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브런치 스토리에 처음 기고한 글이 "하루는 결코 덧없는 시간이 아니다"라는 논지의 글이었는데, 그 주장이 틀리지만은 않았나 봅니다. 어제 올린 "'기가차드' 밈을 아십니까"라는 글이 구글에 '기가차드'를 검색하면 상단에 노출되었고 그에 따라 많은 분이 제 글을 보게 되셨으며, 몇몇 사이트에는 제 글이 통째로 옮겨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중 한 사이트에는 제가 직접 제 글을 편집해서 올렸습니다. 관심받고 싶었거든요.
아무튼 그에 따라 참 많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긍정적인 반응이고 공감해 주시는 반응이어서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지만, 사실 제가 주목했던 건 비판과 비난의 내용이 담긴 반응들이었습니다. 그 내용들이야말로 제가 좀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담겨 있는 내용이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그러한 질책과 힐난에 대해 제 나름의 변명을 해 보고자 합니다. 어쩌면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셨던 분들을 설득할 수도 있고, 저 자신 또한 제가 쓴 글을 되짚어보면서 성장할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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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소리다, 개똥철학이다, 억지로 끼워서 맞추지 마라, 아직 흥하지도 않은 밈 가지고 호들갑 떤다, 진지충 꺼져라, 여기서 개인 생각 펼쳐놓지 마라.
죄송합니다.
이런 종류의 비난에 대해서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이 이것뿐입니다. 네, 저것들은 '비판'이 아닌 '비난'입니다. 왜냐고요? 저 이야기들을 한번 잘 들여다보세요. 저 말들에는 '질문'이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에 '비판'은요, 그 비판의 대상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비판의 대상이 좀 더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러한 비판은 비판을 한 사람에게도 득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줄 수 있다는 건 자기 자신도 그만큼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저런 종류의 말들은, 간단히 말해 영양가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재차 사과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끼워서 맞춘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사후 처리로써 굳이 다시 한번 끼워서 맞춰보자면, 2010년대는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이 대중화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등장한 시대였습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 손만 움직여서 자기 생각을 나누고 싸움박질을 할 수 있는 시대의 시작이었다는 것이죠.
물론 비약이겠지만, 저는 이때부터 '대중'이 하나의 트렌드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부터 대중은 서로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심리적 변화를 겪기 시작했고, 그동안 우리 사회에 쌓여 왔던 문제를 인식하고 그 고통에 대한 반응을 마치 한몸처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사회 분석의 시작을 2010년대부터로 잡는 것이 크게 부적절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3. 설득력이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같은 긍정적 밈은 예전에도 있지 않았나?
맞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도 유머와 긍정적 사고를 담은 밈은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 '기가차드' 밈의 유행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이전의 긍정적 밈들과는 달리 유명인이나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니라 단순한 익명의 이용자가 남긴 일련의 게시글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멋진 밈입니다. '누가 칼 들고 ~하라고 협박함?'과 '~해 봐, 자살하면 그만이야'로 시작한 2022년을 아름답게 장식한 밈이라고 평가받지요. 다만 이 밈에는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요소가 잔뜩 있었습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e스포츠 팀의 대역전극과 끝내 그들이 거머쥔 우승이라는 기적,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한 프로게이머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까지. 여러모로 고전적인 '영웅의 길' 서사가 실체화된 듯한 사건들 속에서 그 핵심이 되었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는, 어쩌면 밈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원영적 사고'나 뭐 그런(죄송합니다. 더 이상의 긍정적 밈이 떠오르질 않네요.) 밈들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어떤 유명인의 말과 행동, 또는 인상 깊은 사건에 의해 유행을 한 밈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내면의 기가차드' 밈은 어떤가요? 이 밈의 시작은 다름 아닌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그중에서도 속히 말해 '음지'라고 평가받는 한 갤러리의 익명 사용자가 올린 일련의 게시글 시리즈였습니다.
