 집어서 지적하기보다는 소음의 근원지가 될 수 있는 조그마한 구역을 설정해 그곳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 좋다. '나라고?'라는 반응보다는 '난가?'라는 반응이 더 유용하므로.


- 개인 대 개인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최대한 외부의 권위를 빌린다. 가장 좋은 것은 관리사무소나 집주인이다. 그들의 이름으로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하자.


- 상대의 행동거지를 고치는 방법보다는 나 자신의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켜 대응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전자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도 실패한 것을 당신이 어떻게 고치랴?


층간소음에 대한 대응으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복수'다. 그리고 인터넷상에서도 빈번하게 추천하는 대응이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라거나 "그러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다"라는 식의 물렁하고 시큼털털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나는 철저하게 실리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 이와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논증의 방식은 A라는 주장이 옳다고 가정한다면 그 근거로 무엇이 필요할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기서 "층간소음에 복수하는 것이 소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라는 주장이 옳다고 할 때, 어떤 근거가 필요할지 생각해 보자. 대략 다음과 같은 근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 복수를 한다면 윗집이 불쾌함을 느껴 스스로 소음을 줄이려 할 것이다.

2. 복수가 다른 해결 수단보다 더 효과적이며 안전하다.

3. 복수의 부작용이 복수를 통한 이득보다 작다.

4. 복수가 문제의 원인, 즉 가해자의 무관심이라는 심리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이렇게 반박한다.


1. 복수를 한다면 윗집이 불쾌함을 느껴 스스로 소음을 줄이려 할 것이다.

: 현실적으로 복수는 상대의 반성이 아닌 또 다른 보복 심리를 자극하기 쉽다. 특히 층간소음 가해자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더욱. 자신이 내는 소리가 상대방에게 소음으로 들릴 수 있다는 자각조차 못 하는 사람이 과연 불쾌감을 느낄 때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을까? 오히려 아래층에 별것 아닌 것으로 시비를 거는 괘씸한 사람이 산다고 인식하게 된다면, 그는 더 즐겁고 거리낌 없이 소음을 낼 가능성이 크다.


2. 복수가 다른 해결 수단보다 더 효과적이며 안전하다.

: 관련 통계나 지표가 없으므로 그것이 다른 수단에 비해 더 '효과적'인지는 객관적으로 판단이 어렵다. 하지만 복수가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듯하다. 당장 '고의적인 소음 발생'은 법적으로 제재될 수 있으며, 애초에 개인 간의 복수는 개인 간의 마찰을 빚어 상호 간의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불러 오는 것이 자명하다.


3. 복수의 부작용이 복수를 통한 이득보다 작다.

: 앞서 말했듯 '복수를 통한 이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스러운 데 비해, 그 부작용은 확실하다. 소리가 나는지 나지 않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소리가 나면 막대를 들고 천장을 두들기거나, 자기 돈으로 우퍼스피커를 구매해서 자기 방에서 더 크게 들리는 소음을 감수하고 틀어놓는 것이 과연 '감수할 만한 부작용'일까?


4. 복수가 문제의 원인, 즉 가해자의 무관심이라는 심리를 바꿀 수 있다.

: 가해자의 부모가 그를 키우는 20여 년의 세월 동안에도 바꾸지 못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복수라는 대응을 추천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주장을 통해 가해자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층간소음 가해자들은 분명 무감각하고, 무례하며 교양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공동주택에 어울리지 않는 생활 습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바꾸려 들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복수라는 대응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앞에서 논증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사람 말을 듣지 않는 존재, 일종의 원숭이가 위층에 산다고 해 보자. 그 원숭이가 쿵쿵대며 걷거나 소리를 지를 때마다 우리가 천장을 두드린다면, 과연 그 원숭이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조용히 할까?


그러니 마음껏 분노하자. 마음껏 욕하고 마음껏 관리사무소나 집주인에게 하소연하자. 하지만 절대로 그 원숭이와의 싸움을 시작하지는 말자. 높은 확률로 손해를 보는 것은 오히려 당신 쪽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러면 그 가해자에게 패배한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인간이 동물과 싸움을 시작했을 때 결과는 두 가지: 인간이 다치거나, 동물이 다치는 것이다. 전자의 상황은 인간에게 명백한 손해이고, 후자의 상황은 동물 학대죄로 처벌받으므로 역시 인간의 손해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동물과 싸우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동물에게 패배한 채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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