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내용은 거짓입니다.

2025.01.15 "Paradox"

by 일흔의주정

"이 문장은 거짓이다."


외견상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문장입니다. 나타내는 바도 명확하고, 문법상으로도 틀린 것이 없지요. 하지만, 이 문장에 호기심을 느껴 살짝 발을 디딘다면, 마치 늪에 발을 디뎠을 때와 같이 이내 그 괴상한 의미 속에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1-1. 이 문장이 참이라면, 이 문장이 주장하는 '이 문장은 거짓이다'라는 것은 사실이다.

1-2. 즉 '이 문장이 거짓이다'라는 것이 사실이므로 이 문장은 참이 될 수 없다.


2-1. 이 문장이 거짓이라면, 이 문장이 주장하는 '이 문장은 거짓이다'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2-2. 즉 '이 문장이 거짓이다'라는 것이 사실이 아니므로 이 문장은 거짓이 될 수 없다.


direction-6839518_1280.jpg Image by 愚木混株 Cdd20 from Pixabay

'역설'을 뜻하는 단어인 'paradox'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으며, 'para-'와 'doxa'라는 두 단어의 결합입니다. 'para-'는 '무언가를 넘어선, 무언가에 반대되는'이라는 의미, 'doxa'는 '의견, 믿음'이라는 의미죠. 따라서 'paradox'는 '기존의 믿음이나 의견을 넘어섰거나, 그것에 반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말이 안 되는 것'을 의미하는 역설은 흔히 논리적 오류의 결과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점을 이용해 관용어를 엮어 역설을 만듦으로써 신선한 의미를 창출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강화하는 데 쓰이기도 하지요. '작은 거인', '소리 없는 아우성' 등의 예시를 보시면 감이 오실 겁니다. 다만 이 예시들도 이미 하나의 관용어구가 되어, 또 다른 상투적인 표현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요.


audit-4576720_1280.jpg Image by Mohamed Hassan from Pixabay

하지만 어쨌건 우리는 보통 역설을 탐탁지 않아 합니다. 모든 것들은 '말이 되어야' 하며, 그로써 기존의 믿음이나 의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영원히 나아가는 것을 편안해하지요. 특히 그것이 자신의 이익이나 자존심과 직결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봅시다. 과연 우리의 삶,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벽히 논리적인가요?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이 '말이 되는' 것인가요? 제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위해 맞춤법을 강박적으로 신경 쓰고, 단어와 접속사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고르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표현을 위해 표현 방식의 부자유를 용인하고 있는 셈이죠.


그러나 그 부자유는 또 다른 자유를 보장합니다. 제대로 된 형식과 문법을 지킴으로써 저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두루 읽힐 수 있는 글을 쓰는 셈이고, 그로써 저의 자유로운 생각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갈 수 있게 되지요. 지금 저는 어쩌면 자유와 부자유 사이를 왕복하는 시계추에 매달린 역설의 화신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신다면 정상입니다. 그것이 역설의 본질이고, 삶과 세상의 본질이니까요. 애초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옳은 답 단 하나만을 찾아 써내도록 훈련받은 우리에게 '옳은' 믿음이나 의견이 서로 충돌할 수 있고, 때로는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나타나기도 하며, 그로써 삶과 세상에 '옳은' 것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finger-3639605_1280.jpg Image by Tumisu from Pixabay

그래서인지 요즘의 논쟁과 갈등에서는 진실과 거짓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또 다른 진실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싸움이 무서운 점은 그 누구도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주장할 수 있는 자기들만의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서로가 단 한 치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양쪽 모두가 서로의 옳은 길로 가기 위해 싸우는 것이 어떻게 양쪽 모두를 그릇된 곳으로 인도하는지를 매일 똑똑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네, 그것 또한 역설입니다.


"우리는 생각은 너무 많이 하지만, 느끼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배우 찰리 채플린이 그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서 선보인,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사 중 하나로 평가받는 연설의 일부입니다. 인류의 끊임없는 사유와 '옳은 것'을 향한 투쟁은 우리를 이만큼 높은 곳까지 인도했지만, 이제 우리는 그 높은 곳에 있는 한 뼘의 땅에서 서로 편을 갈라 싸우며 상대를 떨어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paradox'에 좀 더 관대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모든 분야에서 무조건 '옳은 것'이 하나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는다구요? 괜찮습니다. 어쨌든 제목에서 보시다시피, 이 글의 내용은 거짓이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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