참고로 앞서 말한 예시 중 '자살하면 그만이야.' 역시 이것과 똑같은, 디시인사이드에 업로드된 게시물에 의해 밈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물이 밈이 된 사례는 많지만, 적어도 제 기억으로 그것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인생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것들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내면의 기가차드' 밈이 유행하기 시작하는 것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긍정적 밈'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긍정적 밈들과 달리 속되게 말해 인간의 밑바닥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시작되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작은 변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하찮은 희망 때문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쓰레기통에서 새싹이 피어나는 것을 보는 기분이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저 단계를 따른다면 결국 죽는다는 뜻 아닌가? 애초에 '내면의 기가차드' 밈을 '협상' 단계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가? '수용' 단계는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포자기하게 되는 단계 아닌가? '자살하면 그만이야.' 밈이야말로 진짜 '수용' 단계를 상징하는 것 아닌가?
사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질문들은 제가 다소 잘못된 근거를 가져왔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퀴블러-로스의 연구와 그 결과인 '슬픔의 5단계'는 분명히 임종을 앞둔 환자,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가족의 심정을 설명하기 위해 실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끝은 환자와 그 가족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죠.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 '슬픔의 5단계'는 '퀴블러-로스 변화 곡선'으로 발전했으며, 이 곡선은 현재까지 기업 등에서 조직의 변화와 상실의 단계를 탐색하고 관리하는 데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by Bertrand Grondin from a presentation of Kübler-Ross' ideas produced by France Telecom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슬픔의 5단계'의 엔딩이 '죽음'이라면, '퀴블러-로스 변화 곡선'의 엔딩은 없다는 것입니다. 재결합은 엔딩이 아니에요. 언제든 다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면 다시 이 사이클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재결합'이 '슬픔의 5단계'의 '수용'과 다른 것은 그것이 자포자기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원본의 '수용' 역시 '자살하면 그만이야.' 식의 자포자기와는 거리가 멉니다. '수용'이든 '재결합이든', 결코 '도피'가 아니에요. 우리가 지금껏 해 온, 혐오와 냉소를 통해 진짜 문제 해결의 길로부터 도망쳐 왔던 부끄러운 행태와는 다른 것입니다. '수용'과 '재결합'은요, 적어도 제 생각에는 오히려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잔인하고 이상한 곳인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그 세상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고 해서 오늘 자살해 저승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남은 하루를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치열하게 피눈물을 흘리며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면의 기가차드' 밈은, 그것을 도와줍니다. 우리가 세상을 스스로 바라보는 것을.
사실 제 주장을 위해서는 '슬픔의 5단계'가 아닌 이 '퀴블러-로스 변화 곡선'을 가져오는 것이 더 적절했을 것 같습니다. 사회는 개인과 달리 '죽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조직으로써 다만 '변화하는' 존재니까요. 제가 해당 연구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탓에 더 익숙한 개념인 '슬픔의 5단계'를 잘못 인용해 생긴 큰 오해입니다. 사과드립니다.
(논쟁에서 밀리면 내 세상이 무너짐)
마치며, 사실 제 주장의 근거가 된 퀴블러-로스의 이론 역시 많은 비판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퀴블러-로스 자신도 개인 경험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알고 있기에, 자신이 나눈 범주는 어디까지나 명확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분리된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지요. 또한 그녀의 저서에서 자신이 나눈 단계가 겹치거나, 동시에 발생하거나, 완전히 건너뛰어질 수 있다고 반복해서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내면의 기가차드' 밈 역시 다른 여러 밈과 마찬가지로 기껏해야 일주일을 버티고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며칠 뒤 이러한 밈이 있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또다시 부정과 분노, 우울함에 빠져들지도 모르고요. 그로써 제 설명이 완전히 틀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이론과 그것을 통해 사회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단호히 '아니'라고 답할 것입니다. 세상은 다원적이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그것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무시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형이 바뀌었다면 지도를 불태우고 지도 제작자를 비웃을 게 아니라, 옛 지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도를 그려야 하듯이요.
그리고 저는 이번에 새로 그려진 지도에서 희망을 봅니다. 스마트폰과 SNS가 생겨난 이래 부정과 분노와 우울에 잠식되어 있던 사회가 어쩌면 조금씩 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희망을. 그리고 그런 희망을 갖는 게 바보같은 일일지언정 죄는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죠, 기가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